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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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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공급의 안정성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10.26 10:10

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박성우

▲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듯이, 천천히 달릴 때는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 그러다 속도를 높이면 자전거가 안정화된다. 17세기에 뉴턴이 발견한 관성이라는 물리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학교에서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한다는 관성의 법칙을 배웠다.

전력시스템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전력시스템의 관성은 회전하는 대형 발전기에 저장된 에너지를 말하는데, 이로 인해 발전기는 계속 회전하려는 경향을 갖게 된다. 이 저장된 에너지는 발전기가 고장 났을 때 발생하는 전력 손실을 일시적으로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몇 초 동안만 활용할 수 있는 이러한 반응으로 인해, 발전소를 제어하는 기계적 시스템이 고장을 발견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관성은 전력시스템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기존의 석탄, 가스 발전기들은 우리나라의 계통 주파수인 60Hz(±0.2)에 맞춰서 운전한다. 대부분의 태양광, 풍력, 에너지저장장치는 인버터를 통해 전력계통에 연결되므로 관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인버터 기반 자원의 비중이 매우 높은 전력계통에서는 송전선로 고장, 발전기의 갑작스런 정지와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대응책을 미리 준비해 놓지 않은 경우에는 계통관성 저하로 주파수가 급하게 떨어질 수 있다. 주파수가 일정한 값 이상으로 벗어나면 발전기들이 설비보호를 위해 전력계통에서 스스로 이탈하고, 변전소들도 미리 정해진 순서대로 전력공급을 중단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변동성이 있는 재생에너지가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4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별로 전력계통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을 제시하였다. 1단계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3% 이내이며, 전력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단계이다. 2단계는 비중이 3~15%이며, 전력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조금씩 나타나는데, 전력계통 운영방식을 개선하면 쉽게 해소할 수 있다. 우리나라 육지계통이 현재 2단계라고 할 수 있다.

비중이 15~25%에 이르면 3단계로 분류하는데, 전력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 불확실성이 나타나므로 시스템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출력예측 시스템을 갖추고, 유연성 자원을 확대해야 한다. 제주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4단계는 비중이 25% 이상인 경우인데, 재생에너지가 전력수요의 100%를 담당하는 시간이 발생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계통관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며, 최종 소비부문의 전기화, 전력 변환 및 저장 기술이 필요하다.

이처럼 계통관성은 재생에너지의 초기 보급 단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25% 이상이 되면 전력계통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에 의하면, 기존 발전기를 풍력,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 등의 인버터 기반 자원으로 교체하면 활용가능한 관성의 양이 줄지만, 이로 인해 실제로 필요한 관성의 양이 줄어 첫 번째 효과를 상쇄할 수 있기도 하다. 즉, 주파수응답 제공에 대한 우리의 기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인버터 기반 자원의 증가로 인해 계통관성의 양이 감소되더라도 전력시스템의 신뢰성을 유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여러 해결책이 있으므로, 관성의 감소는 풍력,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를 크게 증가시키는데 심각한 기술적, 경제적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미리 준비만 한다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한 영역인 것이다.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전력수급의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면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면서 전력계통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미리미리 해야 한다. 자전거 타기를 장려하려면 자전거도로와 같은 기반시설을 잘 갖추어야 하고,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헬멧, 보호대와 같은 안전장구를 착용해야 하듯이 말이다.

우리에게도 관성이 작용한다. 과거의 생각과 행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자전거에 올라타서 멈춰 있거나, 느린 속도로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기만 한다. 자전거의 속도가 빨라지면 중심잡기가 쉬워진다. 자전거를 배우려면 빠른 속도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재생에너지가 주력전원이 될 때를 대비하여 전력계통 운영의 커다란 변화가 요구되는 때이다. 우리에게는 빠른 변화 속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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