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멀쩡한 원전, 왜 ‘서류’ 때문에 멈춰야 하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1.15 10:59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각주구검(刻舟求劍). 배에서 칼을 떨어뜨린 사람이 뱃전에 표시를 해두고 나중에 찾으려 했다는 고사다. 배는 이미 움직였는데 표시만 믿고 칼을 찾으니 헛수고일 뿐이다. 지금 전 세계 원전 시장은 급변하는데, 우리 규제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원자력은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다. 탄소중립과 AI·반도체 산업이 요구하는 폭발적 전력 수요를 감당할 유일한 대안이자, 국가 생존을 결정짓는 전략 자산이다.


미국은 속도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 5월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14300호를 통해 원전 규제 개혁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계속운전 심사 기간은 12개월로, 신규 원전 심사는 18개월 이내로 끝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심사 절차를 효율화하여 원전 가동을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다. 미국은 AI로 초래된 전력난 해결을 위해 이미 가동 원전의 대부분에 대해 계속운전을 승인하고 심지어 폐쇄했던 원전까지 다시 살려내고 있다.


반면 우리는 경직된 제도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행정 절차 때문에 멀쩡한 원전을 세워두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최근 계속운전 신청 기한을 앞당기는 제도 개선을 했지만, 일부 원전은 여전히 과거 규정에 묶여 계속운전 신청을 늦게 하면서 계속운전 심사 기간 중 가동을 멈추는 소위 '강제 정지' 사태를 맞고 있다. 원전 1기가 멈출 때마다 우리는 하루에만 수십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는다. 더 심각한 것은 법에서 정한 계속운전 기간인 10년에서 심사와 설비 개선에 소요된 기간을 뺀 기간만 운전하게 한다는 것이다. 제도의 허점이 전력 수급 불안을 야기하고 아까운 국부를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국익의 관점에서 계속운전 제도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첫 번째 단추는 계속운전 기간 산정 방식 개편이다. 계속운전 시작일을 운영허가 만료일이 아닌 계속운전 승인일로부터 따져 실질적인 10년을 보장하는 것이다. 현재는 심사가 길어지거나 설비 개선 공사가 지연되면 그만큼 운영 기간이 줄어들어 실제로는 6~7년밖에 가동하지 못한다. 정지 기간 중 원전은 안전하게 관리되어 안전성에 전혀 영향이 없음에도 단지 서류상 이유로 계속운전 기간을 줄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승인 시점에 기간을 명확히 정해주면 충분한 심사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사업자도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원전의 계속운전 여부를 판단하는 경제성 평가의 잣대를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 원전끼리 도토리 키 재기를 할 것이 아니라 전체 전력 시장이라는 큰 숲을 보고 평가해야 한다. 작년 기준 원자력 발전 평균 단가는 킬로와트시(kWh)당 60원대인 반면, 액화천연가스(LNG)는 170원대이고 석탄도 140원대에 이른다. 중수로가 경수로보다 조금 더 비싸다는 이유로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마치 전교 상위권 학생들만 모인 우등반에서 반 석차가 꼴찌라고 해서 그 우수한 학생을 학력 부진아 취급하며 퇴학시키려는 것과 다름없다. 어떤 발전원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경제성을 가진 원전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미 계속운전이 승인된 원전의 설비 개선 공사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면제해야 한다. 계속운전을 위해 낡은 설비를 교체하는 것은 안전을 위한 필수 과정이다.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승인했다는 것은 그 기술적 타당성과 안전성을 이미 인정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행정 절차상 예타를 다시 받게 하는 것은 중복 규제이자 행정력 낭비다. 설비 교체 지연은 원전 가동 지연으로 이어지고, 그 비용은 국민의 전기요금 부담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계속운전이 승인된 원전의 설비 개선 사업은 국가재정법 제38조제2항에 따라 예타를 면제하는 등 패스트 트랙을 만들 필요가 있다.


결국 핵심은 낡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과감한 결단과 정부의 강력한 의지다. 원자력은 다가오는 미래 산업 전쟁의 승패를 가를 전략 무기이자 기후 위기의 방패다. 행정 편의주의와 절차의 늪에 빠져 우리의 핵심 자산을 멈춰 세우는 것은 국가적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제도를 정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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