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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옥 한동대학교 객원교수/기업재난안전협회 부회장 |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한달이 됐다. 진상규명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놓여 있고, 재발방지를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단계로는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도 여야간 갈등으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이태원 참사를 실황중계를 통해 목도한 국민들은 누구나 선진국 반열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후진국형 대형재난사고가 왜 반복하여 일어나고 있는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방법은 없는지 깊게 고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전이란 ‘재해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상태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숨은 위험을 예측해서 대책이 마련된 상태’라고 정의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2008년 세월호 침몰, 2022년 이태원 참사 등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일어난 170여개의 크고 작은 사고들의 원인이 비슷한 것을 보면 소를 잃은 뒤에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지 않은 잘못이 크다.
안전 대책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국가의 경쟁력이다. 안전전문가 김석철 박사는 ‘재난반복사회’라는 저서에서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대형재난에 대한 정부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하고 있다. 먼저 대형재난의 원인을 법규체제미비, 인력부족, 장비부족, 부처간 소통 부재, 콘트롤 타워 부재 등에서 찾고 있다. 이어 서 제시되는 해결책 또한 항상 틀에 박힌 듯 정해져 있다고 지적한다. 즉, 산재되어 있는 안전 및 재난대응 관련 법규의 정비, 안전 및 재난 관련 예산과 인력의 우선 배정, 재난대응 관련 조직 확대 개편, 콘트롤 타워 일원화 등이다.
재난이 반복되는 이유는 대책의 실효성과 지속성이 부족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는 ‘실패의 자산화’에 늘 실패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국민은 안전불감증이 심하므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가고 재난에 대한 관심이 흐려지면 슬그머니 재난안전규제가 완화되고 ‘효율성’ 명분하에 조직과 예산이 축소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후진국형 재난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결국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안전 시스템이 생활화 되어야 한다고 본다. 필자가 몸 담았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모든 회의와 행사 시작전에 안전본부장이 안전메시지를 간단하게 발표하는 시간, 즉 ‘세이프티 모멘트(Safety Moment)’부터 갖는 것이 제도화돼 있다. 이 시간을 활용해 임직원들이 안전관련 최신 이슈·안전 제도 및 정책 등 안전과 관련한 다양한 내용을 공유하면서 안전에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취지다.
‘안전문화(Safety Culture)’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산업에 최초로 도입된 개념으로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조직문화’이다. 체르노빌 원전과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에 안전문화가 큰 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이제 정부는 거국적인 안전문화캠페인을 전개하면서 ‘2023년 재난사고 제로시대‘ 를 선언하기를 제안한다. 이태원 참사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발생한 제반 대형사고에 대한 근본원인 분석(Root cause analysis)을 통해 실효성과 지속성을 지닌 예방적 시스템의 구축과 국민안전문화의 혁신대책을 제시하길 바란다.
예를 들면 국가경영전반에 대하여 ‘안전보건경영시스템(ISO 45001)‘의 구축과 한수원 안전문화 실천프로그램의 적용이다. 가능하다면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무회의와 정부기관의 모든 주요회의나 행사에 ‘세이프티 모멘트’를 시행하면 어떨까. 안전관련 정부조직의 위상을 강화하는 것도 정부 재난안전 대책의 상징성을 강화하고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원자력분야의 안전시스템은 산업 특성상 가장 앞서 있는 안전설계개념(심층방어·다중성·다양성·독립성 등)과 최고수준의 안전문화 증진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다중복합 안전관리체제 구축에 적극 벤치마킹하길 바란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 필자는 원자력발전소장 재임시절 매일 1000여명의 종사자들이 ‘손가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했고 안전시스템이 작동된 결과 그렇게 지켜졌었다. 대통령부터 앞장서 우리 국민 5000만명이 한사람도 다치지 않게 매일 소원하고 안전안보 최우선의 국정운영을 해주길 소망한다.
안전 최강국 대한민국을 ‘세이프티 모멘트‘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