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일 베이징에 위치한 한 가게에서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이날 중국 국가통계국은 2022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사진=AP/연합) |
1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중국 국가통계국은 2022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이는 세계은행과 블룸버그통신, 중국 시장분석업체 윈드 등의 예상치인 2.7∼2.8%를 다소 웃돈 실적이다.
국가통계국은 또 작년 4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GDP 증가율이 2.9%로 집계됐다고 덧붙였다. 이 또한 로이터통신 등이 조사한 전망치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로이터는 작년 4분기 경제성장률이 1.8%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2022년 중국 성장률은 정부가 지난해 3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때 제시한 목표치인 ‘5.5% 안팎’에 크게 미달했다.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공표한 목표를 하회한 것은 목표치를 처음 제시한 1994년 이후 1998년과 2014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1998년에는 8.0%를 제시했으나 7.8%를 기록했고, 2014년에는 ‘7.5%내외’를 제시했으나 7.4%를 기록했다. 다만, 2014년은 ‘내외’로 표현했기에 사실상 달성했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 GDP 성장률은 2020년 2.2%로 위축된 이후 2021년에는 기저효과에 힘입어 8.4%로 반등했다. 이에 코로나19 팬데믹 1∼2년차에는 대공황 이후 최악이던 세계 경제 위기 속에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러나 작년에는 국제사회의 대체적 ‘위드 코로나’ 전환 흐름과 달리 중국 정부가 11월까지 고강도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는 와중에 경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4∼5월 ‘경제 수도’ 상하이 전면 봉쇄 등 고강도 제로 코로나 정책의 경제상 타격과 부동산 시장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경제의 파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목표치에 크게 미달하는 연간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중국 정부는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가 각지에서 벌어진 뒤 작년 12월 7일 ‘제로 코로나 정책’ 폐기로 여겨진 10개항 방역 완화 조치를 발표했지만, 그 이후의 감염자 폭증세 속에서 연말까지 경기 반등 효과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작년 연간 소비재 소매 총액은 전년 대비 0.2% 감소했고, 연간 고정자산 투자는 전년 대비 5.1% 상승했다. 연간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2.0% 올라갔다.
다만 중국의 12월 산업생산, 소매판매 등은 시장 전망치를 웃돌면서 개선의 여지를 남겼다. 12월 소매판매는 전년동월대비 1.8% 감소해 시장 전망치 -8.6%를 웃돌았다. 같은 달 산업생산은 1.3%를 기록해면서 전망치 0.2%를 상회했다.
이와 더불어 국가통계국은 작년 중국의 연간 도시 신규 고용이 1206만 명으로 목표(1100만 명)를 초과 달성했으며, 작년 12월 도시 실업률은 5.5%로 11월 대비 0.2% 포인트 하락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2022년 1인당 가처분 소득은 3만 6883위안(약 680만 원)으로 명목상 전년 대비 증가율 5.0%, 물가 요인을 제외한 실질 증가율은 2.9%를 각각 기록했다고 국가통계국은 밝혔다.
지난해 중국의 연간 곡물 생산 총량은 6억 8653만 톤으로 전년 대비 0.5% 증가했다고 국가통계국은 전했다.
국가통계국은 2022년 경제를 총평하면서 "전반적으로 2022년에는 코로나19 방역과 경제 및 사회 발전을 효과적으로 총괄조정해 긍정적인 결과를 달성하고 거시 경제의 큰 판을 안정시켰고, 경제 총량을 지속 확대하고 발전의 질을 안정적으로 높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시에 국제 정세는 여전히 복잡하고 엄중하며 국내 수요 위축, 공급 충격, 기대치 약세 전환의 ‘3중 압력’이 여전히 비교적 커서 경제 회복의 기초가 여전히 견고하지 않다는 점도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중국 인구가 6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국가통계국은 자국 인구가 지난해 말 기준 14억 1175만 명으로, 2021년 말의 14억 1260만 명보다 85만 명 줄었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인구가 감소한 것은 마오쩌둥이 펼친 대약진 운동으로 대기근이 강타한 1961년 이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