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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운용 장거리순항미사일 시험발사 현장. 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북한이 잇따라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폭탄 실험의 강도를 높여 세계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핵보유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핵무장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1970년대부터 있었고 2004년에도 핵 관련 비밀실험을 했었다.
한 원자력연구기관 관계자는 24일 "북한 미사일의 위협에 맞서 한국이 미사일 능력을 규정한 미국과의 조약을 수정해서라도 미사일 기술을 진척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며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지만 한국은 짧은 기간 내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는 또 다른 미국의 동맹 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여론도 핵무장에 좀 더 열려 있다. 지난해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5%가 자생적 핵 프로그램을 지지한다고 답변했는데, 이는 전년에 비해 10%포인트 높은 수치다.
윤 대통령이 지난 주 언급한 것처럼 이미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핵 물질과 공학기술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 한국은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를 신속하게 제조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완강한 반대라는 큰 장애물과 ‘선량한’ 핵 비(非)확산국이라는 위상에 입을 타격 등으로 인해 핵무장이라는 선택지를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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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연구소를 시찰하는 김정은이 수소폭탄으로 보이는 물체를 가르키고 있다.연합뉴스 |
한국은 고리원전 1호기 도입이 추진되던 1973년, 핵폭탄 개발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한 이래 핵확산 금지에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국 측은 "사용후핵연료의 상업용 목적으로 재처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미국은 "핵폭탄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특히 미국 정부는 1975년 "한국이 당장 핵개발을 취소하지 않으면 약 2억달러 상당의 고리원전 2호기 건설 차관을 중단할 뿐 아니라 기타 경제개발 사업도 재검토하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험용이지만, 당시 한국에서 사용되는 우라늄은 전량 수입하고 있었고, 이마저도 통제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수입되는 우라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은 사용후핵연료에서 추출해야 했기 때문에 몰래 숨겨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 능력여부와 별개로 핵무장을 할 경우,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이 핵무장을 할 경우 자동으로 핵확산 방지조약(NPT)에서 탈퇴하게 되며, 이 경우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한국에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NPT는 1968년 체결된 비핵보유국이 핵보유국으로 전환하는 것을 금지한 국제조약으로 한국은 1975년 비준했다. 또한 한국의 핵무장은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비핵보유국 국가들의 전면적인 핵무장을 추동할 수 있어 동아시아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하고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계 한 고위관계자는 "미국은 이러한 이유들로 한국정부가 핵무장을 선택하지 않았으며 한국에서 핵무장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은 오히려 주변국을 외교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며 "특히 한국의 핵무장 논의는 중국에 북핵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한반도 핵무장이 불가피함을 은연중에 압박하는 외교 정책이라는 관측도 나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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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 기간 중 두바이 미래박물관에서 열린 미래비전 두바이포럼에서 과학기술의 미래비전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NPT 가입국인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다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넷제로’ 달성 등을 위해 원자력 발전 비중 확대를 강조해 온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는 즉각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원자력 발전을 위해서는 우라늄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우라늄 생산국들은 NPT 가입국인 까닭에 원자로를 돌리는 데 필요한 우라늄 확보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어 머지않아 미국 본토까지 타격범위에 들어갈 것이라 관측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핵우산과 같은 미국의 보호약속을 언제까지 믿을 수 있을지 미지수인 만큼 자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한 관계자는 "북한은 수차례에 걸친 핵실험으로 탄두 폭발위력을 크게 증가시켰고, 각종 투발수단과 핵전술까지 날로 고도화하면서 우리와 우방국들을 위협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북한의 반발로 한반도의 안보 위기가 크게 심화됐고 우리에 대한 핵공격 위협도 현실화되고 있다"고 했다.
또 "핵무장과 별개로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화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의 방호태세는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속히 체계적인 방호계획을 수립하고 민방위체제를 개선하며, 국민행동요령을 발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