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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버린 사람들, 신천지가 주워갔다…극우는 조직했다”[인터뷰]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5.10 06:00

작년 12월 내란 시도는 정권만의 실패 아닌 교회와 사회의 구조적 붕괴
돌봄을 멈춘 교회…거리로 밀려난 신자들은 극우 정치에 흡수
주류 교단 외면 속에 전광훈과 손현보 등 극우 기독교 세력 성장
신천지, 코로나 이후 교회가 놓친 공백 속에서 낙오자들 흡수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더 깊은 민주주의”

김진호 목사

▲민중신학자이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이사인 김진호 목사가 지난달 30일 에너지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서예온 기자

지난해 12월 3일 이른바 '내란의 밤'으로 불리는 계엄 사태 이후 한국 사회는 근본적 질문에 직면했다. 단지 정권의 일탈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 구조 전반의 붕괴로 봐야 하는가. 민중신학자이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이사인 김진호는 후자에 방점을 찍는다.


지난 4월 30일 서울 마포구 한백교회 예배당에서 최요한 시사평론가가 김 이사를 만났다. 그는 “교회가 외면한 이들을 신천지가 주워갔고, 극우는 그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했다"고 단언했다.


“극우 기독교의 뿌리는 2003년 반노무현 집회"


최 평론가는 극우 개신교의 정치화 시점을 물었다. 이에 김 이사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광화문에서 열린 반대 집회가 시발점이었다"며 “이때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은 단순한 종교단체를 넘어 극우 정치세력으로 발돋움했다"고 밝혔다.


그 뒤를 이은 인물이 전광훈 목사다. 그는 정통 신학 기반이나 교단적 뒷받침은 부족했지만, '재테크 목회'를 통해 가난한 목회자들을 결집시켜 세를 확장해왔다. 김 이사는 “주류 개신교가 전광훈을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그가 신학 질서를 파괴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거리로 밀려난 신자들 '아스팔트 우파'로 변신


최 평론가가 “전광훈 현상이 단지 지도자의 카리스마에서 비롯된 것이냐"고 묻자, 김 이사는 “그보다는 신자들의 주권화가 더 큰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90년대 이후 신자들은 더 이상 목사의 말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정치적 의견을 제약받은 보수적 신자들이 거리로 나왔고, 그곳에서 전광훈이 중심이 된 '아스팔트 우파 기독교인' 흐름이 형성됐습니다."


손현보, 조직 기반 갖춘 '신극우'의 얼굴


이후 질문은 손현보 목사로 이어졌다. 김 이사는 “손현보는 전광훈과 달리, 교단 기반과 교계 신뢰를 갖춘 체계적 극우"라며 “고신 교단 소속으로 대형 교회를 일군 자수성가형 리더"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손 목사가 미국 복음주의 극우 세력과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빌드업 코리아' 집회를 통해 트럼프 지지 복음주의자들과 손을 잡았고, 이를 통해 신사도 운동 계열의 국제적 지지를 얻었습니다."


“스폰서 테러리즘… 지금 가장 우려되는 지점"


최 평론가는 최근의 테러 시도 사례들을 언급하며 우려를 전했다. 이에 김 이사는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는 '스폰서 테러리즘'"이라며 “온라인 주목과 후원을 통해 개인이 자발적으로 폭력을 실행하는 구조가 이미 형성되고 있다"고 답했다.


“지시도, 명령도 없이 테러가 일어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관심과 돈이 곧 동력이 되는 구조죠."


성장 멈춘 교회… 신천지가 주워간 '낙오자들'


최 평론가는 “교회가 이런 극단화 흐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물었다. 김 이사는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신자의 이동만 반복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낙오된 신자들을 신천지가 주워갔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교회가 멈춘 돌봄의 자리를 신천지가 빠르게 메웠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단 문제가 아닙니다. 돌봄을 방기한 교회와 사회의 실패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더 깊은 민주주의"


인터뷰 말미 최 평론가는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김 이사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모어 디머크러시(more democracy·더 많은 민주주의, 형식적인 절차나 참여 기회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딥 디머크러시(deep democracy·더 깊은 민주주의, 단순히 참여 기회를 늘리는 것을 넘어서 소외되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구조적으로 듣고 반영하는 민주주의를 뜻함)'"라고 답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마이크를 주는 게 아닙니다. 지금껏 말하지 못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듣는 것. 그것이 진짜 민주주의입니다."


다음은 김진호 이사와의 일문일답.


최요한 시사 평론가(이하 최): 나이가 좀 있는 미국인들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을 당하던 그 순간,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다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지난 12월 3일이 바로 그런 날일 것 같습니다. 제가 항상 인터뷰할 때 먼저 여쭤보는 것이지만, 그 누구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지난 12월 3일, 밤 10시 30분 우리 선생님께서는 어디서 뭘 하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김진호 이사(이하 김): 사실 여행 갔다가 그날 낮에 돌아왔거든요. 그런데 카톡 소리에 깰 정도로 선잠이 든 상태였는데, 카톡에서 막 기가 막힌다는 이야기들을 하는 거예요, 뭔 뚱딴지같은 소리가 있나 싶어서 TV를 켰는데 계엄이더라고요 소름이 돋고 겁이 나는데, 컴퓨터를 디가우징 해야 하나? 어디로 도망을 가야 하나? 자료를 숨기는 것이 의미가 있나?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깜짝 놀란 것은 동네에 보통 사람들이 여의도로 가는 거예요, 우리 집이 망원동이라서 여의도가 가깝거든요


최 : 예전 학생 운동가들이나 활동가들은 무슨 일이 터지면 일단 어디로 튈 것인가, 자료를 어떻게 파기할 것인가 생각하잖아요? 선생님도 그렇게 하셨을 것 같은데... 예전에도 선생님은 계엄을 겪지 않으셨나요?


김 : 긴급 조치도 있고, 위수령도 있었고... 그런데 그런 국가의 긴급권은 사라졌잖아요? 저는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긴급 조치와 더불어 살았어요. 그렇게 박정희 정권 아래서 10년을 산 것 같아요. 제가 작년에 쓴 책이 이승만 정권의 계엄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었어요. 그걸 통해 제가 간접 체험을 했습니다. 이승만 정권 동안 확인된 사람만 90만 명 정도 학살당했거든요. 그 출발점이 제주 4.3이고 이 사건은 자신이 취임하고 한 두 달쯤 지나서 첫 포고령을 내렸는데 그게 계엄이었어요. 그렇게 우리는 계엄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었고, 저는 그 소년 시절에 길에서 선거 포스터만큼 큰 지명 수배 포스터가 붙어 있었어요. 시국사범들이죠. 민청학련 사건이라든지 일련의 시국사건이었을 텐데 버스를 타도 붙어 있고, 어디에나 있었는데, 그런 내용들을 자세히 몰랐어도 무서웠죠. 내가 살던 동네에도 지프차가 한 번 오면 누군가가 사라졌으니까 이런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그 내용과 함께 링크돼서 기억 속에 있었던 것이죠. 그것이 이번 12.3 내란을 통해 확~ 일어나면서 무서웠고 소름돋았던 것으로 보여요.


최 : 사실 돌아보면 아찔해요. 우리 시민들이 아니었다면 수방사가 조금 더 승인을 일찍 했더라면, 특전사 군인들이 먼저 가서 버티게 되었다면 난리가 났을텐데, 정말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바로 직전에,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인상 깊게 남은 통찰이 바로 한강 작가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요, 기독교인이라면 하느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선 한강 작가의 이 통찰부터 우리 선생님 의견을 좀 말씀 해 주십시오.


김 : 굉장히 빛나는 통찰이죠. 나는 역사 연구자이니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역사로만 이야기하면 이건 기억에 관한 문제입니다. 죽은 자에 관한 기억도, 어떤 기억은 우리를 잔인하게 만들고, 또 어떤 기억은 그 잔인함에 저항하게 만들잖아요? 시인의 감수성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지만, 역사 속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사례가 있습니다. 예컨대 제가 대학을 81년에 입학했어요. 우리보다 1년 선배들은 대학을 3분의 2 정도를 장갑차와 함께 보냈다고 해요. 저희 때부터 정상 수업을 했지만, 학교 안에 경찰이 상주하고 있고,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수업 시간에 들어와 있고 그랬어요. 교수님은 자기 검열하고 당시에 데모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어요. 기껏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12시쯤 좀 높은 건물 창 난간에 매달려서 구호 한 번 외치고, 유인물 한 번 던지고 잡혀가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잡혀가는 걸 막기 위해서 미리 사수대 같은 사람들이 준비하고 있는데, 일단 구호를 외치면 경찰들이, 순식간에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너무너무 많이 막 몰려와요. 그 경찰들이 공중으로 날아 차기도 하고 그러는데 정말 용맹해요. 아마도 대학교 1학년인 나하고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을 거예요. 내 기억에는 그 시대 청년 경찰들이 그런 식으로 민간인에게 폭력을 쓰는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느낌이 안 들었거든요? 5.18만 해도 얼마나 잔인했습니까?


김 : 그런데 내가 그 시기부터 몇 년 지난 것 같은데, 러시아가 아직 소련이었을 때,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었잖아요? 그때 탱크가 밀고 들어왔고 고르바초프가 구금된 상태였고 옐친이라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갑자기 스타가 되었잖아요? 그때 내가 놀랐던 것이, 사람들이 탱크를 막아선 사진을 보았거든요? 그때 어떤 뉴스인지는 모르겠는데 소련군이 이야기하는 것이었어요. 인민을 위한 군인이 자국민을 공격하는 전통이 없기에 망설였다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여기서 난 너무 이상했어요. 이건 우리가 모르는 세계야 군인이 자국민들한테 폭행을 가하는데 망설였다? 그 말이 그때 되게 인상 깊었어요. 그런데 이제 이번 12.3 내란 사태 상황을 보니까 우리나라 군인들이 그러네요? 망설이는 거예요. 이게 죽은 자가 살린 건지, 우리 경험이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제 민주주의를 몸으로 체득하면서 자란 세대들이 그런 겁니다. 아~ 저런 걸 망설이는구나! 우리 또래들은 망설이지 않았을텐데 저한테는 일단 그것부터 보였어요.


최 :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군부독재 정권과 권위주의 정권에서 성장했던, 그래서 지금 별을 달고 있는 장성들은 윤석열의 명령에 순응했는데, 민주 시민교육, 그러니까 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되는 이런 과정에서 성장한 하급장교들과 병사들은 순응하지 않았죠. 제가 그 새벽에 여의도를 갔었어요. 새벽까지 방송 특보하고 끝나니까 새벽 2시가 좀 넘었는데, 그래서 택시를 타고 여의도를 갔는데, 취재하려고 빙 돌아다니다 보니까 경찰 아저씨들, 군인 아저씨들이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저는 진짜 한강 작가의 통찰, 어쩌면 12.3 내란 직전에 이런 통찰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아마도 이것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김 : 반대 사례가 우크라이나예요. 거기서는 이제 죽은 자가 잔인한 세상을 산 자들한테 물려줬죠.


최 : 그런데 방금 선생님 말씀을 들을 때, 스스로 '역사 연구가'라고 말씀하셔서, 제가 목사님이자 민중 신학자라고 이해한 것과 조금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김 : 신학도 여러 카테고리가 있지만, 저는 역사적인 접근도 했고, 신학 안에서도 정통이 아니고 변두리(비주류)에서 하면서, 계간잡지 같은 것에도 관여하고 그랬으니까 일종의 신학이기도 하고 인문학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역사를 다루니까 역사 연구가라고 생각해요.


최 : 제가 선생님의 책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읽다'를 보면서 대단히 역사적인 접근이라고 느꼈는데, 그래서 여쭙는 겁니다. 이번 사태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87년 6월 항쟁처럼 민중이 봉기하던 때와 달리 중간에 딱 갈라져서 극우 세력들이 엄청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며 소름이 끼쳤거든요?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극우 세력들의 움직임,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김 :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 극우는 1940년대 한국 개신교와 약하게나마 연결된 상황에서 국가 형성에 깊게 개입했습니다. 개신교 전체가 극우는 아니었지만, 국가 형성에 개입한 그들은 극우였습니다. 이승만과 한경직으로 대표되는 그 시대에 극우 청년들의 본성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한국 사회에서 '잔인함'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이 시민에게 밀려나고 들어선 군사정권의 위기가 왔을 때는 국가 폭력이 원체 강력했기 때문에 민간 차원에서 극우가 활동할 자리도 없었고 별로 의미도 없었습니다. 생각은 극우적일 수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문제지, 극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그건 진보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한국 사회로 보면 극우가 다시 시민 현상으로 활기를 띤 것은 2003년도부터입니다. 사실 한국은 보수가 훨씬 더 쎘는데, 투표 선거연합에서 진보가 이기면서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졌어요. 기적적이었죠. 노무현 대통령이 된 것도 거의 막판에 며칠 남겨두고 역전된 거잖아요? 보수가 완전히 지리멸렬한 상태였는데, 보수의 회생을 이끌어 낸 곳이 노무현의 2월 25일 취임식 6일 후, 3월 2일 광화문에서의 대규모 집회입니다. 경찰의 추산 10만 명, 주최 측 주장 30만 명이었어요. 이 주최 측이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입니다. 한기총의 출범은 1989년이지만 한기총의 시대는 2003년부터라고 보면 돼요. 한기총이 그 집회를 주도하면서 한국의 정치 세력화된 개신교 그룹들로부터 극우 집단들이 굉장히 활성화됐고, 그로부터 한 10년 정도는 이제 한기총의 전성시대가 된 것입니다. 지금은 한기총의 힘이 확 빠졌지만, 2012년까지 이제 한국 개신교는 한기총에 의해서 상당히 견인됐죠. 개신교가 견인됐다는 이야기는 그 안에 여러 성향의 사람도 있지만 극우가 개신교를 주도했다는 이야깁니다. 약간 다른 요소가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인 2007년, 전무후무한 선거연합이 만들어질 때 주도한 개신교 세력들은 한기총이 아니라 제 용어로 말하자면 '글로벌 보수'예요. 신자유주의적 보수.


최 : 극우적 스탠스를 가진 보수와 방금 말씀하신 글로벌 보수는 성격에 있어서 차이가 큰가요?


김 : 굉장히 달라요 흔히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지역)', '사미자'(사랑의교회·미래를경영하는연구모임)라는 이야기가 나왔잖아요? 그런 교회들이 이제 글로벌 보수를 상징하는 교회들이에요. 학력도 굉장히 높고, 한국 사회의 파워 엘리트들의 집결소죠. 이제 그들이 당시에 '성시화 운동'이라는 것을 벌입니다.


최 : 예, 성시화 운동! 기억납니다.


김 : 그러니까 단체장이나 지자체장이나 이런 사람들이 자기의 영토를, 그 사람들은 이제 군주라고 생각하니까 영토를 하나님께 바친다, 이렇게 주장하는 겁니다.


최 : 이명박이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거기서 나온 건가요?


김 : 예, 맞아요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한국 커뮤니티에서는 단체장이나 무슨 무슨 장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성시화 선언'을 안 하면 안 될 만큼 압박을 받았어요. '성시화 선언'이라는 것은 이명박 선거연합에 내가 참여한다는 선언이에요. 그건 엄청난 파워를 발휘했고, 개신교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선거연합이 만들어졌어요. 하지만 이건 보수는 보수지만 극우 성향의 보수는 아니에요. 거기에 한기총도 같이 했는데, 한기총은 극우적 성격을 띤 이념적 보수예요, 이념적 보수는 기본적으로 '증오'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서는 특정한 세력을 증오할 때, 공산당과 연결해요. 그래서 성소수자도 공산당과 연결하고, 장애인도 공산당과 연결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원래 보수는 삼성전자의 이건희가 글로벌 보수를 표상하는 적합한 말을 했습니다. 부인하고 자식 빼고 다 바꿔라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주체가 아니야, 거기는 다양한 주체가 되어야 해, 거기는 성장 효율 이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그런 보수가 주도했던 때가 이명박 정권의 출범식인데,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고 금강산에서 박왕자씨 사건 터지고,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이명박 정권이 갑자기 이념 드라이브를 합니다. 그리고 뉴라이트가 활개를 치고 다녔어요. 이명박 정권도 출범 초기에만 약간 글로벌 보수의 색깔이 있었죠. 이후 이념적 성격이 강해졌어요.


김 : 이후 박근혜 정권은 완전히 이념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 둘의 차이라면 이명박 정부는 뉴라이트 색깔이 강했고, 박근혜 정권은 올드라이트 성격이 강했다는 차이일 뿐이죠. 그런데 한기총은 좀 올드라이트적인 성격이 강한 그룹인데, 이 시대에 드디어 전광훈이라는 인물이 등장해요. 90년대 말에, 한기총이 아직 극우의 시대를 열기 전에, 전광훈씨가 '청교도 영성 훈련원'을 만들면서 굉장히 스타가 됩니다. 그게 한마디로 말하면 재테크 목회 프로그램이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IMF는 굉장한 변화를 가져왔어요. 안 그래도 개신교 목사들의 빈곤율이 굉장히 심각한데, IMF때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개신교 목사들은 교인들이 낸 기부금, 헌금으로 생게를 유지해야 하는데, 생계유지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전광훈이 '헌금에 의존하지 않는 목회가 있다'라면서 이걸 가르친 것이죠. 그때 나온 선교카드, 알뜰폰, 이게 다 그때 나온 아이디어에요. 그러면서 많은 목회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전광훈은 극우적 이념에 고정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03년 한기총 집회 때 전광훈이 일종의 중간 지도자 역할을 하면서 빈곤한 목회자들을 대거 한기총 집회에 동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집회를 주도했던 금란교회의 김홍도 목사, 감리교 김홍도가 전광훈을 굉장히 아꼈다고 해요. 그런데 이 전광훈이라는 사람은 개신교의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예요. 한국 시민사회에 착시현상이 일어난 것은 전광훈이 한국 개신교를 표상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광훈이 개신교의 어떤 그룹을 이끌고 있는 한, 개신교의 다수파는 안 끌려가요.


김 : 한국 개신교는 전광훈과 생각이 비슷할 때조차도 전광훈을 따를 생각은 없는 집단이 많아요. 왜냐하면 일단 개신교는 연고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에요. 학력이니 어떤 가문이니 따지는데, 전광훈은 어느 하나도 해당하지 않고 다 못 갖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다 의심스럽고, 전광훈이 속한 교단도 듣보잡 교단이고, 학력도 문교부인가 학위는 아닌 게 분명하고, 이런 경우가 많아요. 이를테면 박근혜씨하고 관계가 있는 최태민씨는 원래 대전지역에서 유명한 구마사(驅魔師)였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목사가 되는데 '하루' 걸렸어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식으로 전광훈도 어떻게 대학 학위를 가졌는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을 개신교 목사들이 잘 안단 말이에요. 그렇기에 그 사람이 하는 말들이 개신교의 주요 사람들이 볼 때 근거가 없는 말들이 많아요. 개신교의 주류 그룹들은 이제 그를 부끄러워하는 대상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전광훈이 극우 정치적 성격이 강한데, 그가 중요한 인물로 부상했다는 이야기는 기존 극우 정치 세력이 무너졌다, 누구도 나서지 않으니까, 전광훈이 클로즈업 되었다는 것이죠.


최 : 목사님께서 참고하라고 하신 자료를 보니까 K-극우라는 표현이 있던데요. 이 K-극우는 어떤 의미인가요?


김 :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은 교회연합기구인데,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를 대립하는 기구로 만든 게 한기총이에요. 한기총이 교회연합기구로 만들어지고, 2003년경부터 극우적인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했을 때만 해도 개신교 주류세력의 상당수가 관여되어 있었죠. 그런데 그 주류세력의 상당수는 내가 말한 글로벌 보수와는 좀 달라요. 21세기를 전후로 한 시기부터 개신교에는 거대한 변동이 있어요. 그것이 한국 사회 변동과 연결돼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세계화'입니다. 그런데 그 거대한 변동의 가장 중요한 것은 '신자들의 이동'이에요. 개신교는 그 시기에 팽창하지 못하고 새 신자 유입이 별로 없어요. 개신교가 60년대부터 8,90년대 사이에 기념비적인 성장을 했었죠? 그 성장을 상징했던 것은 조용기 현상이예요. 조용기 현상.


김 : 한국 개신교는 세 번의 어떤 대전환이 있는데, 첫 번째는 한경직 현상이예요. 한경직 현상은 일종의 '증오' 패러다임이 중요한 극우 개신교였다는 걸 증명하는 것입니다. 빨갱이를 증오하기 때문에 우리는 개신교 신앙을 강건하게 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전환은 '조용기 현상'인데 조용기를 표상하는 것은 '축복'이에요. 조용기의 메시지 핵심은 '3박자 구원'이거든요? 영적인 구원은 물질적으로 부자가 된다는 것과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 패키지로 따라오는 거예요. 천국에 가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따라온다는 것이에요. 굉장히 세속화된 신앙이죠. 산업화 시대, 시골에서 도시로 와서 아무것도 기반이 없는 사람들은 노동 현장에서 몸이 망가지잖아요? 또 달동네라는 게 산에다가 그냥 판잣집 짓고 사는데, 화장시설은 없고, 그냥 아무 데나 대소변을 보니까 만성적인 전염병이 나타났지요. 인력 시장에 두세 시간씩 걸어 나와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사람들, 그러다가 다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고, 그런 사람들에게 질병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그런 사람들에게 건강해진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천국에 가고, 부자가 되고,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 그것이 조용기 현상의 강렬한 동력이었고, 개신교는 그 시기에 엄청난 성장을 했습니다.


김 :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사회에 일종의 새로운 교회들이 등장해요. 그걸 제가 후발 대형교회라고 부르는데, 그 교회들이 등장한 맥락에는 강남권이 만들어지는, 서울 주변의 여러 개의 도시가 수도로 편입되는 것과 일치합니다. 일본의 도쿄가 시(市)이자 도쿄도(都)가 되는 것처럼 거대 도시가 되는 과정에서 강남과 강동이 연결되고, 또 분당과도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강남, 강동, 분당이 이어지는 일종의 신도시 지역에 지대가 급상승하잖아요, 그쪽으로 이주한 사람들, 젊은 중상위층 엘리트들이 몇몇 교회로 몰려들면서 대형교회들이 탄생합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현상은 80년대부터 나타났지만, 이런 대형교회의 출연 시기는 90년대 중반 어간부터 굉장히 폭발적으로 나타나요. 그렇다면, 신자는 양적으로 늘어나, 전체적으로 파이는 안 커졌는데 특정 교회가 커졌다는 이야기는 새로운 이동이 있었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그렇게 사람들이 이동한 교회들이 이제 일종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거예요. 왜냐하면 1만 명 이상 되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고요, 거기에 파워엘리트들이 주축이 되는 중상위 계층들이 집중들이 모이면 자기들만의 문화를 만드는 겁니다. 자신들만 쓰는 언어들, 또 자기들만의 사적인 모임들, 이런 것들이 모두 다 하나의 계급 현상이죠. 일종의 문화적 계급의 탄생인데 전 세계적으로 이런 현상이 없어요.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주 1회 이상 모이는데, 그 모이는 기간이 10년에서 20년간 유지된다? 이런 곳은 전 세계적으로도 없어요. 유일하게 외국인 방문자에게 물었더니 자기가 볼 때 그나마 비슷한 게 북유럽의 헬스센터래요.


김 : 북유럽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몸을 관리하기 위해 모인다는 것이죠. 거기서 친분이 만들어지고 자기들끼리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데, 그럼에도 지금 한국 개신교 교회만큼 강력하지 못해요. 한국의 파워엘리트 연구에 대해서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중앙일보가 3만 명이 넘는 엄청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것이 있어요. IMF 이후 한국이 세계화되는 과정에서 '연줄 사회'로 급격하게 이행하면서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에 관한 연구가 굉장히 많았어요... 그것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인데요, 그리고 그 작업을 한 것이 책으로도 나왔어요. 그런데 그것의 핵심은 '지연 학연 혈연이 어떻게 만들어지나?'였어요. 하지만 거기서 분석하지 않은 게 하나 있는데 개신교 신자가 40.3%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개신교 인구는 20%가 채 안 되거든요? 그런데 3만 명이 넘는 파워 엘리트 중에 40.3%가 개신교 교인이라는 것은 과도하게 집적돼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강남의 '소망교회'나 서초동의 '사랑의 교회'의 사례에서 보잖아요? 강남권 교회에 파워엘리트들이 집적되어 있어요. 그것도 과도하게 집적되어 있는 것이죠. 그런 교회가 성공하니까 그 성공한 교회를 다른 교회들이 따라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따라 하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해요. 대부분 실패합니다. 그러면 성공하지 못 한 교회는 열패감에 빠지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실패한 교회들 사이에서 이제 목회자들 중심의 열패감이 몇 가지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뚜렷한 행동 중 하나가 교단 정치 혹은 교회 정치에 깊게 개입하는 거예요. 또 그렇게 깊게 개입할 때 그들을 추동한 세력이 한기총이었어요. 개신교의 이념적 드라이브를 했던 그룹들은 글로벌 보수에 대한 열패감의 반작용일 수 있다는 것이죠.


최 : 그렇다면 글로벌 보수라고 일컬어지는, 한국의 파워엘리트들이 만든 그룹이 따로 있고, 이를 따라가려는 한기총 그룹이 따로 있는데, 때로는 결합하고 때로는 따로 떨어지고 그런 형태를 보이는 건가요?


김 : 자로 재듯 갈라지지는 않지만 대략 그런 모습을 보여요. 그런 게 하나의 흐름인데, 강남권 교회든 아니든,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몸속에 극우적인 생각이 뼈에 박힌 사람이 있잖아요? 또 그런 사람들 중에 중산층들도 많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예전에는 선거 때가 되면 목사님이 막 극우적인 발언도 했어요. 지지 선언이 나오고 기구들이 만들어지고 그랬어요. 선거운동 기구들이 교회에서는 선거법에 아랑곳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목사가 (우파를 지지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이게 대략 90년대 이후인데, 왜 목사들이 입을 닫았는가? 교회 안에 일종의 강남 좌파들이 있는 겁니다. 또 사람들이 옛날처럼 목사의 말에 그냥 순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사들은 정치 현안에 관한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죠. 목사들이 가진 상대적인 권력은 약화됐고, 신자들의 주권성은 강해졌어요. 그래서 내가 이 현상을 '주권 신자화(sovereignization of believers)'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교회 안에서 일종의 이념 갈등이 생기게 되었고, 이제 교회에 메인 스트림을 형성하는 사람들은 이념 갈등이 중요한 게 아니고 교회가 조용하길 원하는 겁니다. 이제 갈등이 있을 때, 목사가 갈등을 촉발하지 않게 신자가 나서서 목사를 단속시켜요. 그러니까 극우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어느 날부터인가 목사가 (우파 지지의) 말을 하지 않으니까 화를 내는 거야. 그런데 교회 헤게모니는 가지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상태에서 갑자기 아스팔트 우파가 나타나고 전광훈이 극우의 상징으로 '스타화'되니까, 그 사람들이 이제 전광훈에게 기부금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전광훈이 스스로 이야기한 것은 1년에 자기가 1천억 원 정도의 현금 수입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사랑제일교회 수준의 교회가 1천억 원을 만들지 못하죠. 아스팔트 우파들이 몸으로 참여하든 아니면 다른 방식이든, 여러 사람이 (기부금을) 보낸 거예요.


김 : 내가 실제로 이렇게 강연하러 다니면서 아스팔트 우파의 언더클래스 노년층 얘기를 많이 했을 때, 그 교회에서 화를 내는 할아버지들이 있었어요. “내가 우리 교회에 대를 이어서 우리 교회의 주인이다." 주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분들이 예전에 기업의 사장도 했고, 총장도 했고, 대학 교수도 됐고, 한국 사회의 이너서클(핵심그룹)에 들어가는 이런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분들이 이제는 “내가 태극기 집회다."라느니 “태극기 우파, 태극기 애국자다"라는 이야기를 씁니다. 그런 분들이 교회에 헌금 내는 것을 줄이고 기부금을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서 전광훈 현상은 지속해서 일어났어요. 그런데 윤석열 정권 들어서 정치를 정말 못했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교회 그룹 안에서 전광훈 세력이 점점 왜소화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광훈이 가끔 (국민의힘) 기획 입당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기획 입당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당원 수가 확확 늘어났고, 그것이 입증되었어요. 그렇게 기획 입당 이야기가 나온 이후부터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의 발언이 극우화되었어요. 극우 세력들의 발언권도 이제 당의 흐름과 기세가 당원들을 정치적으로 결속시켰고, 다른 계파들은 상황이 헷갈리고 입을 닫고 있으니 당 전체가 극우 아스팔트 세력에게 휘둘린 것 같아요.


최 :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가운데서 극우 아스팔트 세력이 분화되지 않나요? 세계로교회의 손현보는 또 뭡니까?


김 : 그게 이제 흥미로운데, 저는 사실 손현보는 잘 몰랐는데, 서강대학교 서명삼이라는, 젊고 뛰어난 교수가 이 손현보를 굉장히 많이 연구했어요. 서명삼 교수에 의하면 손현보가 2023년부터 극우 드라이브를 했다는 거예요, 나는 손현보와 인연이 있는데, MBC 100분 토론인가에 같이 출연했어요. 주제가 뭐냐면 '대면 예배'예요. 그분은 대면 예배를 강력히 주장했고, 나는 반대해서 같이 출연한 것인데, 그때 손현보라는 인물이 갑자기 사회적으로 클로즈업된 거에요. 교회들이 대면 예배를 안 하면 정말 타격이 커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빈곤율도 심한 상태에서 교회의 주 수입원은 헌금인데 출석률이 현저히 줄어드는 겁니다. 또 대면 예배를 안 하면 헌금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 그런 것도 정착이 안 되어 있고, 그러니까 목사들이 예배를 해야 생존할 수 있는데, 사회적인 분위기는 일방적으로 대면 예배를 중단한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했어요. 목사들도 동의할 수밖에 없지만 마음은 동의하지 못해요. 하지만 나서서 이야기할 용기가 없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손현보가 나선 겁니다. 그리고 손현보는 스타가 되었어요. 지금 우리가 아는 손현보는 24년~25년 초부터잖아요? 그런데 지금부터는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김 : 23년도 하반기에 빌드업코리아라는 컨퍼런스가 열려요. 이게 뭐냐면 미국의 트럼프를 부활시킨 극우 개신교 리더들이 있어요. 그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신사도 운동((new apostolic movement)'이예요. 그들은 성령 운동에 세 번의 웨이브(파도)가 있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첫 번째 웨이브는 20세기 시작할 무렵이고, 두 번째 웨이브는 대략 한 60년대 후반, 그리고 세 번째 웨이브는 80년 이후에요. 그게 자본주의 발전 과정과 연결이 되는데, 산업화가 이뤄지는 시기에,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현상이 바로 첫 번째 웨이브와 연결돼 있고, 두 번째 웨이브는 소비 자본주의가 막 활성화되는 시기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웨이브는 다 소외된 계층 사이에서 일어나는 성령 운동이에요. 그런데 세 번째 웨이브는 굉장히 흥미롭게도 중상류층이 많아요. 온누리교회에서 신사도 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했어요. 세 번째 웨이브를 수입한 거예요. 하용조 목사의 동생이 수입상이죠. 문제는 신사도 운동에 대해서 한국교회에서 이단 시비가 붙었어요. 하지만 그건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나 그런 거지 신자들 사이에는 그렇지 않아요.


김 : 이를테면, 창조과학회를 만든 분, 그분이 은사 집회를 주도해요. 이분은 과학자예요. 매주 1천 명씩 참석해요. 거기엔 다 사회 중상위층이 많아요. 이 중상위층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이 사람들은 자기의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 활성화되어 있고, 자기를 불태워서 막 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끊임없이 나를 쇄신해야 하는 사람들, 내가 하나의 기업이에요. 조직에 끌려가서는 못 살아, 그런데 내가 무엇인가에 실패하면 내 안에 뭐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해요. 그걸 극복해야 하는데, 너도나도 경쟁자를 제치고 이겨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이제 지치는 거지, 그걸 번 아웃이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사람이 소진되면 병으로 나타나죠. 정신질환이 나타나고. 그런데 이 사람들이 병원에 가면 별 처방이 없어요. 가족력이 있네,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 뭐 별게 없는 거죠. 그런데 그들 사이에서 은사 집회가 열리는 거예요. 과학자가 그걸 이끄는 거예요. 매주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요. 그런 게 퍼져 나간 겁니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미국과 영국, 캐나다 같은 곳에서 이미 있었거든요? 게다가 이런 걸 서사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서사로 만드는 집단 중 어떤 네이밍이 나오냐면 바로 '신사도 운동'이라는 네이밍이 나오는 거예요.


최 : 현대 사회의 병리학적 현상이 종교현상으로, 소위 은사 집회니 뭐니 하면서 나타나는 것이네요?


김 : 그렇죠. 이 신사도 운동의 사도는 카리스마적 리더인데, 사실 개신교가 1세기에 카리스마적 리더들이 그 학력이나 성별, 신분과 관계없이 카리스마적 능력이 있으면 지도자가 되었잖아요? 그게 사도예요. 그런데 교회가 제도화되면 이제 사도는 불편하지... 그 사회 안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렇게 되니까 교회가 교리적으로도 사도의 시대는 끝났다, 라는 것을 선언한다는 말이에요. 카톨릭은 사도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지 않지만 사실상 끝난 거예요. 교황만 사도가 됐고, 그러니까 사도 시대는 끝난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미국에서 신학 공부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성령 운동 지도자로 등장합니다. 누군가가 사도가 다시 왔다, 라고 하니까 이제 기존의 교회 세력들은 불편하지요. 그리고 그게 대중사회에 막 뻗어 나간 거예요.


김 : 그런데 그 신사도 운동 지도자들, 이들이 평신도 엘리트들이잖아요? 다분히 정치적 성격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들 중 일부가 트럼프 부활을 주도한 거예요. 주로 온라인과 연결돼 있고, 미국의 온라인 우파를 '대안 우파'라고 부릅니다. 대안 우파 그룹 중에 기독교 그룹들이 있어요. 그들 상당수가 신사도 그룹인데, 신사도 운동을 이끌었던 그 스타들 몇 명이 한국에 와서 손현보와 함께 집회를 개최한 것이 바로 빌드업 코리아예요. 손현보의 아들이 울산대 교수로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수입상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을 매개로 해서 이제 자기 아버지가 한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의 손현보 그룹이 된 것이죠.


최 : 그러고 보면 손현보는 갑자기 '듣보잡'이었는데 뜬 것이 아니라 탄탄한 이론적 배경이 있네요?


김 : 손현보는 전광훈과 다르게 완전한 이너서클에 포함됩니다. 그 교단도 고신파라는 기독교 주요 교단이고... 개신교 목사의 굉장히 중요한 평가 기준이 자수성가거든요? 메가처치를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이 만든 메가처치는 부산의 강서구인가 그런데 그곳이 가난한 동네였대요. 그 지역에서 자신이 열심히 해서 대형 교회를 만들었어요. 그 교단의 Top 10에 드는 사이즈로 키운 거죠. 그러니까 이 손현보에 대해 평가가 굉장히 좋을 수밖에 없죠. 그 교단 사람들이 굉장히 좋게 평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손현보가 스타가 되니까 개신교 지도자들이 “전광훈하고는 같이 안 해도 손현보하고는 같이한다."라는 말이 많이 해요.


최 : 상황을 보아하니 손현보는 전광훈과 함께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김 : 그렇죠. 손현보가 처음에 나올 때는 전광훈과 손잡고 나왔다가 같이 할 수가 없어요. 하나는 이너서클이고 하나는 아웃사이더니까. 그리고 전광훈은 끊임없이 개신교의 교리 체계를 흔듭니다. 손현보는 절대 안 그래요. 전광훈은 언행이 서사적이지 않거든요? 손현보는 언행이 굉장히 서사적이에요. 그리고 이듬해 2024년 빌드업 코리아가 또 열려요. 2차 빌드업 코리아가 8월에 열리고, 그해 10월에 손현보가 주도한 대규모 집회가 열립니다. 그게 10월 27일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입니다. 그리고 손현보는 갑자기 급상승하는 인물이 된 거죠. 그러다가 계엄 사태가 일어나면서 전광훈과 손현보라는 두 인물이 등장한 셈인데, 두 사람 다 일종의 기량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 전광훈은 노인들 같은 사람들이 좋아하잖아요? 근대적 교회에서 퇴출이 된 사람들, 아웃사이더 노년층들이 전광훈 집회에 많아요. 전광훈은 일종의 프로 모더니티(탈 근대적 혹은 전 근대적) 같은 성격이 있어요. 또 계엄 사태 때 온라인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오프라인으로 나왔잖아요? 그런데 오프라인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약간 포스트모던적 성격이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오프라인에 나와서 손을 잡을 장소가 일부는 손현보와 손잡고 일부는 전광훈과 손을 잡는데, 손현보와 함께 손잡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많은가 하면, 내가 손현보와 같이 가면 개신교로 개종해야 될 것 같다, 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요. 반면 전광훈은 아니에요. 전광훈은 개신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아무 종교든 관계가 없어요, 기독교인 아니어도 아무 상관이 없어, 심지어 교회당에 모이지도 않고 광장에 모여요. 광장에 모여서 전광훈은 끊임없이 교리를 뒤흔들어요. 전광훈이 가지고 있는 메타교회 성격이 있는 것인데, 이렇게 하나는 전근대적(전광훈)이고, 또 하나는 포스트 근대적(손현보)이에요. 온라인의 청년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왔는데, 노년 극우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요. 노년이든 청년이든 양쪽 다 극우를 지지하지만, 문화적으로 너무 다르거든요. 전광훈은 그 둘을 조합시킬 능력은 없어 보여요. 향후 어느 쪽으로 초점이 맞춰질까? 걱정되는 것은 전광훈이 청년들과 결합하면서 '테러리즘'에 연결된다는 우려가 있어요.


최 : 제가 생각하기에는 서부지법 사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아무리 극우적인 성격을 가진 대중이라 하더라도, 법원을 부수고 헌재를 해체 시키겠다는 전광훈의 내재 된 폭력성이라든지 활동이 좀 당황스럽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렇다면 전광훈 대신 대체되는 것이 손현보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거든요?


김 : 대체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전광훈은 이미 개신교에서 처벌할 길이 없어요. 이미 개신교 바깥에 나와 있어요.


최 : 이번 내란 사태와 관련한 선동이라든지, 여러 문제가 처벌되어서 사라진다면 그 조직은 '형해화'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 : 그가 사라져 버릴지 이제 어떤 식으로 대중과 연결될 것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정광훈과 연결해서 우려스러운 것은 테러리즘이예요. 현대 테러리즘은 '스폰서 테러리즘' 성격이 있거든요. 과거의 테러리즘은 헤드쿼터가 있고, 지도자가 테러를 감행하기로 마음먹은 젊은 열사와 결의를 같이 하면서 적의 심장에 칼을 꽂겠다, 이런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테러리스트들이 스폰서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해요, 어떠 어떠한 테러를 하겠다... 그러다 보니 어떤 조직을 깨도 그것이 테러리스트와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아요. 이 테러리즘이 무서운 것은 프리젠테이션 하는 사람들이 하는 조직이 (스폰서로부터) 선정되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과격하고 잔인한 계획들을 해요. 9.11 같은 경우도 그렇고, 무슨 락 공연장에서 기관총을 난사하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트럭으로 밀고 가고, 이렇게 굉장히 자극적인 행위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무차별적 폭력이 되는 거죠.


최 : 그렇다면 전광훈과 연결된, 보이지 않는 그룹들 가운데 그런 스폰서 테러리즘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김 : 전광훈은 돈이 있어요. 하지만 테러리스트 가능성이 있는 청년들이 전광훈을 메시아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온라인에 있다가 오프라인으로 나온 그들 중에는 항상 뜨거운 사람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동시에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도 있어요. (서부지법 사태로) 실제로 나타나기도 했죠. 칼럼니스트 박권일씨는 주목경쟁(attention struggle)이라는 말을 썼는데, 온라인에서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들이 가진 이념, 혹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이념 때문에, 상대방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주목받기 위해서 (증오) 한다는 거죠. 주목받기 위한 경쟁을 하다 보니까 굉장히 자극적인 행동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 온라인 행동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왔을 때는 다른 새로운 환경이잖아요? 그렇다면 여기에는 돈이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그사이에 쌓인 오프라인의 노하우도 있고요, 온라인에서 할 수 없는, 좀 더 실체적 범죄와 더 잘 연결되는 조직과 사람이 오프라인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굉장히 위협적인데, 그들이 조직적으로 전광훈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이 아닌데 링크되기 시작했다, 라는 것은 이 '스폰서 테러리즘'의 위험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는 겁니다.


최 :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전광훈이 이런 상황이라면 손현보의 현재는 어떤가요?


김 : 손현보도 모순이 있어요, 손현보는 이너서클 중 이너서클이예요. 손현보는 한국의 개신교회 보수 중에 많이 우파화 되어 있는 그룹들이 링크되어 있어요. 손현보라면 나는 같이 할 수 있다, 라고 하고 있는데, 또 다른 그룹, 손현보를 극우화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미국의 신사도 운동 계열의 미국식 극우예요. 미제 극우죠.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한국 교계의 보수 지도자들이 신사도 운동을 이단시해요. 또 그러니까 둘 사이에 잘 연결되지 않는 갈등이 있어요. 손현보는 과연 그런 상황에서 어느 쪽으로 움직일까... 난 양다리를 걸칠 것이고, 지금 그렇게 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손현보의 행동을 보면, 교계 지도자들과 더 연결되는 것처럼, 그 스스로 위험스러움을 덜한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어요. 상황이 이러면 이제 한기총 같은 그런 극우가 다시 나올 가능성이 있지요.


최 : 일부에서는 네오파시즘을 걱정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김 : 안 그래도 제가 만난 몇 분 중에 한국의 네오파시즘(Neo-fascism)을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네오파시즘보다 테러리즘이 더 걱정이에요. 네오파시즘은 이번에 당분간 실패했다고 보거든요. 경쟁에서 졌기 때문에 그래요. 이제 그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아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네오파시즘을 걱정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는 아마 이재명씨가 대통령이 되면 그때부터 강력한 저항을 할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저항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연 시민들이 공조를 할 것이냐, 라는 건데, 저는 시민들이 아직은 그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아직 네오파시즘이 한국에서는 잘되지 않을 것 같고, 이미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연구소들에서 한국을 고평가하고 있어요. 한국은 아마 세계 민주주의가 퇴조하고 있는데, 민주주의가 약진하는 모범 사례의 나라로 평가될 가능성이 많지요.


최 : 그런데 제가 또 한 가지 궁금한 것 중 하나가, 이번 12.3 내란 사태 이후 극우 파시즘들의 구호 중 하나가 '중국 혐오'예요. 저는 사실 왜 이리도 중국을 혐오하는지 모르겠거든요? 그냥 중국 관광객들이 지나가면 굉장히 지저분해! 이 정도가 아니잖아요? 왜 중국이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인가요?


김 : 일단 청년들은 이념과 관계없이 상당한 중국 혐오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 이념적으로 혐오와 연결될 수 있는 베이스가 된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은 이념적으로 중국과 혐오적인 담론을 만드는 그룹은 라이트 그룹 중에 뉴라이트예요. 우리 한국의 뉴라이트는 일본 뉴라이트와 연계가 많아요. 그리고 이건 추측인데, 자는 예전부터 이 뉴라이트가 통일교와 연관성이 있다고 추측해 왔어요. 의심이 갑니다. 일본에서 아베가 죽은 이후에 통일교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가 있었어요. 굉장히 유명한 국제적인 저널 아시아퍼시픽 저널(Asia-Pacific Journal)에서 통일교 특집을 다룬 적도 있어요. 그곳에서 저한테 자문을 구하기도 했는데, 통일교가 일본에서 아베로 표상되는 자민당 극우 그룹들을 인큐베이팅 했거든요? 자민당 극우들이 통일교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NHK에서도 보도했고, 굉장히 개연성이 높아요. 그런데 한국에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 정권의 성격을 검찰 특수부 정권이라고 했잖아요? 사실 뉴라이트 정권이기도 해요. 용산에 뉴라이트 인사들이 대거 들어간 것이 맞거든요, 그리고 윤석열 정부가 2022년~2023년 무렵에 국가보안법으로 개신교계 몇몇 사람들을 기소했어요. 그때 다들 왜 이렇게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했지? 하고 의아해했어요. 그러니까 윤석열 정부가 검찰 정부이지만 한쪽 편에는 이념 드라이브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었던 거예요. 일종의 반부패 등의 주제로 인지 조사했던 검사들도 있지만, 점점 국제 정치를 비롯해 여러 지점에서 이념 드라이브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념 드라이브의 수렴점이 한・미・일 군사안보입니다.


김 : 그런데 문재인 정부 시절, 동아시아 평화 체제 이야기가 나오고 판문점 선언 이야기가 들릴 때, 아직 남북한 지도자가 만나기 전 실무 회담이 예정된 이틀 전인가, 일본의 되게 유명한 자크자크(Zakzak·극우 매체 산케이 계열의 온라인 매체)라는 매체에서 '新에치슨 라인' 이야기가 나왔어요. 내용은 간단해요. 미국을 배제하니까 한국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때처럼 한반도가 이상한(?) 평화 통일이니 평화 체제니 하고 주장 하는데,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빼고, 스킵하고 대만을 연결하는 新에치슨 라인을 그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명박 정권 때 홍보 비서관을 했던 추부길씨가 운영하는 '와이 타임즈'라는 곳에서 그걸 딱 받아서 비판하는 이야기 나와요. 그리고 이후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후에 윤 정부의 이념적인 국제 정치 행보를 보니까 일본의 자크자크와 한국 추부길의 와이타임즈와 딱 비슷하게 가요. 이게 뉴라이트 시점이거든요. 일본 극우 중에 아베파 한 그룹은 일본식 뉴라이트인데, 그런 그룹들이 중국 혐오와 한국 혐오를 굉장히 강조합니다. 그리고 한국 뉴라이트 그룹들은 일본 뉴라이트와 링크돼 있는데, 그들은 중국에 대해 이념적으로 공격하는 집단이에요. 미국은 세계화 전략을 해 보니까 중국만 성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워싱턴의 컨센서스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중국 공세입니다. 어떻게든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고, 민주당의 바이든이 신냉전 이야기하고, 그때 중국에 대한 혐오가 굉장히 강했어요. 또 문화적으로도 한국인들 사이에 중국인 혐오가 있잖아요? 저는 그게 다 연결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최 :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든지 중국이 한반도와 한국에 대해서 공격하는 것들이 있기에, 본능적으로 보호하는 차원에서 反중국 정서는 있을 수 있지만, 유독 12.3 내란사태 이후 극우들의 시위에서는 중국 혐오가 아주 노골화 되면서 이게 어떤 의미인가 궁금했거든요? 이제 이재명 정부가 되었든 정권교체가 된다면 신정부가 파시즘적인 성격을 가진 이런 그룹들을 청산할 수 있을까요?


김 : 그들만 표적 삼아서 청산을 하지는 못할 것이고, 친위 쿠데타와 연결된 집단들을 지금 재판하고 있으니까, 결과가 나오겠죠. 그런데 한국은 용어가 없는데 저는 온라인 우파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넷우익이라고 부릅니다. 우선 온라인 우파는 주로 압도적으로 청년 엘리트층이 많아요. 스펙도 좋은 20~30대 청년 집단들인데, 윤석열이나 전광훈에 대한 논란이 있어요, 어떤 논란이냐면 청년들이 이념적으로 (윤석열, 전광훈과) 동화돼 있잖아요? 그래서 나온 논란이 메시아 논쟁인 거예요.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이념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냐, 아니면 전략적 선택이냐 하는 것입니다.


최 : 우리도 1987년 6월 항쟁이 끝나고 12월 대선 공간이 열렸을 때 DJ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논쟁이 있었지요?


김 : 그런 비슷한 논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똑같은 논쟁이 미국에도 있어요.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이 전략적이냐, 아니면 트럼프가 중요해서 지지하는 것이냐, 그러니까 트럼프가 유능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트럼프가 싫은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여기가 또 복잡해요, 유대인 커뮤니티가 있고 반유대인 커뮤니티가 얽혀 있고 그래요, 엄청난 논란이 많은데, 일단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으로만 단순화시키면 그들의 지지가 전략적인 부분이 있어요, 그들은 언제든지 트럼프를 대체할 사람들이 있다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쉽지 않아요. 그런 인물 하나 나오기 쉽지 않거든요.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전광훈이든 누구든 그가 거세되면 그럴 대체하는 시도들이 계속 있을 것이고, 바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단기간에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맥락에서 나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성 연구소가 평가하는 것 같은 그런 기준, 서구의 진보 매체들이 평가하는 것 같은 기준은 더 많은 민주주의, 모어(more) 데모크라시거든요. 민주주의의 다양성이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 : 최근에 이재명씨의 행보를 보면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자마자 보수진영의 사람들을 영입하잖아요? 민주당이 포괄정당이라고 명확히 하는 겁니다. 옛날에도 포괄정당을 추구했지만, 지역을 못 뚫었잖아요? 지금은 마구 뚫고 있어요. 이제 그렇게 하는 행보는 진짜 포괄정당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모어(more) 데모크라시에요. 그런데 한국의 진보 정당들이 못하는 새로운 현상들이 보이는 게 한국적 현상이기는 한데, 우선 민주당의 당원이 너무 많아요. 250만 명이라고 해요.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당원이 있는 경우가 없어요. 당원이 많다 보니까 당원의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느냐가 위에서 그냥 정하는 것보다 힘들어요. 그래서 지금 민주당이 직접 민주주의 실험을 하는 겁니다. 내가 볼 때 굉장히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모어(more) 데모크라시도 있지만, 딥(deep) 데모크라시가 중요해요. 모어(more) 데모크라시는 발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발언함으로써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발언권을 못 갖고 있는 사람도 대단히 많아요. 온라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환경이 바뀌었어요. 20세기 초에 극우가 발생할 때는 매스미디어가 함께 나타나면서 대중이 등장한 거예요. 바로 그 대중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니까 그때의 지식인들이 막 설왕설래했어요. 그런데 그들을 유인했던 것이 바로 파시스트들이었어요. 그래서 대중들이 강력한 파시스트의 지지 세력이 된 것이죠. 지금 개신교에서 굉장히 중시하며 나오는 이름, 본회퍼 같은 사람은 전형적인 엘리트주의자예요. 이 사람은 대중을 무시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나찌나 독일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같은 사람은 대중의 생리를 잘 알고 전 국민에게 라디오를 보급했잖아요? 그런 식으로 대중을 주체화시키는 거예요.


김 : 그런데 21세기 미디어는 이제 쌍방 미디어에요. 이제 대중의 발언권이 20세기 초보다 훨씬 더 다양해졌고 적극적이에요, 이 대중이 지금의 대의제 민주주의로는 단순히 수렴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제 여기저기서 막 목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민주당 안에서도 여성들에 대한 관점이 충돌하고, 그러는 것들이 전형적으로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담론 체계와 새롭게 등장한 정치 세력으로서 여성들과 만나기 힘든 것이죠. 그렇게 지금 직접 민주주의 실험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발언의 이니셔티브(주도권)를 대중에게 먼저 주겠다는 것 아니에요? 그런 실험들이 얼마만큼 성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사실 이런 실험은 진보가 해야 하는데, 진보는 그런 직접 민주주의적 실험을 아직 말만 하지 실제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걸 포괄정당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이 먼저 합니다. 이게 진보적인 색깔을 가진 직접 민주주의로 가게 될 것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진보가 필요한 건데, 지금 민주당은 어떤 형태로든 대중의 이야기를 많이 포용할 겁니다.


최 : 여러 가지 상황을 말씀해 주셨는데, 외국의 상황도 함께 이야기해 주시죠.


김 : 미국이 실패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에요. 미국 민주당의 선거연합이 항상 강력했고, 그래서 공화당도 자기들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민주당의 아젠다를 따라가면서 성공했단 말이에요. 뉴딜 연합(1930년대부터 민주당(미국)을 중심으로 한 정치 연합)이 붕괴된 이유는 뭐냐 하면 대중들이 발언권을 갖게 된 거예요. 대중들이 볼 때, 미국 민주당이 늘 국민 이야기만 하지만 자기들끼리 다 해쳐먹고 우리한테 안 준다는 것 아니에요? 그러자 대중들이 누구를 지지하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자신들의 색깔에 맞게 지도자를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대중들이 지도자를 빌드업 시키는 겁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트럼프 현상이죠. 미국과 유럽에서 파시즘 현상이 나타나는 현상들이 20세기 초와 다른 특성으로 뉴미디어가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미디어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대중들이 사실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그들을 기존의 정치 세력들이 그 사회 체제 안으로 흡수해 내지 못하면 그들은 언제든지 그 체제를 위험스럽게 흔들 것인데, 그들이 지금은 당장 유럽이나 북미에서 파시즘으로 끌려가고 있는 겁니다.


최 : 그럼 선생님 생각에는 우리 한국도 그런 파시즘으로 끌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시는 건가요?


김 : 갈 수는 있는데 지금 당장은 윤석열 덕분에 못 간 거예요. 그 집이 실패해 준 바람에. 그런데 이제 그들이 다시 규합하고 힘을 얻어 갈 때까지 약간의 시차가 있다고 봐요. 그래서 이재명씨한테 시간이 있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모어(more) 데모크라시가 아니라 딥(deep) 데모크라시를 하려면 한국의 진보가 그런 차원에서 살아 있어야만 하는 겁니다. 대중들의 목소리를 어떤 형태로든 대언(代言)해 내야 하는 거예요. 이게 대의제 체제처럼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마 무엇무엇무엇이다, 라고 먼저 말해서 될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최 : 오늘 말씀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일본 등의 국제 전략적 차원에서도 많이 이야기하셔서 전체적으로는 이해를 했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요, 현재의 상황에 대해 나름 자기의 생각을 하는 기독인들, 또는 현재 현직에 계신 목사님들이라든지, 이런 분들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정리해 주시죠.


김 : 한국 개신교가 밖에서 보면 하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그 다양하다는 것도 약간 진보적 개신교, 보수적 개신교, 이렇게만 보는데요, 개신교의 평신도들은 옛날하고 달라요. 최근 몇 년 동안 개신교인들의 사회의식 조사가 있었는데요, 거의 모든 영역에서 非개신교인과 오차 범위 이내예요. 다르지 않아요. 굳이 뽑자면 두 가지 정도가 있어요. 오차범위가 넘는 게 성소수자 문제와 신천지예요. 개신교가 총력전을 펼친 두 문제 정도는 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어요. 그런데 그것도 얼마나 앙상한 결과냐면요, 개신교 신자 중 성소수자 같은 경우도 성소수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아요. 얼핏 개신교의 목소리, 성소수자 혐오의 목소리가 엄청나게 쎈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리고 실제로 개신교회에서 목사님들 성소수자 지지했다고 징계를 받고, 신학생들 가운데 성소수자를 비판하는 걸 동의하지 않으면 입학시키지 않고, 학교에서 퇴학시키고,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신자들이 안 따라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개신교 정치, 정당을 만들려는 시도가 다 실패했어요. 문제는 개신교 목사들의 생각을 신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개신교 목사들이 모릅니다.


최 : 아니, 그걸 몰라요? 어떻게 모를 수 있죠?


김 : 그러니까 이 짓을 하는 것이죠. 제가 한 100여명 정도 인터뷰 한 적이 있어요. 대형교회 연구하느라고 대형교회에 귀속감이 높은 신자들을 인터뷰했었어요. 그들이 자기 교회에 대한 충성도는 높은데, 지난주 목사님의 설교가 뭔지 기억을 하지 못 해요. 개신교의 중요한 공론장이 목사의 설교인데, 신자들이 안 듣는 거예요. 그러면 개신교는 그 신자들이 자기네 교회를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지 물어봐야 하는 거잖아요? 왜 귀속감이 높은지 물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안 보는 거예요. 연구가 없어요. 그게 공백 지대란 말이에요. 또 개신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현상 중 하나는 개신교의 떠돌이 신자 현상이 대단히 많아졌어요. 코로나가 오면서 더 많아졌어요. 이 떠돌이 신자 현상은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이에요. 왜냐면 이 떠돌이 신자들이 떠돌아다니는 과정에서 더 많이 공부해요. 신앙 고민도 더 많이 하고요, 그렇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여러 종교를 접하고 또 비종교와 종교를 아우릅니다. 그러니까 이제 한국에 일종의 시민 종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이 떠돌이 신자들이 보여주기도 해요.


김 : 이 현상을 두고 개신교는 가나안 성도라고, 교회를 나간 성도라는 의미에서만 읽어요. 그런데 그들의 변화에 대해서는 몰라요. 그리고 지금 한국에 개신교가 신자의 수가 증가하지 않으면서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은 교회가 진보적 교회들입니다. 진보적 교회 신자들이 대거 이탈해 갔어요. 제가 리서치를 하느라고 이 교회, 저 교회에 다니다 보면 여기서 보는 사람을 저기서 만나고, 저기서 만나면 또 여기서 만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다른 신자 현상으로 그런 진보적 교회들이 변동하고 있는 겁니다. 옛날에 민중교회 하면 이제 막 노동운동을 하거나 빈민운동을 하거나 또 대학 졸업하고 그런 운동에 뛰어든, 헌신하는 청년들이나 그런 사람들이 모여드는 교회, 자기 정체성이 강한 교회들이에요. 이 교회(인터뷰 하는 장소인 '한백교회'를 의미)도 87년에 생겼는데, 신앙 고백이 있어요. 그런 교회들이 신앙 고백을 만들어서 우리는 '무엇이다'라는 것을 표명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진보적 교회들이라고 말하는 교회들의 상당수는 떠돌이 신자들의 현상과 연결돼 있어요. 그 떠돌이 신자들은 언제든지 다른 교회를 다니기도 하고 심지어는 여러 교회를 동시에 다니기도 하고, 교회를 다니면서 천주교도 가보고 절에도 가고, 노자와 장자를 읽고 오늘의 운세를 보는, 그런 다종교적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자기 목사가 정치적으로 어떤 발언을 하는 것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현상들이 미니멈 100만, 맥시멈 한 300만 명 정도 돼요.


최 : 우와~ 엄청나게 많네요.


김 :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이 지금 개신교에 있다는 것은 한국 개신교가 잘 모르는 개신교 얼굴이기도 해요. 그래서 지금 개신교에 대해서 우리가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또 목사들에게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 사회에서 지금 우리가 잘했던 것을 하자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한국 개신교가 굉장히 잘했던 것 중 하나가 돌봄 활동이에요. 제가 아름다운 재단에 많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제일 열악한 돌봄 활동하는 사람들한테 지원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절반 이상이 교회예요. 교회가 선정돼요. 그렇게 헌신적으로 (돌봄 활동을) 해 왔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오면서 예배만 중단된 게 아니라 돌봄 활동도 거의 중단되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이야기를 하나 할게요. 그 중단된 자리를 누가 채웠냐, 지금 그 자리에 신천지가 하고 있어요. 놀랍지 않아요? 대구 신천지가 폭탄 맞았잖아요? 폭탄 맞은 직후에 대구 신천지가 뭘 했냐면 미혼모 도움 활동을 했어요. 그러니까 신천지의 성장은 개신교가 혹은 한국 사회가 버린 사람들을 주운 것이죠. 그래서 신천지 사람들을 인터뷰 해 보면, 한국 사회, 교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학교로부터, 직장으로부터 린치를 당한 사람이 많아요. 그 사람들이, 신천지에 들어가서 성숙해지면 좋은데 성숙해지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신천지가 성숙하지 않다,라고 비판만 할 수 없을 만큼, 신천지 현상은 한국 사회에 버림받은 사람들의 현상이 응축돼 있어요.


김 : 그러니까, 우리가 놓쳐버린 사이에 고통들은 그런 식으로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한국 사회와 교회만 할 일이 아니고, 시민사회 전체가 다 고민하고 가져가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폭행을 가하고 있을 수 있어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람에게도 폭행을, 혹은 그건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동물일 수도 있고, 자연일수도 있어요, 그리고 여러 가지 기후들도 폭행을 당한 거잖아요? 코로나 바이러스도 어쩌면 우리한테 폭행당한 결과잖아요? 결국 그들의 서식지를 없애버렸으니까 그래서 생긴 것 아니에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이제 '언더클래스' 또는 '언더커먼스'(the undercommons, 서민 이하의 존재)들을 찾아야 하는, 그래서 그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 아닐까요? 에너지 경제가 해야 되는 것이, 그것이 아닐까요? 그런 것이 우리 과제인 것 같아요.


최 : 제게는 결론이 충격적인데요. 저희 어머님도 연세가 있으셔서 이제는 중단하셨지만 20~30년 동안 돌봄 활동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 의미를 이제 제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나고 나니까. 한국 개신교가 해 왔던 활동이었고, 그것을 놓치고 나니까 그것을 신천지가 이어받았다, 교회로서는 할 말이 없는 거죠.


김 : 2000년경부터, 그리고 2015~16년 사이에 신천지가 급성장해요. 그 성장 속도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성장을 제외하고는 제일 강력한 성장이었거든요. 신천지가 급성장할 때 신천지에 유입된 사람들 대다수가 개신교 신자예요. 청년층이에요. 그리고 신천지에 유입된 신자들 다수가 언더 클래스 청년층이에요. 그것이 말해주는 게 뭔가요? 21세기 세계화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누락 된 사람들이 나타나요. 2012년 이후 파시즘 현상이 막 불붙듯 일어났어요. 한국은 그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그 가능성이 있잖아요? 이제 그런 점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놓쳐버린 것들을 다시 찾아야 해요. 조용기를 우리가 비판하지만, 조용기의 큰 역할도 있는 것, 신천지에 큰 역할도 있는 것, 그건 그 사회가 가한 폭력의 피해자들이 그 안에 가서 힘을 얻은 것입니다. 그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 현상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리성을 치료하는 측면에서는 역할을 한 거예요. 그런데 진보가 못 한 거예요. 그것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과제라는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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