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07일(수)



[기자의 눈] 고래 싸움에 새우 등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3.29 11:19

김기령 건설부동산부 기자

증명사진
최근 들어 정비사업장 곳곳에서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이다.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고금리 및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장기화에 따른 원자재 가격 폭등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과거보다 심각해졌다.

시공사들은 "인건비 상승에 원자재 가격까지 급등해 공사비 부담이 커졌다"며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지만 조합은 "당초 계약서상 명시된 금액 이상 줄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올해 들어 입주를 앞둔 단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갈등이 곪아 터져 나왔다. 입주일을 불과 하루이틀 앞둔 시점까지도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 문제를 협의하지 못하면서 시공사가 입주 열쇠를 불출하지 않거나 아예 단지에 ‘출입금지’가 적힌 띠를 둘러 진입 자체를 막아서는 경우도 발생했다. 정해진 날짜에 이사를 하지 못해 모텔을 전전하는 입주 예정자들도 생겨났다.

사실 정비사업에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은 불가피하다. 다만 이 싸움이 끝없이 이어지다 보니 그 피해가 고스란히 입주를 앞둔 수분양자에게로 확산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을 인용해 고래(조합과 시공사) 싸움에 새우(수분양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해결 방안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두 고래의 입장이 너무나도 극과 극을 달리기 때문에 적절한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만만치 않다.

시공사 입장에서 봤을 때 인건비나 자재 가격이 오르면 현실에 맞게 공사비 단가를 산정하는 게 맞다. 수년 전 가격 그대로 공사를 마무리하면 손해를 보면서 아파트를 지을 수밖에 없는 꼴인데 어느 기업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하겠냐는 거다. 반면 조합 입장에서 보면 오른 공사비 전액 부담을 조합원에게 100% 전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미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억대 분담금을 낸 상황에서 추가 분담금까지 지불하기에는 그 부담이 상당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계약 시점에서 조항에 공사비 증액과 관련한 특약 등을 꼼꼼하게 기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지만 사실 계약서 명시가 완벽한 해법은 될 수 없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은 지난 28일 서울시가 조합과 시공사 간 분쟁 차단 방안을 시행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공사비 검증을 입주예정시기 1년 전까지 착수하도록 조합정관을 개정하고 SH공사 등 정비사업 지원기구가 나서서 공사비 증액 검증을 진행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이 방안을 계기로 조합과 시공사, 분양자 모두 웃으며 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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