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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주택가 전경. 사진=김기령 기자 |
[에너지경제신문 김기령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4억원에 전세 거주 중이던 40대 박 모씨는 지난달 보증금 4억원에 40만원씩 월세를 추가로 내기로 집주인과 협의했다. 박씨의 경우 수도권에 9억원 초과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1주택자로 전세대출 조건이 까다롭고 제약이 많아서다. 박씨는 "이사 비용도 아낄 겸 고금리를 피해 월세를 택하긴 했지만 월세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고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높아진 이자 부담에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하지만 월세 수요 증가가 월세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전세의 월세화가 세입자들의 임대료 부담을 높여 월세난민을 대량으로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집계된 전국 주택 월세 거래량 비중은 51.5%로 전년 동월 대비 9.2%p 증가했다. 지난 6월에 월세 거래량 비중이 전체의 절반(50%)을 넘어선 이후 두 달 연속 월세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는 7117건으로 전체 전·월세 거래(1만7028건)의 41.7%를 차지했다. 1년 전인 지난해 7월 월세 비중이 37%였던 것보다 증가한 것이다.
목동의 A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기존에는 집주인들만 월세를 선호해서 전세 거래가 더 많았는데 금리 인상 이후로 전세는 매물이 쌓이고 월세 수요는 꽤 늘었다"며 "갱신계약의 경우에도 전세금을 올리기보단 인상액의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려는 세입자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세입자들이 월세를 선호하는 이유는 계속된 금리 인상에 대출이자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갱신계약이 아닌 경우 전세가격이 5% 넘게 오르기 때문에 이자 부담을 느낀 세입자들이 차선으로 월세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10단지’ 전용 105㎡는 지난 7월 보증금 5억원에 월 155만원으로 월세 계약됐다. 해당 매물은 지난 2018년 이후 전세로 계약됐지만 4년만에 월세 전환한 것이다. 기존 임대차계약은 지난 2020년 체결된 전세 6억3000만원이었다.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높인 것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구현대 6·7차’ 전용 144㎡는 지난달 26일 보증금 5억5000만원에 월 550만원으로 월세계약됐다. 직전 거래인 지난해 8월(보증금 5억원에 월세 215만원)보다 1년 만에 보증금은 5000만원 오르고 월세는 335만원 올랐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지난 6월까지 1년간 체결된 전·월세 갱신계약 7만3352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전세 갱신계약 비중은 47.1%에 달했으나 월세 갱신계약 비중은 27.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차3법 중 하나인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으로 전세 시장은 소폭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지만 전세의 월세화로 월세 가격 상승폭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건산연 관계자는 "전·월세 간 신규 계약 비율에 격차가 꽤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올해 상반기 들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아파트의 월세 거래가 많아졌는데 이 중 많은 부분이 비교적 가격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신규 계약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월세 수요 증가와 월세 가격 상승 등 월세 시장이 재편됨에 따라 월세난민이 양산될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전세 대비 월세 수요가 늘어나면서 월세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며 "전세 대신 월세를 택하면서 대출 이자 부담은 줄일 수 있다고 볼 수는 있지만 가계의 임대료 부담 자체는 계속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은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세 가격이 안정세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월세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월세난민을 초래할 만큼의 가격 급등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가격이 조정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월세가격이 급등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월세 가격이 치솟게 된다면 기존 거주 지역을 벗어나 전세가 저렴한 지역으로 옮기는 거주 이동이 발생함에 따라 월세난민 문제로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giryeong@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