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왼쪽)과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간의 UAE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 정산금 분쟁이 끝내 국제중재로 비화됐다. 두 기관의 갈등은 단순한 계약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팀코리아' 체제를 구성하는 모회사-자회사 간 신뢰 균열과 함께 향후 원전 수출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10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 7일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에 UAE 바라카 원전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약 1조4000억원의 추가비용을 한전에 청구하는 문제에 대해 공식 중재를 신청했다.
바라카 원전은 2009년 한국이 처음 수주한 대형 해외 원전 프로젝트이다. 한전이 주계약자로서 발주처인 UAE 원자력공사(ENEC)와 계약을 맺었고, 한수원은 운영지원서비스(OSS) 계약을 통해 시운전과 운영 훈련을 맡았다.
그러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공기 지연과 원자재 비용이 급증하면서 약 1조4000억원 규모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고, 한수원은 이를 한전에 정산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한전은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억제 정책으로 인해 200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어 추가 비용을 정산해줄 수 없게 됐다.
한전은 “UAE 발주처와 정산되기 전에는 지급할 수 없다"고 맞서면서 한수원과 협의가 결렬되자 결국 한수원은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에 공식 중재를 신청하게 된 것이다.
김동철-황주호, 대표 간 입장 정면충돌
김동철 한전 사장은 최근 국회 발언에서 “한수원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히며, UAE 측과의 정산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맞서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추가 비용의 상당 부분은 발주처 요청에 따른 설계 변경과 공기 연장 때문"이라며, 한수원의 귀책 사유가 아님을 강조했다.
황 사장은 또 “바라카 프로젝트의 수익성 저하를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는 수출 원전의 사업성과 가격경쟁력을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향후 원전 수출 주도권을 놓고 한전과 한수원 간의 내부 경쟁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수원 체코 계약 연기 사태…“향후 원전 수출 한전 중심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
이 같은 갈등은 향후 원전 수출 구도에도 실질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체코 원전 수출 계약이 프랑스 EDF의 소송으로 연기된 가운데, 일부 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은 “계약 보류가 장기화될 경우 정부가 사업 주도권을 한전 중심으로 재편할 명분을 갖게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현재 팀코리아 체제의 비효율성과 책임 분산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며, 향후 '원전 수출 컨트롤타워'를 한전으로 단일화하거나, 통합 법인 또는 수출지원 기구를 설립하는 방안도 물밑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재무 갈등을 넘어, 모회사-자회사 간의 구조적 균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는 게 업계 전반적인 평가다.
특히 해외 수주 시장에서는 한국형 원전의 기술력뿐 아니라 조직 일체성과 실행 안정성도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작용하는 만큼, 이번 분쟁은 팀코리아 전체의 신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향후 중재 절차에 직접 개입하기는 어렵지만, 양 기관의 조율자 역할과 동시에 원전 수출 시스템의 구조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중재 결과에 따라 양사의 재무 구조와 국제 신인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체코 등 다른 해외 원전 수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따라서 정부와 관련 기관은 이번 사안을 신중하게 관리하고, 향후 유사한 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