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추진 등 정국 혼란에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을 기미가 보이자 건설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불확실성 장기화로 입주·분양 시장까지 흔들릴 경우 유동성 위기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공사비 급등 여파에 각종 수익성 지표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자칫 '제2의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정치권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올해 연말과 내년 초 예정된 아파트 분양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지방 물량이나 정비사업 대비 흥행을 보장하기 힘들어 많은 물량이 풀리면 자칫 미분양이 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수도권 고점 논란과 정부의 대출 규제 이후 시장 분위기가 한풀 꺾이는 상황이었는데 대형 악재까지 터져 (분양 일정을) 미루는 방법을 내부적으로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건설사가 공사 잔금을 다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감은 계엄 선포 이전부터 조성된 상태다. 주택산업연구원은 '12월 전국 아파트 입주전망지수'가 전월 대비 5.2포인트 내린 88.6으로 집계됐다고 최근 밝혔다.
이 지수는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이 정상적으로 잔금을 내고 입주할 수 있을지를 예상하는 지표다. 주택사업자를 대상으로 조사해 100을 기준점으로 그 이하면 입주 경기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고, 이상이면 긍정적 전망이 많다는 의미다.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는 기조 속에 제한된 대출 한도가 입주 전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방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최근 주택통계에 따르면 10월 기준 준공 후 미분양은 1만8307가구로 4년3개월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남(2480가구)에서 가장 많은 물량이 나왔다. 경기(1773가구)와 부산(1744가구)가 뒤를 이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 집계를 보면 올해 들어 이달까지 부도 처리된 건설사는 총 29곳이다. 지방에 기반을 둔 종합·전문 건설사가 주로 문을 닫았다.
공사비 급등 여파로 급락한 건설사 수익성 지표는 회복이 요원하다. 올해 3분기 기준 국내 10대 건설사 평균 매출원가율은 93.0% 수준이다. 매출원가율은 건설사 매출에서 자재·인건비 등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통상 80%대가 넘어가면 유동성에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 수준이라고 읽힌다.
전망도 어둡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정국 불안에 환율이 치솟고 있어 공사비 부담 증가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걱정을 키우고 있다. 국내 경기침체가 길어질 경우 내수 위축으로 인한 주택 시장 타격도 불가피하다.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는 6일(현지시각) 우리나라가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정치적 리스크가 향후 몇 달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신용도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 가계와 기업의 신뢰가 약화하고 공공 재정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게 피치의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계엄 사태가 있기 전부터 일부 대기업 계열 건설사 유동성 위기론이 확산하는 등 분위기가 심각했다"며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중소 업체들은 앞날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아파트 분양의 경우 가격이 정해져있는 정찰제라 상한제 적용 단지나 서울 강남권 등은 (정국 혼란 여파로 인한)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면서도 “전반적인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고 지방 중소 건설사 등은 경영 환경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