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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 전경. |
1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를 두고 벌이는 패권 경쟁에 낀 한국 반도체업계는 ‘눈치 게임’을 하느라 바쁘다. 작년 하반기에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을 막겠다며 대(對) 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
중국에 반도체 생산 거점을 운영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단 규제에 대해 1년 유예 조치를 받아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유예가 끝나는 오는 10월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여기에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ASML을 거느린 네덜란드도 미국에 동참해 반도체 기술 수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SML 최대 고객사다.
게다가 미 상무부가 최근 발표한 반도체지원법의 지원금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미 정부는 반도체 생산 지원금을 신청하는 기업에 재무건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 수익성 지표와 현금흐름 전망치 등을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경쟁력과 직결되는 중요 기술과 경영 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고 업계에서는 우려한다.
또 미국은 보조금을 받은 기업에 10년간 중국 내 반도체 설비 투자를 제한하는 이른바 ‘가드레일’ 조항 세부 내용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와 더불어 중국을 주요 반도체 생산 기지로 활용해왔다. 신기술 개발에 발맞춰 기존 공장에 새로운 장비와 기술 도입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중국 공장에 투자가 막히면 몇년 사이에 ‘퇴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IRA 시행에 발맞춰 활발하게 북미 지역 생산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배터리 현지 생산에 따른 보조금 수혜는 예상되지만 아직 광물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탓에 IRA 핵심 광물 요건이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IRA는 배터리 광물·부품요건을 충족한 전기차에만 7500달러에 달하는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도록 했다. 3750달러는 북미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채굴·가공한 핵심 광물을 40% 이상(2027년 80% 이상) 사용한 배터리에만 적용된다.
이에 국내 배터리 업계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호주, 칠레 등으로 핵심 광물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데 힘써왔다. 하지만 광물 공급망 ‘탈(脫) 중국’은 아직 멀었다. 국내 업계가 주력하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에 주로 쓰이는 수산화리튬은 지난해 중국 수입 의존도가 90%에 육박했다.
미국 재무부는 이달 중 IRA 세액공제 하위 규정을 발표한다. 이를 앞두고 우리 정부는 핵심 광물 비율을 인정하는 원산지에 국내 기업이 주로 광물을 조달하는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이 포함되도록 미국을 설득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유럽도 이른바 ‘유럽판 IRA’를 추진해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미국과 경쟁에 대응하고 중국산 광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핵심원자재법(CRMA)을 초안을 조만간 발표한다.
또 EU는 전기차 배터리등 친환경 산업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관련 기업에 제3국과 같은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역시 미국 IRA 보조금에 맞선 대책이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CRMA 등 유럽 조치는 자세한 내용이 나와야 알겠지만 제조와 원소재 분야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며 "미국 IRA처럼 광물 원산지를 규제하면 원소재 쪽은 국내 업계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배터리 제조 분야는 국내 업체들이 이미 유럽 현지에 생산기지가 있어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면 충분히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jinsol@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