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 중 하나로 원전 협력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은 AI발 에너지 수요 폭증에 대비하기 위해 원전 300기를 건설하겠다고 밝혔지만, 시공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의 원전 시공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양국이 협력하면 윈-윈을 할 수 있다.
이번 양국 협상을 통해 최근 국내에서 벌어진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WEC) 간의 지적재산권 계약을 둘러싼 논란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22일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원전이 주요 의제로 다뤄지는 것은 이미 예견된 수순이다. 미국 내 신규 원전 건설과 해외 원전시장 공동 진출,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협력 등 현안이 워낙 많아 업계는 구체적인 투자·수출 협력 방향이 제시되길 기대하고 있다"며 “조선업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듯 원전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투자 계획이 나올 경우 산업 전반의 활력 제고와 시장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체코 원전 계약 해프닝에서 보듯 신뢰 회복이 중요한 시점이다. 만약 이번 회담에서 양국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협력 틀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고, 원전주 급등락처럼 업계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적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이번 회담은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 진출 기회를 넓히고, 글로벌 원전 공급망 재편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 순방을 앞둔 21일 제8회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현재 국제 정세와 무역질서가 재편되는 중에 풀어야 할 현안들이 너무 많다"며 “외교에 있어서는 현재 일시적인 정권의 입지보다는 영속적인 국가,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씩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원전 업계에서는 이 대통령이 최근의 'WEC 호구계약' 논란 등 여권 일각의 '반(反)원전' 정서를 넘어 한미 정상회담에서 원전협력 강화를 위한 양국 간 구체적인 협력방안에 합의하고 올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한미 원전협력, 제2의 마스가(MASGA) 될 수도
원전업계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 내 신규 원전 프로젝트에 양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은 2050년까지 자국 내 원전 설비 용량을 400GW로 늘리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원전 300기에 해당한다.
미국은 원전 설계능력은 세계 최고지만, 시공능력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46년 동안 미국에서 준공된 원전은 단 2기(보글 3·4호기)뿐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1970년대부터 이후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총 30기가 넘는 원전을 건설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생태계와 가격 경쟁력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정해진 기간과 예산에 맞춰 건설한다는 '온 타임 온 버짓' 강점으로 유명해 올해 5월에는 체코원전 수주에도 성공했다.
이번 양국의 원전 협력으로 한국의 건설 생태계와 미국의 인허가·금융을 묶는 양자형 패키지가 검토될 수 있다. 정상 차원의 규제·금융 파이프라인(수출금융, 공급망 다변화)을 명시하면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 가시성이 커진다.
아울러 해외 원전 추가 수주에서도 양국의 장기적 협력 모델 구축도 기대된다. 체코 사례에서 보듯 정치·규제 신뢰를 동반한 컨소시엄 모델이 유효했다. 이번 회담에서 역할분담(설계·기술/건설·제작), 수출금융, 연료공급의 표준 가이드라인을 합의하면, 폴란드·사우디 등 후속 시장에서 거래비용을 낮출 수 있다.
특히 향후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는 소형모듈원전(SMR) 시장에서 기술개발과 제작 분야 협력도 강화될 전망이다. 원자력 주기기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라이선스 레퍼런스가 글로벌 표준으로 통용된다. 상호검증·데이터 공유·부품 상호인증에 대한 정상 차원의 문구가 담기면, 한국형 SMR의 해외 상업화 일정이 앞당겨질 수 있다. 앞선 정상 합의의 연장선에서 제3국 공동 배치 모델도 현실화가 가능하다. 이미 두산에너빌리티는 뉴스케일파워 등 미국 SMR 원자로 주기기 제작을 위한 기자재 제작을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원전이 제2의 마스가(MASGA)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미 관세협상에서 우리의 주효 전략으로 쓰인 마스가(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란 미국 조선산업 부흥을 위해 한국의 민간 조선사들이 미국 현지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조선소를 건설하고, 미국에 기술 이전 및 인력 양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문재인·윤석열 정부때도 정상회담 통해 원전 공조 강화
한국과 미국은 정상회담 때마다 원전 협력을 주요 의제로 채택해 수출시장에서 공조를 약속해 왔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해외 원전 시장 공동 참여와 고도 안전·비확산 기준 준수를 명문화하며 원전 협력을 공식 어젠다로 끌어올렸다. 윤석열 정부도 2022년 정상회담을 통해 SMR 등 첨단원전 협력 및 제3국 공동진출을 재확인했다. '수출 플랫폼으로서의 한·미 공조'가 연속적으로 축적돼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원전 수출 공조는 물론 미국내 원전 건설에 양국 기업이 공동 참여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전 정부에서 체결한 협력관계보다 훨씬 더 공고한 관계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국의 첫 대형 원전 수출인 UAE 바라카 프로젝트에서는 한국 컨소시엄이 EPC를 주도하고, 미국은 미 에너지부의 설계·원천기술 사용 허가와 기자재·서비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뒷받침했다. 이 경험은 미국의 규제·금융·기술 생태계와 한국의 건설·운영 역량을 접목한 성공 사례로 남아 있다.
이어 한수원은 2024년 7월 체코 정부로부터 두코바니 신규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올해 1월 웨스팅하우스와 지적재산권 문제에 합의하면서 2025년 6월 본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한국과 미국이 손잡고 유럽에 진출한 첫번째 사례다.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의 지적재산권 합의 내용을 둘러싼 '호구 계약' 논란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일부 언론이 보도한 '한전·한수원과 WEC 간의 지적재산권 협정서'에 따르면 한전·한수원은 원전 수출 시마다 웨스팅하우스에 한 기당 1억7500만달러(약 2405억원) 정도의 기술료를 지급하고, 6억5000만달러(약 9000억원) 규모의 물품 및 용역 구매 계약을 보장하기로 했다. 또한 △소형모듈원전(SMR) 수출 시 웨스팅하우스의 승인 필요 △연료 공급권은 웨스팅하우스에 귀속 △체코를 제외한 유럽 전역과 영국·일본·우크라이나 및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 시장에 신규 원전 수주 활동이 제한된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여당에서는 매국 협상이라는 비판에 제기됐고,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원전업계에서는 한국의 원전 기술이 미국의 수출 통제를 받는 것은 원자력 분야의 특성상 불가피하며, 특히 웨스팅하우스에 지급하는 기술료 2400억원은 체코원전 1기당 수주액 13조원에 비하면 1.8% 수준이기 때문에 결코 퍼주기 계약이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의 과제는 '정치 논쟁'이 아니라 거래비용을 낮추는 제도화다. 정상이 깔고 기업이 뛰는 한·미 원전 동맹 2.0의 설계가 이번 회담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