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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
요즘 해운업계가 노심초사다. 국제해사기구(IMO)를 중심으로 해운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규제를 강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IMO는 현재 175개국을 회원국으로 둔 유엔산하 국제기구로 해운 및 조선에 관한 현안을 다룬다.
IMO는 2018년 ‘선박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초기전략’을 채택했다. 여기서,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을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50% 감축한다는 목표를 정하였다. 그런데 최근 IMO는 내년까지 국제 해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하고, 더 강력한 온실가스 배출규제를 도입하려 논의 중이다.
해운 분야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대부분은 이산화탄소다. 그 배출 규모는 세계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의 3%가량이다. 지난 30여 년간 해운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은 꾸준히 늘어났다. 2018년 기준 배출량은 10억 7,600만 톤(CO2 eq.)으로, 이는 1990년 대비 약 2배, 2021년 대비 9.6% 늘어난 것이다.
해운업계는 선박 연료를 친환경 연료로 대체하여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려고 한다. 2012~2018년간 온실가스를 최다 배출한 국제 해운 선박은 화석연료인 중유와 혼합유를 사용하는 컨테이너선, 벌크선, 유조선 등이었다. 해운업계는 선박의 화석연료를 단기적으로는 LNG로, 장기적으로는 그린 수소, 그린 암모니아, 바이오 연료 등으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고려 중인 친환경 연료는 한계가 있다. LNG로 연료를 전환 중이지만, 고속 컨테이너선이나 대형 유조선, 벌크선 등이 요구하는 높은 항속을 만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른 화석연료에 비해 배출량이 적긴 하지만 LNG도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장기적 친환경 연료인 그린 수소, 그린 암모니아 등은 생산 과정 중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고효율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사용 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저장이나 독성 문제 등까지 해결해야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원자력이 해운업계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원자력은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높은 항속이 필요한 선박에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이, 미국은 원자력 추진 선박 엔진 개발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에너지부(DOE)는 미국선급협회(ABS)와 첨단 원자력 추진 장치를 상용 선박에 적용하는 80만 달러 규모의 연구 계약을 체결하였다. ABS는 이 연구를 통해 해양 분야에 적용 가능한 다양한 첨단 원자로 모델을 개발한다. 이 연구는 미국 아이다호(Idaho) 국립연구소의 국립원자로혁신센터(NRIC)가 지원한다. DOE는 이와 별도로 텍사스 대학이 수행하는 용융염원자로(MSR)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ABS와 계약을 맺었다.
우리나라 기업도 원자력 추진 선박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한 대기업은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MSR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향후 이 MSR을 기반으로 원자력 추진 선박을 개발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원자력과 조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 두 분야의 기술을 융합한다면, 우리나라가 전 세계 친환경 선박 시장을 주름잡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데 원자력 추진 선박의 상용화에 걸림돌이 있다. 우리나라가 원자력 추진 선박에 대한 인허가체계를 아직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원자력 추진 선박은 엔진으로서 소형 원자로를 장착한다. 그런데 이 원자로는 육상에 설치된 원자로와 가동 환경이 크게 다르다. 또 핵연료가 장착된 원자로를 싣고 선박이 전 세계 바다를 돌아다녀야 한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여, 원자력 추진 선박의 안전성과 핵비확산성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한 인허가체계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최근에야 원자력 추진 선박에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미처 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원자력 추진 선박에 대한 인허가체계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IMO의 온실가스 배출규제가 강화되면서 원자력 추진 선박의 실현 시점을 최대한 앞당길 필요가 생겼다. 원자력 추진 선박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 고민과 해운업계의 생존적 고민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다. 누가 먼저 이것을 실현하느냐가 세계 해운 및 조선업계의 판도를 뒤바꿀 것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기회는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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