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반기에도 대출 자체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무주택 실수요자나 중저소득층은 별도의 예외 규정 없이 불이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가계대출 총량 축소 요구에 나서면서 하반기 대출문이 더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거주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하려는 대출 이용자부터 생계자금이 필요한 중·저신용자들의 자금계획에도 각종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은행권, 하반기에도 대출 틀어막는다…무주택 실수요자 '난감'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은 축소된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를 금융당국에 다시 제출했다.
이들 시중은행은 연초 14조원 정도로 올해 가계대출 잔액을 늘리겠다고 보고한 상황이지만 하반기 들어 시행된 각종 규제에도 가계대출이 유의미하게 축소되는 흐름이 나타나지 않자 당국이 목표치 하향 조정을 요구한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이달 들어 17일까지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2조5846억원이 늘어난 757조419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일기준 하루 평균 2000억원씩 늘어난 셈이다.
은행권이 금융당국의 자료 제출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총량 목표를 다시 제출하는 가운데 하반기 목표치는 3조5000억원 정도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전체 증가 목표규모인 14조원 중 상반기에 소진한 7조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7조원에서 반토막 수준으로 낮춘 것이다.

▲현재 은행권은 지난 6·27 규제 시행 이후 타행에서 받은 기존 주담대가 1억원이 넘으면 대환이 불가능하도록 막아둔 상태다.
은행이 가계대출 목표치를 갑자기 축소하면서 대출 수요자들의 자금 계획에 차질이 심화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앞서 6·27 부동산 대책 시행 당시 나타났던 '대출 오픈런' 현상 확대와 함께 연말로 갈수록 대출문이 좁아지면서 생계나 각종 대소사에 따라 자금이 필요한 실수요자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우려다.
이미 6.27 규제 이후인 현재도 주택을 실거주 목적으로 구매하려는 실수요자가 주택담보대출(주담대)나 전세자금대출 한도 축소로 인해 계약 파기에 따른 지출·일정 지연 등 피해가 속출하는 실정이다.
하반기에도 대출 자체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무주택 실수요자나 중저소득층은 별도의 예외 규정 없이 불이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규제 시행 이후 사실장 승인이 중지된 전세퇴거자금대출은 6.27 규제 이후 은행권 내 승인 건수가 93% 급감한 것으로 집계된 상태다. 역전세 조건을 만족해야 1억원을 초과하는 대출이 가능한 상황으로, 은행권이 대출 총량을 축소해야하는 상황에서 시행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청약에 당첨된 경우도 혼선이 나타날 것이란 예상이다. 자산이 많지 않은 젊은 층의 경우 어렵게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한정된 대출금으로 인해 분양 대금을 치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계자금도 계속 막힐듯…이자 경감 서비스도 유명무실
서민들의 경우 빚낼 곳이 없어 생계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의 폐해도 나타날 전망이다. 은행에서 신용대출, 생활안정 자금, 마이너스통장 등의 한도까지 축소하면 소액이라도 급전이 필요한 중·저신용 실수요자의 피해가 커지는 것이다. 특히 1금융권의 대출 축소로 밀려난 차주들이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넘어가면 기존 2금융권 이용자인 중저신용 및 실수요자의 대출 창구가 더욱 좁아지게 된다.
기존 대출을 보유한 차주들의 '주택담보대출 갈아타기'서비스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태에 놓이면서 차주들이 이자 경감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간접적 피해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은행권은 지난 6·27 규제 시행 이후 타행에서 받은 기존 주담대가 1억원이 넘으면 대환이 불가능하도록 막아둔 상태다. 규제에 따르면 소유권 이전 3개월이 지난 주택에 대한 주담대는 대환 시 '생활안정자금' 카테고리로 분류되는데,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는 1억원으로 제한돼있다. 금융당국은 대출을 갈아타는 것도 신규 대출을 받는 개념이라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주택 거래가 줄어드는 오는 9월 이후 규제 효과가 나타나고 자연스럽게 가계대출 규모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하반기 대출 축소가 다소 강경한 처사라는 시각도 나온다. 현재 불어난 가계대출 증가분의 대부분은 주담대로, 규제 전 신청이 완료된 건과 주택매매 등 계약이 이뤄진 건이 7~8월까지 넘어온 여파란 것이다.
당국이 상반기 한도조차 채우지 못한 일부 은행에 총량을 늘려주는 '차등적 대출총량 허용'도 고민 중이지만 과도한 취급에는 페널티를 부여한다고 알려지면서 전반적으로 대출 기조를 변경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태다. 은행권 관계자는 “모든 은행권에 주담대 총액 제한을 거는 유례없는 규제까지 내놓은 데다 복합 규제로 대출 증가를 차단하고 있는 만큼 대출 가능 금액은 하반기에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