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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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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 칼럼] 은행개혁, 해법은 주담대 정책 이원화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6.06 06:14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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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과도한 이자이익과 보너스 잔치를 질책한지 벌써 넉 달이 지났다. 그간 금융위원회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금융위 TF)를 꾸려 대안 모색에 나섰고 이달말까지 개선방안 마련을 예고한 바 있다.

필자는 은행권 개혁 필요성에 공감한다. 저비용예금과 담보대출에 의존하는 국내은행의 천수답 경영으로는 한국경제의 선진화 항해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지적한 은행권의 이자이익 급증이나 과점상태는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이자이익 급증은 최근의 금리상승세 때문이고, 보너스 잔치는 욕심을 부렸지만 민간기업의 경영이슈일 뿐이다. 그리고 은행권의 과점상태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은행 대형화 정책을 추진한 결과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은행들로 하여금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 한국경제 선진화에 필요한 금융중개역할을 제공하도록 할 것인가’에 있다. 이런 시각에서 그간의 금융위 TF의 개혁안을 살펴보고, 새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저축은행을 지방은행으로, 지방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전환토록 허용하는 방안이다. 이는 은행 수를 늘려 과점상태를 해소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은행 간 소모적 점유율 경쟁을 부추겨 금융서비스의 질적 개선과 부가가치 창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일정한 천수답 농지를 보다 많은 농부가 경영한다고 효율성이 높아지지 않는다.

다음으로 영국 챌린저은행(Challenger Bank)이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같은 특화은행을 신규로 허용하는 방안이다. 전통은행의 규모와 복잡성을 피하고 핀테크 기법을 사용해 온라인 전문은행으로 차별화하려는 것으로,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통해 이미 시도한 방안이다. 그 성과를 살펴보면 금리경쟁을 촉발시킨 부분은 인정되지만 중금리 대출이나 틈새시장 공략 등 당초 기대했던 ‘메기효과’는 보이지 않는다. 챌린저은행도 영국 시중은행 대비 매력적인 금리 및 간편송금 기능으로 수신규모를 늘렸으나 개인신용대출 비중은 미미하다는 평가다. 그리고 SVB의 파산 이유중 하나가 혁신 스타트업을 집중 지원하는 과정에서 위험 분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기득권 축소’ 방안을 제안한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서는 은행권이 저금리 요구불성예금을 토대로 주택담보대출 선순위 취급을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천수답 경영 특혜를 누리고 있다. 즉 주담대 시장에서 은행은 선순위, 저축은행과 신협 등 제2금융권은 후순위로 역할이 분할돼 있다. 권역별 조달금리 차이로 분할이 불가피하다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이슈가 있다. 가령 제2금융권이 선순위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면, 담보가치가 상승해 조달금리가 하락하고 주담대 점유율이 상승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정부는 지난 3월 초 은행업, 저축은행업 및 상호금융업 등의 감독규정을 고쳐 주담대 담보인정비율(LTV)을 70%(규제지역은 50%)로 높이고 단일화하는 것으로 은행권의 주담대 규제를 완화했다. 그런데 이는 모순이다. 은행의 이자이익을 질타하면서 금융업 감독규정은 은행의 천수답 경영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개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권 LTV 규제를 강화하거나, 가계대출 위험가중치를 상향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주담대에 대해 은행권 규제는 강화하고 제2금융권 규제는 완화하는 정책조합을 통해 은행권 천수답 경영을 깨는 혁신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주담대 업무 축소로 인력과 자원에 여유가 생기면 은행은 중소기업 및 창업 기업 등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비 이자이익 창출에 나설 수 있다. 그 예로 거래형 은행업(transaction banking)이나 초과형 은행업(beyond banking)을 고려할 수 있다. 전자는 은행이 기업의 상업 및 금융 거래를 지원하고 관련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고 후자는 유니버설뱅킹의 일종으로 금융 및 비금융을 망라해 융합형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금융위의 규제샌드박스 운영결과를 겸영업무 범위 결정에 참고할 수 있다. 한편으로 최근 들어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는 제2금융권은 선순위 주담대 시장 진입 활성화로 수익을 창출하게 되면, 지역밀착 금융, 자영업자 관계금융 및 채무취약계층 지원 등을 확대할 수 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은행권 개혁이 스스로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말을 물가로 끌고갈 책임은 금융당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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