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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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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에너지 쇼크' 현장을 가다] “전기요금, 1인 가구인데도 올해 320만원…4개월 새 100만원 올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10.03 09:56

에너지사, 전기요금 폭등 속 ‘생강 먹어라’ 등 짠 내 나는 위기극복 아이디어 제안



"요금폭등 이유 물으니 ‘도와줄 대부업체 알려주겠다’ 황당 답변"



"의료·교통 등 공공 서비스 좋고 전기요금 저렴한 한국 귀국 고려하는 교포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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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민들이 에너지요금 납부를 거부하는 ‘Don‘t Pay’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런던(영국)=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여기는 한국처럼 난리 친다고 전기요금 깎아주고 그런 거 없어요. 너무 비싸서 못 내겠다고 하면 그냥 전기 끊어버려요."

고(故)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 다음날이었던 지난달 20일 도착한 영국 런던 현지 분위기는 무겁게 느껴졌다.

리즈 트러스가 지난달 6일 영국 보수당 정부의 새 총리로 취임했지만 새 출발의 기대로 들뜬 모습은 더더욱 찾기 어려웠다.

새 국왕 찰스 3세를 맞았지만 여왕 장례식 이튿날 여전히 추모 열기가 가득했다. 길거리 상점들마다 여왕의 추모 영정을 걸어두고 곳곳에 추모공간이 마련됐다.

세계 최대 관광도시인 런던이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은 자취를 감춘 ‘스모그 도시’ 때를 떠올릴 정도로 착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이는 시민들의 표정이나 반응을 통해 여왕 서거 때문 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새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으로 에너지 가격을 포함한 물가 폭등까지 겹쳐 서민생활을 옥죄면서 런던 시민들의 고단한 삶의 일단이 확인됐다.

시민들의 어두운 표정엔 당연히 2년 넘게 계속돼 지칠대로 지친 코로나19 여파까지 더해져 영향을 준 것이란 게 현지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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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시민들이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 이튿날인 지난달 20일 길거리에 차려진 추모공간에서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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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길거리 상점들마다 여왕의 추모 영정을 걸어두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최초 한인 시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성 변호사는 "지난 3년 여 동안 코로나19와 물가폭등, 금리 인상 등으로 여기 와서 생활이 오히려 더 나빠지신 분들도 많다. 여기는 코로나 봉쇄 기간 동안 한국처럼 건물주가 월세를 감면해주는 개념도 없었다. 안 그래도 한국이 의료나 교통 등 기타 공공서비스가 좋고 요금도 저렴해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을 고려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그런 분들을 돕기 위한 여러 복지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에너지요금 폭등은 영국의 주택들이 오래된 게 많아 한국의 아파트들과 달리 난방효율이 나쁘다. 기본적으로 난방비가 더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올해 여름엔 기록적인 폭염이 닥쳐 냉방용 전력수요도 많았다"며 "그런데다 영국 에너지믹스의 45%를 차지하는 풍력발전량이 줄어들고 천연가스 가격까지 폭등하니 그야말로 서민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 몰든(NEW MOLDEN) 지역을 중심으로 에너지효율이 높은 한국식 아파트 건설을 시 의회에 건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런던에서 만난 시민 서니(SUNNY) 씨가 제공해준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면 에너지 위기가 휩쓴 런던의 사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연간 예상 전기요금이 지난 1월 1726.73파운드, 한화 약 268만7300원(29일 기준 1파운드 환율은 1557.08원)으로 책정돼있었다.

그러나 넉 달 뒤인 지난 5월에는 2308.99파운드, 한화 약 360만원으로 무려 100만원 가까이 폭등한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불과 넉 달 새 약 38%가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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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기회사 E-ON의 1월 전기요금 청구서. SUNN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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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기회사 E-ON의 5월 전기요금 청구서.SUNNY 제공


 영국 가스·전기 시장 규제기관인 오프젬(Ofgem)이 지난 4월부터 에너지 요금을 54%, 가구당 평균 114만원 인상하기로 결정한 여파가 현실로 닥친 것이다. 서니 씨 같은 사례가 많아지자 영국 현지에서는 에너지요금 납부를 거부하는 ‘Don‘t Pay’ 캠페인이 펼쳐지는 등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영국 에너지 기업은 고객들에게 난방온도 낮추기의 일환으로 생강을 먹고 반려 견 껴안으라고 권고하는 것은 물론 양말을 배송하기도 했다. 한국에선 먼 나라 얘기 같지만 그야 말로 눈물겨운 삶의 현장이 눈 앞에 펼쳐졌다. 런던에서 에너지 위기가 일상까지 파고 든 것이다. 런던의 짠 내 나는 위기 극복 노력이 눈물겹게 다가왔다.

외신으로만 전해들었던 유럽 에너지난의 고통스러운 실상을 체감할 수 있었다. 영국 통신사 ‘로이터’는 최근 기록적으로 치솟은 에너지비용 탓에 상당수 영국 가구가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거주 한 시민은 에너지가격 폭등으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샤워도 직장에서 한다"고 전했다. 영국 대표 일간 신문 ‘더 타임즈’에 따르면 스위스 당국도 에너지 절약 대책으로 ‘오븐을 예열하지 않고 케이크 굽기’, ‘따뜻한 물 대신 찬물로 입 행구기’ 등 권고했다. 특히 스위스 환경부 장관인 시모네타 소마루는 "사용하지 않은 컴퓨터와 전깃불을 끄고, 함께 샤워할 수 있다"고 말해 현지에서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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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 씨는 계약 관계에 있는 전기회사 ‘이온’(E-ON)에 이메일로 전기요금 급등 이유를 묻는 질문을 보냈으나 돌아온 답이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가 받은 답변은 급등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예상치 못한 요금 급증에 죄송하다.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대부업체 들을 알려주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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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영국 정부는 여왕 장례식 직후인 지난달 20일 10월부터 향후 2년 동안 연간 가구당 평균 전기요금 청구 한도를 2500파운드, 한화 약 389만 2500원으로 고정하겠다는 ‘에너지대책’(Energy Plan)을 발표했다.

영국은 전력회사가 가구당 평균 사용량을 예측해 연간 사용량과 요금을 미리 고지한 뒤, 실제 사용량 만큼 차감하는 복잡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한은 에너지를 공급하는 회사가 소비자에게 부과할 수 있는 단위(kWh)당 전기·가스 요율에 상한을 두는 것이다. 일반적인 가구의 연간 평균 사용량(전기 2900kWh)를 요금으로 환산한 개념이다. 이는 현재 상한선인 연간 1971파운드, 한화 약 300만원보다 23% 증가한 수치다.

다만 당초에는 10월부터 연간 전기요금 청구 한도를 3549파운드, 한화 약 552만 5800원으로 인상할 계획이었으나 여론의 극렬한 반발에 그나마 3분의 2 수준으로 낮춘 것이다. 상한 결정 주기도 기존 반기별에서 분기별로 변경하려 했으나 민생 안정을 이유로 2년 동안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가정 뿐 아니라 비즈니스 및 공공부문에도 향후 6개월 동안 동일하게 2500파운드로 상한을 두기로 했다.

문제는 이 상한의 개념이 ‘아무리 많이 써도 2500파운드 이상은 청구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국 기업에너지부 관계자는 "에너지기업이 소비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연간 한도가 평균 사용량을 기준으로 2500파운드까지라는 의미이고, 그 이상으로 사용하는 금액은 당연히 더 지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니 씨의 경우 1인 가구인데도 이미 연간 예상 요금이 2500파운드에 육박하고 있다. 2인 이상 가구는 무조건 그 이상의 요금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도 올해 글로벌 에너지가격 폭등으로 독점 전기 공급 회사인 한국전력공사가 상반기에만 15조원의 적자를 보고 있지만 소매요금에 전가되지 않아 일반 가구는 에너지위기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에너지가격이 폭등한 이유는 이미 90년대부터 전기회사가 민영화돼 도매 가격이 오르면 자연히 소매가격도 오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전에 따르면 307㎾h를 사용하는 4인 가구의 현재 기준 월평균 전기요금은 4만 5000원대다. 연간으로 해도 54만원이다. 영국의 요금 청구 상한선인 380만원의 15%에 불과하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발표된 4분기 인상분까지 포함할 경우 올해 국내 전기요금 인상 폭은 kWh당 19.3원이다. 인상률로 따지면 15%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한전 측은 연료비 급등에 따른 소매요금 인상 요인이 kWh당 최소 50원은 된다고 보고있다.

한전 관계자는 "여전히 전력을 220원 넘는 금액에 사서 절반 수준인 120원대에 팔고 있는 상황"이라며 "단순히 계산해도 kWh당 50원이 아닌 100원은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이번 ‘에너지계획’은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1호 정책이다. 이 정책은 당초 취임 직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왕 장례로 인해 지난달 20일로 연기됐다.

트러스 총리는 "이번 조치로 에너지 요금에 대한 예측 가능성 제공과 인플레이션 억제, 경제 성장이 기대된다. 가구당 연평균 1000파운드(한화 약 156만원)가 절약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크와탱 재무장관은 "정부가 방관했다면 더 큰 비용을 치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즈모그 기업에너지부 장관도 "장기적으로 에너지 부문 개혁과 에너지 시장 문제 해소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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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국 더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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