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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
다섯 살인 둘째 아이가 두어 달 전부터 "아빠, 크리스마스는 언제와?"라고 물어볼 때면 "아마도 추워지고 눈이 많이 오면 크리스마스가 될 거야"라고 말해주곤 했었다. 아이에게 눈이 오는 예쁜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게끔 하고 싶어 했던 말이었는데, 정말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연말은 너무나도 추웠고 눈도 많이 온 것 같다.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10년 주기의 기후평년값을 살펴보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2월 중하순의 평균기온은 영하 2.5도에서 0도 수준이며, 최저기온도 영하 6.3도에서 영하 3.8도의 범위였다. 하지만, 이번 겨울에는 이보다 더 낮게 영하 10도를 넘나들던 숫자를 일기 예보에서 자주 경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뉴욕 서부 등 전역을 강타한 겨울 폭풍으로 인하여 도로와 공항 폐쇄로 시민들이 고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는 대규모 정전도 발생하는 등 인명·재산 피해가 컸다고 한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들에서는 치울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정말 어마어마한 깊이로 눈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말을 앞두고 서해안에 가까운 충청, 전라 및 제주 지역에 상당히 많은 눈이 내렸다. 전북 임실에는 50cm가 넘는 폭설이 내렸고, 광주광역시에도 관측 이래 두세 번째로 많은 양의 눈 폭탄이 쏟아져 일상에 차질을 빚었다고 한다. 그 주간에 출장차 제주에 잠시 갔었던 필자는 그나마 다행히 한 시간 정도의 지연 출발 수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 그 다음 날부터는 많은 항공편들이 결항될 수밖에 없었다고 들었다.
이러한 한파와 폭설의 원인으로는 북극지역의 차가운 공기 유입이 꼽힌다. 여기에 바다와 호수 등에서 제공되는 습기가 만나면 구름이 형성되고 많은 양의 눈도 동반되는 것이다.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수면 온도의 변화 등도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그 인과관계에 대한 수식이 어찌 되었던 간에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앞으로 겨울마다 이렇게 추운 날씨가 계속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추운 날씨는 에너지 산업에 있어 쉽지 않은 시기이다. 우리 인간은 생존을 위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시킬 필요가 있다. 더위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추위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이기에 이를 막기 위하여 냉방 및 난방 기술이 발달하였고, 이는 에너지의 사용 및 전환이 필요하다. 따라서 날이 더우면 더울수록, 그리고 추우면 추울수록 전체 에너지 사용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에너지 사용은 점점 전기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최근 눈도 많이 오고 가장 추웠던 주간인 12월 19~23일 동안 최대 전력수요는 매일 9만 MW(메가와트)를 넘어서면서 역대 급의 기록을 남겼다. 공급예비율도 10%대로 떨어졌음은 물론이다. 이로써 12월 평균 최대 전력수요는 2014년에 7만 MW를 넘어선 이후, 2022년에 처음으로 8만 MW를 넘고 있다. 이는 동년 하계인 7월의 평균 최대 전력수요인 8만 2천 MW와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에 몇 가지 국제적 상황이 에너지 업계를 더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에 블룸버그에서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가 오는 2026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을 발표하였다. 이제 1년 가까이 되어 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스 가격 불안이 계속 이어지면서 가격 급등이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물량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고, 지난해 9월에는 유럽으로 향하는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이 잠기는 등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 등의 아시아 국가들은 코로나로 인한 봉쇄를 풀어가면서 에너지 확보를 위한 액화천연가스의 수입을 급격하게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공급이 줄어든 가운데 수요가 늘어나게 되면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주택용 및 일반용 등의 도시가스 요금이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 한해 동안에만 세 차례 인상되었는데, 2015년 요금체계개편 이후 최대의 상승폭이라고 한다. 특히 추운 날씨에 난방 사용량이 증가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인상된 가스 요금을 체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요금이 적게 올랐던 전기를 이용한 난방기구의 추가적인 사용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제 해를 넘겨 새해를 맞았지만 이번 겨울은 에너지 산업에 유난히 혹독한 계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