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개발한 HBM3E 12H D램 제품 이미지.
'인공지능(AI) 붐'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고속 성장이 예상되지만 삼성전자는 좀처럼 웃지 못하고 있다. 5세대 HBM3E 등 제품을 앞세워 수주 확대를 노리고 있지만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를 좀처럼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증권가에서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실적 개선을 위해서는 HBM 관련 성과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내년 HBM 총 출하량은 300억 기가비트(Gb)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등 신기술 관련 수요가 워낙 강력한 탓이다.
기술 개발 속도도 빨라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이 내년 하반기에는 6세대 HBM4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주류 제품은 5세대 HBM3E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루빈'과 AMD의 차세대 AI 칩 'MI400' 시리즈에 HBM4 탑재가 유력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시장 성장 수혜를 잘 누리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 보고서를 보면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전세계 D램 시장에서 매출 기준 3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삼성전자(34%)를 앞지르며 최초로 'D램 왕좌'에 오른 것이다. 이 시기 연결 영업이익(7조4405억원) 역시 국내 전체 기업 중 1위를 차지했다. 지난 3월에는 차세대 HBM4 샘플을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 3월 열린 제77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올해 상반기 중 고객사들과 내년 생산 예정인 HBM 계약을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AI 반도체 시장이 지속 성장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수요에 적기 대응하기 위한 인프라 확보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HBM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 역시 SK하이닉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20일(현지시각) 대만 타이베이 난강 전시센터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5'에서 SK하이닉스 부스를 찾았다. 그는 HBM4 샘플 등을 살펴본 뒤 “정말 아름답다", “원 팀", “사랑한다" 등 찬사를 쏟아냈다.
삼성전자 분위기는 다르다. 엔비디아에 HBM3E 공급을 위한 품질 테스트를 받은지 1년 가량 됐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황 CEO가 삼성의 기술력과 관련한 긍정적인 발언을 내놓기도 했지만 '컴퓨텍스 2025' 현장에서는 따로 없었다.
삼성전자는 '기술통' 전영현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장(부회장)을 경영 전면에 내세우며 HBM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 부회장은 지난 3월 주총장에서 “빠르면 2분기, 늦어도 하반기부터 HBM3E 12단 제품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HBM3E 12단 생산을 확대하는 등 승부수를 띄운 상태다. 엔비디아 공급 승인이 완료되면 실적이 확 뛸 수 있는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에) 5세대 HBM3E 납품 이력이 없으면 부가가치가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6세대 HBM4 물량을 따내는 데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트렌드포스는 HBM3E 가격이 프리미엄 약 20%로 출시됐으나 HBM4는 제조 난도 상승으로 프리미엄이 30% 이상으로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일단 기술력 확보에 매진하면서 계약 물량을 늘려간다는 방침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열린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 “HBM 판매량은 1분기 저점을 찍겠지만 HBM3E 개선 제품 판매 확대와 함께 매 분기 계단식으로 회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HBM2E 개선 제품은 주요 고객사 샘플 공급을 완료했다"며 “2분기부터 점진적으로 판매 기여 폭이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기대했다. HBM4의 경우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삼고 있다.
차용호 LS증권 연구원은 “올해 IT 관련 수요는 매크로 불확실성 확대로 하향 조정이 이뤄지고 있어 2분기 메모리 반도체 업황 둔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며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에도 안정적인 실적을 낼 수 있는 HBM에 대한 중요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