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
최근 한국의 방위산업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전 세계를 대상으로 명품이라고 칭찬받는 K-9 자주포, 경전투기인 FA-50과 같은 대형 무기체계는 물론 천궁-II와 같은 첨단 광역 지대공 미사일방어체계, 대전차 미사일인 현궁과 휴대용 대공 미사일인 신궁 같은 최신 정밀 무기 체계를 수출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도네시아·필리핀 등 아시아 지역 중소국가들이 가격 경쟁력과 성능을 겸비한 한국 무기의 주요 고객이었지만 이제는 UAE·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국가, 호주·노르웨이·핀란드 같은 선진국은 물론 폴란드나 슬로베니아 같은 구동구권 국가도 한국 무기를 구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후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가 군비 확충에 나서면서 한국 무기는 더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과거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소련으로부터 큰 피해를 겪고, 이후 소련 위성국으로 탄압받았던 폴란드의 경우 한국 무기 도입에 적극적이다, 현재 폴란드는 FA-50 경전투기, K2 전차, 천궁-II 미사일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언젠가는 러시아와 충돌할 것이라는 우려가 폴란드의 군비확장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문제는 독일 등 유럽의 주요 방위산업 수출국의 생산 능력 부족으로 폴란드가 필요로 하는 무기와 장비를 빠르게 공급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한국 무기의 가장 큰 인기 비결은 가성비이다. K-9 자주포는 세계 1등은 아니지만 확실한 2등이다. 소위 1등이라는 독일제 자주포에 비해 성능은 약간 뒤지지만, 가격은 반 이상 저렴하다. 또한 한국군이 1000문 이상 대량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간 부품 수급에 문제가 없어 장비 운용 효율이 높고, 유지관리비가 저렴하며, 지속적인 기술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성능 향상과 개량도 계속 이루어져 향후 일부 업그레이드를 통해 독일제 자주포 못지않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한국 제품의 매력은 단지 가성비만 아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국가이다. 외국이 필요한 무기와 장비를 주문만 하면 빠르게 대량 생산하여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또한 기술 이전에 적극적이다. 단지 무기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파격적인 기술 이전을 통해 수입국에 자체 생산 기반을 마련해 준다. 심지어 수입국이 한국 기술이 들어간 무기를 자체 개량하여 다른 국가로 수출하는 것도 허락해 준다. 수입국은 필요한 무기를 도입하면서 자국의 산업 기반도 강화하는 다양한 혜택을 누린다. 매우 매력적인 조건이다. 대표적으로 터키가 한국의 자주포와 전차를 도입하여 자체 개량 후 해외 판매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수출 방식은 한국의 산업 발전 모델의 복사판이다. 한국은 부족한 원천기술을 선진국에서 수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산업 생산 능력을 동원하여 제품을 국산화하고, 여러 단계의 개선과 개량을 거치면서 우수한 제품을 생산했다. 한국이 전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반도체·자동차 등 산업 분야가 이에 해당하고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주요 기업이 이런 길을 걸어왔다. 1등 제품은 아닐 수 있지만 확실한 1.5등 또는 2등 제품을 1등보다 더 많이, 빨리, 싸게 생산하고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1등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한국의 방위산업은 한국의 국방을 완벽히 책임지지 못한다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최근의 많은 성과에 고무된 방산 업체는 군이 요구하는 거의 모든 무기체계를 자체 개발하려고 한다. 이 중에는 조기경보기, 정보수집기 등 아직은 한국 독자 능력으로 개발하기 어려운 장비들도 포함된다. 물론 외국 제품이 비싸고, 후속지원도 안 좋아서 유지관리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국산화가 만능은 아니다.
예를 들어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으로 여겨지는 공군력의 경우 선진국에서는 이미 F-35 등 5세대 전투기가 주력으로 자리 잡고 있고, 일본은 6세대 전투기를 개발 중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4.5세대 전투기인 KF-21을 개발하고 있다. 우수한 4.5세대 전투기는 전 세계적으로 소요가 많은 매력적인 제품이다. 그러나 최신·최고 성능의 무기와 장비로 무장한 중국· 러시아·일본, 그리고 핵으로 협박하는 북한 등에 포위된 한국은 순수 국산 장비로만 국가를 지키기 힘들다.
특히 5·6세대 전투기 및 관련 기술, 첨단 드론과 정찰·감시 장비 등은 과감하게 수입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필요한 1등 제품을 외국에서 구입하는 게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절충교역을 통해 필요한 기술을 획득할 수도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도 곧 1등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오히려 국방을 약화할 수 있는 지나친 국산 무기 만능주의를 경계하고 국익을 위해 절충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