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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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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난 해소 골든타임 또 놓칠라"…속 타는 한전·가스공사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2.16 15:15

- 정부, 尹 대통령 '속도조절' 언급에 요금 현실화 ‘우물쭈물’



- 당초 요금 인상, 한전 1분기 ‘찔끔’ 가스공사 2분기 ‘연기’



- 부실 가속화에 정부 가격 신호 회복 공언 공염불 그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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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월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전기요금 관련 공약을 발표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에너지요금 인상 속도조절 언급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16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한전과 가스공사는 전기·가스요금 현실화가 전임 문재인 정부에 이어 그간 미뤄지면서 지난해 역대 최대규모의 적자 또는 미수금 발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전날 고물가 상황을 이유로 에너지요금 인상 속도조절 방침을 내비치자 정부가 에너지요금 인상을 주저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전기요금의 경우 누적된 인상요인을 각 분기별로 나눠 단계적으로 반영하기로 했고 가스요금에 대해선 난방 성수기인 겨울철이 지난 2분기부터 순차적으로 올려 소비자 부담을 덜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갑자기 속도조절 입장을 밝히자 이같은 당초 정부 입장에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기·가스요금의 인상 시기와 폭이 당초 방침보다 각각 늦어지고 줄어들 수 있다는 게 업계 및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날 관가와 한전에 따르면 아직까지 2분기 전기요금 인상 폭이 확정되지 않았다.

한전 관계자는 "연료비연동제는 분기별로 조정을 하지만 기준연료비는 시기가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지난해에는 4월과 10월에 각각 4.9원씩 인상했고 올해는 1분기에 13.1원 인상됐다. 여전히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초 정부와 한전은 올해 전기요금 기준연료비를 kWh(킬로와트시)당 51.6원으로 산정했다. 지난해 인상분(kWh당 19.3원)의 2.7배에 달한다. 정부는 여론 부담을 의식해 1분기 13.1원 인상에 그쳤다. 나머지는 상황을 보면서 분할해 인상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업계에서는 한전이 산정한 올해 기준연료비 인상요인 kWh당 51.6원을 분기별로 4등분해 반영할 것으로 기대했다.

가스공사도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 기조에 따라 겨울철 난방수요 급증 등에 따른 난방비 폭탄 논란 속에 요금 인상을 2분기로 미뤘다. 특히 최근엔 미수금 규모 확대 속 장부상 수익 발생에 따른 정부 배당 추진 논란 등에 여론까지 나빠지면서 가스요금의 2분기 인상 강행론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속도조절’ 언급으로 가스 요금 인상 시기 연기 또는 인상 폭 축소에 쐐기가 박힌 분위기다.

이에 따라 에너지위기 상황이 계속돼 경영난이 심해지고 있는 한전과 가스공사 입장에서는 속이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에너지 요금 현실화 지연은 공공기관의 물가 안정 기여 등 정책 목표 달성에 필요하지만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이런 식이면 폭탄 논란은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요금 현실화를 조속히, 실효성 있게 추진하되 취약계층 지원을 두텁게 하고 국민들에게 위기 상황인 만큼 인상이 불가피하며 절약을 생활화 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현 정부는 지난 문재인 정부가 요금 인상을 지연해 폭탄으로 돌아왔다고 비난해온데다 ‘시장원칙이 작동하는 에너지시장’을 강조해온 만큼 요금인상이 지연될 경우 정치적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한전과 가스공사 채권 발행 한도를 늘릴 때도 요금 정상화를 전제로 한 만큼 요금 인상이 지연될 경우 금융시장에도 여파가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은 오는 24일 지난해 연간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다. 30조원 이상 규모의 적자가 확실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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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전


한전은 지난해 전기요금을 약 20% 인상했음에도 지난해 들어서만 3분기까지 21조8000억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에도 영업 적자 규모 14조원 이상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됐다.

산업부와 한전은 요금 정상화와 비용 최소화 노력 등을 통해 2024년 흑자로 전환한 뒤 2025∼2026년 누적 적자를 해소하고, 2027년 말까지 경영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즉 요금 인상이 지연될수록 경영 정상화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가스공사도 마찬가지다.

산업부와 가스공사는 가스요금을 올해 메가줄(MJ)당 최소 8.4원(2.1원씩 네 분기) 혹은 최대 10.4원(2.6원씩 네 분기) 인상하는 방안을 내놨다.

가스요금은 지난해 주택용을 기준으로 네 차례(4·5·7·10월)에 걸쳐 MJ당 5.47원 올랐다.

산업부와 공사는 올해 요금을 MJ당 8.4원 올리면 2027년부터, 10.4원 올리면 2026년부터 미수금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공사는 "2020년 7월부터 1년 8개월간 민수용 요금을 동결했고, 이후 유가·가스 현물가격이 급등하면서 미수금이 급격히 증가했다"며 "미수금 급증으로 가스공사 차입금이 확대되고, 사채 한도도 소진됐다"고 설명했다.

공사는 경영 정상화를 위해 요금 인상 외에도 2027년까지 약 10조원 규모의 고강도 자구 노력을 펼칠 계획이다.

산업부와 한전, 가스공사는 요금 인상 방안에 대해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로,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해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요금 인상 수준, 시기, 기간 등은 조정될 여지가 있다.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격 왜곡은 에너지 소비 비효율을 초래해 국민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정부 규제는 시장실패를 개선해야 하나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경제적 요인보다 정책적 판단이 우선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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