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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신 C2S컨설팅 대표 |
지난해 에너지 시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2021년 9월과 12월 유럽은 두 차례 에너지 수급 위기로 에너지 비용 급등과 역대급 물가 상승을 맞이했는데 이것이 지난해에도 지속되었고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맞은 3차 에너지 위기 국면에서는 모든 에너지 가격이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1년전 이맘때 겨울 날씨가 온화해 에너지 수요가 줄었음에도 적설량 부족이 지난해 폭염과 가뭄으로 연결되면서 발전소 냉각수 부족과 수력발전 전력 생산이 급감했고 라인강의 역대급 최저 수위로 독일로 싣고 갈 석탄 운송선은 물론이고 라인강 내륙운송에도 영향을 끼치며 4차 에너지 위기와 경제침체에 일조했다. 그러나 유럽은 이런 연결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올 겨울의 온화함을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부(負)의 북극진동으로 인한 미국의 역대급 한파로 정전과 난방은 연례행사가 되었다. 한두 번의 정전은 기후변화 탓을 할 수 있지만 반복되는 정전 위험이라면 이를 극복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뉴잉글랜드 주는 지난 한파에 이어 이번에도 전체 전력의 36%를 석유 발전소를 통해 얻고 있었음에도 전력 공급 부족을 경고하고 나섰으며 미국 에너지부는 한파로 인한 발전소 전력 공급 실패로 텍사스의 전력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재생에너지는 이 상황에서 전력 생산이 오히려 급감하며 에너지 공급에 도움을 주지 못했는데 한국도 12월 21일 태양광 전력공급이 전날에 비해 81.7%나 줄었지만 전력수요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었다.
전 세계 자산운용사 2위인 뱅가드와 3위인 스테이트 스트리트가 넷제로에서 이탈했고 1위인 블랙록은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화석연료의 최대 투자자가 될 것을 선언하며 자신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텍사스에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COP27(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모든 화석연료의 감축을 인도와 함께 반대한 블록은 다름 아닌 유럽이었다.
따라서 올해 국제은행과 투자 기관들은 특정 에너지원의 비중을 늘리고 줄이는 캠페인 대신 ‘모든 에너지원의 탄소중립’을 표방하며 자신들의 화석연료 투자를 정당화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들의 넷제로 이탈과 화석연료 투자에 면죄부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블랙록과 월가는 이미 2021년에 개도국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에서 자신들의 투자금을 모두 인출했고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준비를 마친 상태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올해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나아질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천연가스와 석탄에 의존해야 하는데 일시적 사용이라 말했던 자신들의 발언을 올해엔 수정해야만 한다. 2020년 지멘스 가메사는 이산화탄소를 줄인다며 아세안 지역의 석탄발전에 관심을 보였고 중국의 해외 석탄발전 수출은 늘어가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옹호하는 진영에서는 이런 현상들을 비판하고 있지만 화석연료를 불러내 그들에게 기록적 수익을 안겨다 준 것은 다름 아닌 그린 아웃과 그린 인플레이션이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원전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올해에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유럽은 택소노미를 통해 원전 투자를 허용했고 에너지 위기 이후 체코, 폴란드, 튀르키예, 필리핀, 사우디와 영국까지 대륙과 나라를 가리지 않고 한국에 원전 비즈니스를 타진하고 있다. 이전까지 원전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러시아 로사톰은 12개국에서 36기의 원전을 건설 중이고 수출도 늘어 현재 수주잔고만 2000억 달러(253조 7천억)에 달한다.
그러나 이제 중국과 러시아에 원전을 맡기려는 서구사회는 없을 것이고 에너지 위기에서 원전 건설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납기 준수가 되었다. 웨스팅하우스를 비롯한 서구 국가들의 원전 밸류체인은 납기 준수는 커녕 건설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모든 에너지원의 탄소중립’이라면 한국이 전 세계에 기여할 부분은 적지 않다. 다만 한국은 로사톰과 같은 규모로 해외 사업을 해본 전례가 없다. 벨기에 총리는 에너지 위기를 10번의 겨울로 언급했고 조지 소로스는 화석연료 붐을 10년으로 예상했다. 유럽의 탄소 국경세는 에너지 부족과 생활비 위기에 신음하는 국민들에게 마지막 결정타가 될 것이며 모든 에너지원의 탄소중립을 가속화하는 계기로 다가올 것이다. 이전과 전혀 다른 문법으로 프로젝트를 대해야 하는 날이 오고 있다.
팀 코리아 비즈니스는 가격과 기술에서 관계의 시대로 전환을 의미한다. 단순한 수주형 사업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에너지 믹스를 설계하고 조언하며 이를 위한 자금조달까지 총체적이고 다면적인 역량을 요구한다. 단순한 에너지 시설 건설이 아니라 짧게는 십수 년에서 수십 년간 해당국과 에너지, 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부문에서 관계를 맺으며 상호 이익을 공유하는 중장기 비즈니스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은 다가오는 에너지 위기를 기회로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