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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유럽이 일련의 제재를 가하자 러시아는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중단·축소로 맞서고 있다. 유럽으로 향하는 3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중 야말-유럽(Yamal-Europe)선이 지난해 말 이미 차단된데 이어 지난달초에는 러시아에서 발트해 해저를 거쳐 독일로 향하는 노르트스트림1선 가스공급이 무기한 중단됐다. 선진7개국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 가격상한제를 적용하겠다는 발표가 있은 직후였다.
지난해 9월 완공된 노르트스트림2선은 올해 2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로 독일측의 승인절차가 중단됐다. 며칠전에는 노르트스트림1·2 모두에서 인위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가스관 파손이 발견돼 가동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현재는 3대 파이프라인중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를 경유하는 파이프라인 만이 가동되고 있으나 이마저도 언제 가동 중단될지 알 수 없다.
유럽은 천연가스 수입의 40% 이상을 차지했던 러시아의 대체 조달처를 확보하는데 필사적이다. 당장은 미국, 카타르 등에서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과 노르웨이, 아제르바이잔 등의 가스 수입으로 견디고 있으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모자라는 판이다. 지난달 25일에는 독일이 아랍에미레이트(UAE)로부터 연내 LNG를 공급받기로 합의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에게 다음달 1일까지 가스 저장설비의 80% 이상을 채우도록 요구하고 있어 각국은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유럽은 천연가스 확보를 당장 LNG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LNG는 PNG(파이프라인 천연가스)보다 액화비와 재기화비, 수송비 등 비용이 많이 소요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유럽의 LNG확보 총력전은 LNG 수입 1~3위국이 몰려 있는 아·태지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1분기 LNG 수입은 유럽이 전년동기 대비 70% 증가했고, 아·태지역은 8% 줄었는데, 이는 LNG 운반선 상당수의 목적지가 아태지역에서 유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LNG 수입 세계 3위로서 지난해 수입물량이 3817만톤으로 전년대비 624만톤(19.6%) 증가했다. 세계 1위 수입국인 중국의 증가량(1040만톤)에 이은 두번째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후 발전용 가스 수요가 크게 늘었다.
글로벌 가스 쟁탈전이 치열한 상황에서 가스 수요 대국인 우리나라는 관민(官民) 일체로 안정적 물량 확보를 위해 전력투구해야 한다. 올해 8월 현재 우리나라는 LNG 총 저장용량 557만톤의 34%인 181만톤을 비축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의 의무비축물량인 일평균 사용량의 9일분 이상으로 통상적인 여름철 비축물량의 2배에 달하지만 비상시국인만큼 비축량을 더욱 늘려야 한다.
목적지조항이나 의무인수조항 등의 조건이 까다롭게 요구되지 않는 미국산 LNG 장기계약물량을 우선적으로 확보하되 세계 상위 가스수출국인 호주, 카타르 등과의 안정적 수급관계도 유지해야 한다. 유가에 연동되는 장기계약물량 가격은 JCC가격(일본의 평균 원유수입가격)에 대략 14.5%를 곱해 결정되는데, 최근 유가가 LNG 현물가격보다 상대적으로 덜 올랐으므로 장기계약이 가격 면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현재 70~80%인 장기계약 비중을 당장 크게 늘릴 수는 없으므로 카고 단위의 현물·단기 시장 물량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
가스 물량 확보에는 비상이 걸렸지만 가스 운송이나 액화·기화 설비 등의 시장에서는 기회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전세계 LNG운반선은 올해 4월 말 현재 총 641척으로 2020년 이후 10% 늘었으며 현재 216척이 건조중이다. 우리나라가 LNG운반선에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술력에서 앞서갈 수 있는 지속적인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국제해사기구(IMO) 규정에 따라 2020년 해양 연료의 황 함량 0.5% 또는 배출규재해역(ECA) 0.1% 글로벌 상한 규제가 시행됐고, 내년 1월부터는 신·기존 선박에 대한 에너지효율지표인 EEXI(Energy Efficiency Existing Ship Index)와 탄소강도지수(CII)라는 두 가지 더 엄격한 규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이에 대응해 바이오합성LNG나 암모니아, 수소 등을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 개발·생산을 확대해야 한다.
액화수소나 블루암모니아, 그린암모니아 등 무탄소 신연료 운송을 위한 선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유럽의 부유식LNG저장·재기화설비(FSRU) 발주 급증에서 기회를 찾을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