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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이사 |
지난달 21일 미국의 대표적 원전기업인 웨스팅하우스는 미국 컬럼비아특별구 연방법원에 한국수력원자력이 폴란드 등에서 한국형 신형 가압경수로 APR1400을 판매하는 거래를 막아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소장에서 "한수원의 APR1400 설계에는 웨스팅하우스의 지식재산권이 포함돼 있다"며 "APR1400을 배치하기에 앞서 웨스팅하우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수원이 APR1400의 기술 정보를 제공하려면 원자력 기술의 공유를 제한하는 미국 법률에 따라 에너지부의 승인이 필요하다"며 한수원의 기술 정보 공유를 금지해달라고도 법원에 요청했다.
과연 한국형 원자로라는 APR1400은 독자적인 수출권조차 없는 것인가. 웨스팅하우스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원전산업의 위상을 살펴보자.
웨스팅하우스는 1886년 미국에서 라디오를 만들며 시작한 가전제품 회사로 제너럴 일렉트릭(GE)과 경쟁하는 굴지의 회사가 되었다. 웨스팅하우스가 원자력 연구에 참여한 것은 1947년 미 해군이 원자력잠수함 개발에 민간기업을 참여시키면서부터다. 가전은 물론 중전기 분야에서도 부동의 1위였던 GE는 증식로 개발로 방향을 잡았고 웨스팅하우스는 경수로를 선택했다. 증식로는 냉각재로 소듐을, 경수로는 보통의 물을 사용한다.
웨스팅하우스는 1955년 1월 가압경수로를 장착한 핵잠수함 노틸러스호의 시험 항해에 성공했지만, 중속증식로를 장착하고 1956년에야 취항한 GE의 시울프호는 냉각재의 폭발성을 해결하지 못하고 엔진이 가압경수로로 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원전 개발에서도 웨스팅하우스는 가압경수로형을 추진했지만 GE는 고속로를 포기하고 비등수형 경수로로 방향을 바꿨다. 1차 계통의 건설과 운영이 더해지는 가압경수로가 비용은 더 들지만 방사성 물질의 유출 방지 측면에서 안전성은 더 높은 편이다. 2011년 수소 폭발을 일으킨 후쿠시마 원전이 비등수형 원자로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원전이 상용 가동되면서 GE와 웨스팅하우스는 원전산업의 명실상부한 대부로 등극하였다. 미국 외에 핵무기 보유국으로 독자적인 원전 개발에 성공한 소련과 영국, 그리고 핵무기는 없지만 캐나다도 중수로를 개발해 대부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미 해군의 잠수함 건조 사업에 오래 참여해온 컴버스천엔지니어링과 밥콕앤드윌콕스도 가압경수로 사업자에 오르는데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은 뒤에 한국 원전산업의 모체가 된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이어지며 원전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웨스팅하우스는 세계 시장에서 GE의 비등수형 보다 3배 이상 팔면서 원전산업의 선두로 나섰다.
원전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선 것은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이다. 이미 100여기 이상을 건설한 미국에서는 더 이상의 원전 수주가 없었고 세계 시장은 그리 넓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경영난에 몰린 컴버스천엔지니어링으로부터 1987년 영광원전 3·4호기를 발주하면서 원천 기술을 이전받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사용한다는 조건이었다. 당시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의 프로마톰은 아예 원천기술을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세계 원전 시장은 계속 좁아졌고 원전기업 간에는 합종연횡이 시작되었다.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은 1989년 스웨덴의 다국적 에너지업체인 ABB로 넘어갔다. 영국핵연료공사(BNFL)는 1999년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고 2000년에는 ABB의 원자력 부문도 사들여 한국원전의 원천기술 소유권을 웨스팅하우스가 갖게 되었다.
2006년에는 서방의 원전산업계가 3개 연합으로 정립된다. 일본의 도시바가 영국의 BNFL이 시장에 내놓은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고, 미국의 GE와 일본의 히타치가 원자력사업 부문을 통합했다. 일본의 미쓰비시는 프랑스의 아레바와 사업 제휴를 함으로써 합종연횡이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2기의 원전을 건설하던 웨스팅하우스는 발주사들의 중도포기로 63억 달러의 손실을 입고 2017년 3월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결국 2018년 도시바는 웨스팅하우스를 캐나다의 자산운용사 브룩필드 비즈니스 파트너스에 매각하였다. 지난 10월 초 웨스팅하우스는 자산운용사의 자회사인 브룩필드 리뉴어블 파트너스(51%)와 캐나다 우라늄 생산업체인 카메코(49%)가 공동 인수하였다. 그리고 이번 제소는 새 단장한 웨스팅하우스가 독자 행동을 한 한국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의 원전 수출은 당신 웨스팅하우스-도시바가 한국전력 컨소시엄에 기기납품업체로 참여하면서 미국 정부의 허가도 받아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한국전력은 이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UAE원전수출관련협약’, ‘라이센싱서포트합의’에서 "APR1400 등은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이 한국수력원자력에 준 기술 등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재차 확인해주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한국 원전산업의 현 주소이다. 이번 폴란드 수주전에서 한국의 원전산업이 저가의 시공사로서 웨스팅하우스의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것으로 막을 내릴지, 독자적인 수출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필자는 그동안 한국 원전산업의 활로는 안전 운영 기술 확보와 폐로에 있음을 권고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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