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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
지난 10월 26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가 공식 출범하고 새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 전략과 추진과제가 발표되었다. 그날 위원들과의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가 과거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국제사회에 제시했으나 국민들이, 또 산업계에서 어리둥절한 바 있다", "과학적 근거도 없고, 또 산업계의 여론 수렴이라던가 로드맵도 정하지 않고 발표를 하면 그것이 주는 국민들의 부담이 어떤 건지 과연 제대로 짚어보고 한 것인지 의문이다.", "어찌 됐든 국제사회에 약속은 했고 이행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전 정부의 NDC 상향안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지난달 전경련의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과 비슷한 인식이 확인되었다. 기업들은 ‘NDC 상향안의 실현가능성이 낮다(48%)’를 ‘적정하다(16%)’ 보다 3배 높게, 그리고 대부분 ‘재검토가 필요하다(82%)’고 응답했다. 기업들도 NDC 상향안 목표를 무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NDC 상향안의 목표 설정에 이해가 안 되는 대목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8월 탄소중립기본법을 통과시키면서 2030년 탄소배출량 목표를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으로 정했다. 감축률 35%는 2050년을 탄소제로 연도로 정하고 기간으로 나눈 값으로서 큰 고민없이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목표는 달성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정부조차도 도전적인 목표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채 3개월이 지나지 않은 11월, 26차 유엔 기후변화회의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감축률을 40%로 더욱 높여 발표했다. 숫자 결정 과정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돌아 온 답은 ’모른다‘ 였다. 누군가는 웃고 있을지 모르지만 여전한 미스터리다. 지난해 발표된 NDC 상향안이 엉터리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산업별 감축목표, 발전믹스는 있으나 전체 에너지원별 구성(에너지밸런스) 분석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탄녹위는 출범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분과별 회의를 포함하여 11월말까지 총 10회의 회의를 개최했다. 특히 에너지·산업 전환 분과위원회는 3차례의 회의가 열렸고 3차 회의에서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에 대한 검토의견을 심의·의결했다.
일부 표현은 다르지만 탄녹위는 검토의견으로서 원전확대 반대, 수요관리 강화, 온실가스 배출목표 달성방안 보완, 재생에너지 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 마련 등을 회의록에 기록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하게 생각되는 타분야 전력화 미반영에 따른 전력수요 과소예측 문제, 재생에너지 용량 확대 가능성 진단, 석탄발전소에 대한 좌초비용 보상 방안, NDC 이행의 소요비용 추정과 전기요금 영향 등을 논의한 기록은 없다. 특히 전력수요의 과소예측 문제가 심각한데 필자가 지난 9월 EE칼럼을 통해 비교적 상세히 다룬 바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회의록만 보아서는 탄녹위는 전 정부 탄소중립위원회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임명직 위원 중 에너지전문가가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탄녹위가 전력수요예측을 비롯한 다른 것들에 대해 논의조차 없었다면 심각한 문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는 ‘정부는 국가비전 및 중장기감축목표 등의 달성을 위하여 20년을 계획기간으로 하는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또 법의 부칙 제2조 2항에 ‘최초 국가기본계획은 이 법 시행일(2022년 9월25일)부터 1년 이내에 수립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계획수립 만료일이 10개월여 남아있을 뿐이다. 탄녹위가 할 일이고, 일의 속도를 높여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녹위 홈페이지를 훑어본 결과는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탈원전을 전제로 수립된 NDC, 2050 탄소중립시나리오가 여전히 게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새정부의 에너지정책을 반영하여 수정될 예정이다‘ 정도의 양해 글조차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어 탈원전이 폐기된 후 7개월이 되었고 탄녹위 사무처는 지속적으로 가동되고 있었을 것이다. 극한 무신경이라 표현하면 적당할까.
NDC 수정안에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앞서 윤 대통령의 언급에 그 내용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과학적 근거가 있을 것, 산업계를 비롯하여 국민여론을 수렴할 것, 로드맵을 수립할 것, 국민들이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지 분석할 것’ 등이다. 이 내용들이 수립되는 수정안에 포함될 수 있다면 이전 정부의 환타지 NDC 상향안에 비해 휠씬 현실적이고 수준 높은 계획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탄녹위가 좋은 말들을 모아서 전략과 추진 과제를 발표하고 흡족해할 시간은 거의 없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탄녹위는 간간히 만나서 밥이나 먹는 ‘동호인 위원회’가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