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정환 SK텔레콤 네트워크인프라센터장, 유영상 SKT 대표,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왼쪽부터)이 8일 오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SKT 해킹 관련 단독 청문회에 출석했다. 사진=이태민 기자
최근 가입자 유심(USIM·가입자식별모듈)정보 해킹 사고로 물의를 빚은 SK텔레콤의 가입 해지 위약금 면제 여부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국민 불안감이 여전히 높은 가운데 유보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SKT에 대한 비판이 적잖다. 관건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진행 중인 법률자문 결과가 될 전망이다.
최태원 불참·유보적 입장 반복에 정치권 “사과 진정성 안 보여" 비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8일 오후 2시 SKT 해킹 사고 관련 청문회를 열고 위약금 문제를 비롯한 핵심 쟁점을 살폈다. 당초 과방위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소환해 책임소재 등을 따질 예정이었으나,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대미 통상 관련 행사 참석으로 불출석했다. 이에 따라 SKT 측에선 유영상 대표와 류정환 네트워크인프라센터장만 출석했다.
앞서 SKT는 전날인 지난 7일 위약금 면제 요구에 대한 의견서를 통해 △회복이 어려운 수준의 손실 불가피 △이용자 간 형평성 이슈 △사회 전반의 신뢰와 시장 질서를 고려할 필요 등을 근거로 들어 이같은 여론을 사실상 수렴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과기정통부의 법률자문과 이사회 논의 등을 거쳐 배상 방법을 도출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유 대표는 청문회에서 가입자들의 계약 해지 위약금을 면제할 경우, 1개월 동안 최대 500만명의 이탈이 발생하면서 3년 동안 약 7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객과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 예정인 '고객신뢰회복위원회'에서 위약금 문제를 비롯한 신뢰회복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귀책사유는 인정하지만, 위약금 면제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청문회에 이어 이번 청문회에서도 위약금 면제에 대한 뚜렷한 입장이 나오지 않자 과방위원들은 “사과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일부 의원들은 지난달 30일 열린 청문회에서 위약금 면제를 약속했음에도 이를 번복했다는 이유로 위증죄 고발 가능성을 시사키도 했다.
박정훈 의원(국민의힘)도 “SKT는 위약금 문제에 있어 고객 신뢰 회복보다 재무 손실 우려에 따른 기업 보호 논리로 일관하고 있다"며 “약관에 귀책사유가 있을 경우 납부 의무가 면제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는데, 이번 사고가 회사 귀책사유가 아닌 이유가 뭐가 있나"고 지적했다.
유사 사고 시 위약금 면제 판례 無…과기부 법률자문 결과가 변수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 또한 소극적 입장을 취해 비판을 면치 못했다. 과기정통부는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와 법률 검토 후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입장인데, 조치가 지나치게 늦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업계 안팎에 따르면, 현장 실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조사 결과는 최소 1달 반에서 최대 2달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23년 LG유플러스 개인정보 유출사고 발생 당시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약 두 달 반가량 소요됐다.
그동안 발생한 유사 사고의 판례를 살펴보면 집단소송에 대한 손해배상 과징금 처분과 관련한 판례는 있었으나, 위약금 면제를 결정한 판례는 아직 없다. 사실상 이번 사고가 첫 사례가 될 전망인 만큼 과기정통부의 법률자문 결과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강도현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법률 자문 현황에 대해 “최근 법무법인 3곳에 법률 검토를 진행했다. 여기에 법무법인 1곳을 더해 총 4곳에 법률 검토를 요청한 상황"이라며 “답변받은 내용을 종합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선 이후 정치권 압박 거세질듯…“통신사 보안 전면 재점검"
과방위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통신사 보안 체계를 전면 점검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국회 내 통신 전문 보좌진과 전문가 등으로 꾸려 사고 경과 및 대응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위약금 면제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과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 공방은 한층 더 거세질 전망이다.
다음달 3일 대선 이후 KT·LG유플러스 등 국가기간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보안 체계 관련 현안질의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는 현재 대선 국면과 맞물려 청문회 및 현안질의를 열기 어려운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SKT에 대해 끝까지 파헤치고 일주일 뒤 다시 청문회를 열고 싶지만 대선 일정 때문에 불가하다"며 “대선 이후 이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짚고 철저히 살필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