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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
기업이나 국가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최대한 줄인 후 잔여량을 흡수해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은 파리협정 체제하에서 주류가 되어 가고 있다. 탄소중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가 간 탄소규제의 강도는 서로 다르기 마련이고, 이 차이를 수출입시 관세 등을 통해 조정함으로써 불공평한 산업경쟁력의 일방적 악화를 방지하는 조치가 시행된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 도입에 합의했다. EU 집행위원회, EU 각료이사회, 유럽의회가 최종법안 도출을 위해 잠정합의(provisional agreement)에 도달한 것이다. CBAM은 탄소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생산시설이 이동하는 탄소누출(carbon leakage) 문제를 방지하고 EU의 탄소중립 목표인 ‘Fit for 55’(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를 달성하기 위해, EU로 수입되는 일부 제품의 탄소 함유량에 EU 배출권거래제와 연동한 탄소 가격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이번 잠정합의에 따르면, 품목은 철강·시멘트·알루미늄·비료·전력·수소 등 6개이다. 수소의 경우 지난 2021년 7월 EU 집행위원회 초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품목이나 이번 잠정합의안에 추가되었고, 향후 스크류, 볼트 및 일부 원료제품과 더불어 자동차 및 플라스틱까지도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범위는 원칙적으로 직접배출(예:사업장 설비 운영에 따른 배출)에 적용되는데, 특정 요건 하에서 간접 배출(예:전기나 열구매에 따른 배출)을 포함시키는 것도 합의되었다. 내년 10월 1일부터 전환기간(transition period)이 개시되며, 3년 뒤인 2026년 본격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 전환기간 중 EU 수출 기업들은 CBAM 대상품목의 제품별 탄소배출량(직접배출 및 일부 간접배출)에 대한 보고의무를 갖게 되며, 본격 시행시에는 관세 성격의 부담금에 해당하는 CBAM 인증서 구매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CBAM시행의 영향은 국가별로 서로 다르게 전망하고 있다. EU는 CBAM이 다른 국가 탄소가격제도 도입을 촉진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반면, 미국은 탄소가격제도 국가별 유무에 따른 제조업에 불공평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중국은 CBAM을 보호주의라고 비판하며 국제협력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고, 브라질은 대상 제품 중 일부는 EU에 수출되지 못하고 다른 지역에 보급되어 해당 지역 산업이 취약해질 것을 우려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게는 CBAM의 시행이 위험일까 기회일까. 지난해 한국의 CBAM대상 6개 품목 EU 수출 규모는 약 48억 달러에 이르는데, 그 중 철강과 알루미늄이 대부분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까지 1년 간 EU와 한국의 배출권 1일 가격 최대 차이인 55.4달러로 가정시, 알루미늄산업은 21.9%, 철강산업은 20.6%의 EU 수출 감소가 발생한다.
하지만 기회도 공존한다. EU의 CBAM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 등 환경과 통상을 연계하는 조치들로 글로벌시장 경쟁자도 타격을 입는다. 세계 1위 탄소 배출국인 중국은 우리나라 보다 더 불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절대적 영향과 더불어 글로벌시장 경쟁자의상대적 영향을 함께 고려해 볼 때, 오히려 기회가 되는 품목과 시장도 생길 수 있는 이유다. 미국이 중국의 태양광설비수입을 규제하자 우리나라 태양광설비 수출에 도움이 된 경험을 연상시켜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배출권 거래제는 다른 국가에 비해 EU와 가장 유사한 탄소규제이므로 CBAM 시행시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중국·러시아·터키 등 CBAM의 영향이 큰 국가들의 대응전략을 분석하면서, EU 및 개별 회원국 등과 긴밀히 소통해야 하는 이유다.
금번에 시행되는 CBAM을 향후 확대될 환경과 통상 연계의 시작점으로 인지하고, 경쟁자와의 상대적 관점에서 대응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