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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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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재 사고 대부분은 중소사업장…‘안전 문화’부터 바꿔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8.18 18:32

[인터뷰] 대한민국 산업재해 ‘제로(0)’ 시대로 가는 길
■ 기업안전관리 전문가 이종현 산업안전융합연구소장
“SPC 근무제 개선 잘한 일…근로자도 노력해야”
“산재 반복 시 주가 폭락?…소기업은 해결 못 해”
“‘내가 전문가’·‘잠깐만 보면 돼’가 사고 만들어”

이종현 산업안전융합연구소 소장

▲이종현 산업안전융합연구소 소장

계속되는 산업재해에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 지속 기업에 대해 면허 취소를 포함한 초강력 제제를 예고했다. 업계는 일선 현장에서 급작스럽게 발생하는 사고를 완전 근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도 이번만은 관행처럼 이어져온 산업재해 근절에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에 해외 선진국의 산재 대응 모범 사례를 포함해 각 업종별로 산재 근절을 위한 노력을 조망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관리 감독 주체와 근로현장의 안전 의식 격차를 극복해 산업재해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최근 산업 현장에서 잇달아 발생한 근로자 사망 사고에 정부가 강력한 제재를 거론하면서 업계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 및 공공기관의 안전관리 컨설팅 전문가인 이종현 산업안전융합연구소 소장은 “기업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산재 사고를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다"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전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소장과의 일문일답.


◇산재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산재사고는 크게 기계적 요인과 인적 요인, 관리적 요인 탓에 발생한다. 먼저 기계적 요인은 말 그대로 기기 결함에 의한 사고다. 주로 경영주 쪽에 책임이 있다. 인적 요인은 주로 근로자의 실수에 의해 발생하는 사고다. 일할 땐 열심히 하더라도 쉴 때는 충분한 휴식을 취해 피로도를 낮춰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경우에 발생하기 쉽다.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충분한 휴식시간을 부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휴식 시간을 부여했다 하더라도 근로자 스스로 쉬지 않는 경우도 있다. 관리적 요인도 중요한 부분이다. 가령 안전교육을 형식적으로만 하다 보니 제대로 된 안전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 사업장에서는 4대 안전교육을 진행하도록 되어있는데, 요즘은 편하게 하자고 온라인 교육을 진행한다. 당연히 현장 교육보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식품기업 SPC나 건설기업 포스코이앤씨는 근로자 사망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사업장이다. 특정 사업장에서 반복적으로 사고가 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기본적으로 산재사고 예방은 오너(owner)의 의지가 중요하다. 근로자가 다치거나 죽는 것에 대해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투자보다 피해자와 합의를 보는 게 싸다는 인식이 있으니 산재사고가 계속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컨설팅을 갔던 한 기업의 안전관리자는 “1년에 안전화를 네 켤레 갈아 신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만큼 좁고 먼지 나는 곳을 본인이 많이 다니겠다는 의미다. 이런 관리자가 있는 곳은 사고가 안 나겠다 싶었는데, 실제로 그분이 근무하는 동안 사업장에 사고가 안 났다. 그만큼 경영진과 관리자의 관심이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반복적으로 사고가 발생하는 기업의 경우, 공시를 해서 주가를 폭락하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제재를 강화해서 다시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사실 사고가 나는 곳의 70%는 중소사업장이다. 대부분 주식시장에 상장이 돼 있지도 않다. 포스코이앤씨나 SPC는 상징적인 사례가 된 것으로, 실제 현장에서 실무를 보는 관료들은 산재사고 사각지대에 놓인 소기업을 방문해 안전관리에 신경을 써야한다.


◇안전사고의 형태나 원인이 다양하다보니 산업분야 별 처방이 조금씩은 다를 것 같다.


먼저 건설업의 경우 하도급 체계를 바꿔야한다고 생각한다. 하도급의 하도급의 하도급을 주는 체제로 이루어지다보니, 막상 현장에서는 사람을 적게 쓰고 장비도 허술하다. 공사대금에 따라 규모에 맞는 건설사에 발주를 내는 시스템으로 바꿔야한다. 제조업의 경우 시설 투자가 중요하다. 요즘 스마트공장은 위험요소를 사전에 모니터링해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안전 설계가 많이 돼 있다. 아직 중소사업장의 스마트공장 보급률이 낮은데, 이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SPC는 대통령 방문 이후 생산직 야간 근로 시간을 8시간 이내로 제한해 장시간 야간 근로를 없애기로 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근무제 개선으로 관리적 차원의 노력을 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실제로 효과를 보려면 근로자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 야간 근로에 들어오려면 낮에 충분히 수면을 취해야하는데, 근로자가 쉬지 않으면 그게 문제가 된다.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자신의 일과 리스트를 작성하도록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면 위험하지 않은 일로 바꿔주는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


◇기업 안전관리전문가로 여러 현장을 많이 돌아보셨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사고의 예를 든다면.


대부분의 사고는 근로자 스스로 위험 요소를 알면서도 '내가 전문가'라는 생각 때문에 일어난다. 현장에서 해결해야할 문제가 생겼을 때 “잠깐만 보면 돼", “금방 확인만 하고 올게", “내가 잘 알아" 하는 식의 안일한 마음으로 혼자 현장에 갔다가 사고가 난다. 임직원 안전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주에 대한 과도한 짐을 지운다고 비판한다.


중처법으로 실제 사업주가 처벌을 받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최근 법원에서는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의 책임이 근로자에게 있다는 판결을 내고 있다. 사업주는 산재 예방을 위해 인력과 돈 등을 써야하고, 근로자는 안전 관리를 위한 매뉴얼을 충실히 이행해야한다. 어느 한쪽만 노력해서는 산재를 줄일 수 없다.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 Who's 이종현 연구소장


△광운대학교 겸임교수 △국민안전교육관리사협회장 △학교안전관리사협회장 △교통안전클럽(사회적기업) 이사 △행정안전부 중앙안전교육점검단 위원 △산업인력관리공단 출제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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