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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
경유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등록된 경유 차량은 979만5611대였다. 전년(989만3868대)보다 1.0%(9만8257대)나 감소한 것이다. 그런데 휘발유차는 오히려 1318만7649 대로 4.4%(55만7378대)나 늘어났다. 우리 사회에서 경유차가 휘발유차보다 훨씬 더 고약한 악동(惡童)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다.
경유차의 감소는 대부분 스포츠형 다목적차량(SUV)을 포함한 경유 승용차에 한정된 것이다. 실제로 작년 1분기만 하더라도 경유 승용차의 판매량은 한 해 전보다 무려 3만829대나 줄어들었다. 정유사들이 휘발유·경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게 된 2005년부터 허용된 경유 승용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연비와 힘이 좋은 디젤 엔진의 경제성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더 큰 차를 탈 수 있다는 매력도 외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시작된 경유 승용차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이제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셈이다. 탄소중립을 비롯한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경유차의 매력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서울시는 2035년부터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모든 신차의 등록을 중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경유 승용차의 미래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는 것이다.
경유차의 유지·관리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DPF(디젤입자필터)나 SCR(선택적촉매저감장치)과 같은 매연저감 장치도 부착해야 하고, 유지·관리도 감당해야 한다. SCR의 경우에는 연료로 사용하는 경유 이외에도 정기적으로 요소수를 주입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2021년에는 중국산 요소의 수입에 제동이 걸리면서 요소수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칫하면 멀쩡한 경유차를 세워둬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지난해 후반기부터는 경유의 가격이 휘발유보다 더 비싸지는 가격 역전 현상이 시작되었다. 경유차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경제성에 급제동이 걸려버린 것이다. 올해부터 휘발유에 부과하는 유류세를 리터당 100원이나 올렸는데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12일 기준으로 전국의 주유소에서는 경유의 가격이 휘발유보다 리터당 평균 118원이나 더 비싸게 팔리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경유가 ‘값싼 서민 연료’라는 우리의 인식은 정부가 만들어낸 착각이었다. 경유 값이 휘발유보다 싸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석유제품 시장에서는 경유가 휘발유보다 언제나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산업·난방·운송용으로 사용되는 경유의 국제 시장에서의 수요가 운송용으로만 사용되는 휘발유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산업용 수요가 늘어나거나, 난방용 경유의 수요가 늘어나면 국제 시장에서의 경유 가격은 더욱 치솟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기름값을 결정했던 1990년대까지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경유 가격을 휘발유의 반값 수준으로 고시했다. 대중교통과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경유와 달리 휘발유는 상류층에서 사용하는 낭비적 사치품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었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산업체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낭비를 억제하는 1석3조의 묘책이었다.
1982년 정유사의 민영화가 시작된 후에도 경유에 대한 정부가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지 못했다. 1990년대 말에 시작한 연료소비현대화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통에너지환경세를 차등화해서 경유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휘발유보다 더 낮게 만들어버렸다. 지금도 경유에는 리터당 휘발유 698원보다 훨씬 낮은 475원의 유류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정유사의 경유 출고 가격이 휘발유보다 지나칠 정도로 높아진 탓에 ‘가격 역전’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유류세를 통해서 시장 가격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버스·트럭·중장비와 같은 대형 자동차의 경우에는 디젤 엔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경유를 싸게 공급해줘야 할 이유는 없다. 전기차·수소차에 대한 과도한 세제 지원도 소비자의 선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인이다.
친환경에 대한 정부의 성급한 강요가 오히려 환경을 망쳐버리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소비자의 선택을 합리적으로 수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