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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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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가, 상장이 기대되지 않는 이유는?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8.28 15:19

9월까지 상장 못하면 투자금 반환 조건

수익률 미달하면 대주주 지분도 넘겨야

제3자 매각한 SK쉴더스 전철 밟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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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가 CI


[에너지경제신문 강현창 기자] SK그룹의 이커머스 업체 11번가의 상장 기대감이 크게 꺾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상장을 약속한 시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상장예비심사조차 청구하지 못했다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별히 SK 입장에서는 11번가의 상장 시한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11번가는 오는 9월까지 상장을 약속하고 투자자들에게 5000억원이라는 거금을 받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원금과 함께 이자까지 지불해야 한다. 상장에 실패할 경우 투자자들이 대주주의 지분까지 처분할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까지 걸려있어 자칫 하면 SK가 11번가를 잃을 수도 있다.


◇ 9월 상장 실패하면 SK 피해 막심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1번가는 재무적 투자자(FI)들과 오는 9월 30일까지 기업공개(IPO)를 하겠다고 계약하고 거액을 투자받은 상태다.

11번가는 지난 2018년 SK플래닛에서 인적분할로 떨어져 나올 때 국민연금과 새마을금고, H&Q코리아(PEF)로 구성한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으로 총 5000억원을 투자받았다.

당시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이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거액을 투자받으면서 후끈 달아오르던 시기였다. 11번가는 최대 5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도 기대했지만 결국 나일홀딩스 컨소시업으로부터는 2조7000억원대의 몸값을 인정받았다.

자신감이 넘치던 SK 측은 11번가의 상장에 통 큰 베팅을 했다. 투자 후 5년 뒤인 2023년 9월까지 상장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투자금에 연 8%의 이자까지 붙여주겠다고 계약했기 때문이다.

상장을 약속하면서 걸었던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나일홀딩스는 11번가의 상장을 통해 최소 3.5%의 연간 내부 수익률을 거두지 못하거나 상장에 실패할 경우 드래그얼롱(동반 매도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계약 조건도 가지고 있다.

드래그얼롱이란 소수 주주가 지배주주 지분까지 제3자에게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결국 11번가가 상장에 실패할 경우 대주주인 SK텔레콤 지분(80%)까지 함께 팔려 나갈 수 있다.


◇ 기업가치 2.7조→ 1조원대 하락

하지만 11번가는 아직 상장 예비심사 청구도 이뤄지지 않았다. 연내 상장하기 위해서는 7월에는 예심 청구에 들어가야 했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설명이다.

SK그룹 입장에서는 현 시장 상황에서 11번가의 상장을 추진하는 것은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2018년 투자를 받을 당시 11번가의 기업가치는 2조7000억원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현재는 1조원대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 지마켓 창업자인 구영배 대표가 2008년 싱가포르에 설립한 큐텐이 최근 11번가의 인수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거론된 몸값이 1조원대였다.

이런 분위기라면 상장하더라도 재무적 투자자의 수익이 낮아 드래그얼롱에 의해 지분을 매각당할 수 있다. 결국 SK 입장에서는 상장을 해봤자 그 과정에서 11번가를 잃게 된다.

현실적으로 SK측은 현재 나일홀딩스 컨소시엄 측을 설득해 상장을 연기하거나 다른 곳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 SK그룹 입장에서 11번가를 계속 계열사로 유지할 이유는 크지 않다. 석유와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통신사 등이 그룹의 주 먹거리인 상황에서 이커머스 업체와 시너지를 낼 부분이 뚜렷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11번가, SK쉴더스 전철 밟나


앞서 SK그룹은 보안업체인 SK쉴더스를 상장하려다가 시장의 냉담한 반응에 매각으로 반향을 선회한 바 있다. 3조원의 몸값을 기대하며 추진했던 IPO는 실패했고 스웨덴의 사모펀드인 EQT에 대주주 자리를 넘겨줬다. 그 과정에서 SK 측이 건진 현금은 2000억원대에 불과하다. SK쉴더스에 투자했던 맥쿼리PE에 엑시트 기회를 주는 것 외에는 의미를 찾기 힘든 딜이었다.

금융투자업계는 11번가도 결국 SK쉴더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때 SK그룹이 공모주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리라 생각했지만 SK쉴더스와 원스토어에 이어 11번가까지 상장이 어려워지면서 기대감이 모두 사라졌다"며 "무리하고 복잡한 계약을 통해 투자유치를 받아 결과적으로 상장 적기를 기다릴 수 없게 되면서 기업공개가 어렵게 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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