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환율 불안 시대 스테이블코인의 도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12.30 11:01

이상호 대전대학교 교수/ 한국국가정보학회 회장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과거에는 화폐가 물건 또는 서비스 등을 주고받으면서 이에 따른 가치 교환을 위한 수단이었다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스마트 머니(smart money)이자 국경을 초월하여 데이터와 가치를 동시에 전송하는 핵심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세계는 국책은행이 발행하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와 민간 기업 주도의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두 종류의 첨단 암호화폐를 중심으로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미국 달러와 같은 법정 통화에 1:1로 연동,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여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한 암호화폐를 지칭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가격이 급등락하는 다른 암호 자산과 달리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목표다. 예를 들어 최초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는 1 USDT가 항상 미화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 어디로든 직접 빠르게 전송할 수 있어 속도가 느리고 많은 수수료를 부과하는 은행 대신 효율적인 해외 송금·결제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때문에 마약 밀매, 해킹, 테러 자금 조달, 자금세탁 등 국제 불법 자금 거래에 사용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 거래 확산은 다양한 암호 자산 간 거래를 원활하게 하고 안정된 투자 환경을 조성해 시장의 유동성을 높여 주식시장에 못지않은 매력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한다.




이를 주도하는 게 미국 달러(USD) 표시 스테이블코인이다. 현재 국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0% 이상이 달러 기반으로 운용되며,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이에 미국은 '스테이블 코인법'을 입법하며 주도권 강화에 나섰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향후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세계 여러 국가의 통화를 잠식하여 이들의 통화 주권을 위협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대외 의존도가 높고 기축통화국 아닌 한국에 더 치명적이다. 특히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외 자금 결제 및 송금 시장을 잠식할 경우, 원화의 입지는 급격히 축소되고 위기 시 급속한 자본 유출을 통제하지 못해 심각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원화 가치가 급격히 절하되면서 과거 IMF 사태와 같은 외환위기 우려가 부상하고 있다. 만약 원화 가치가 계속 추락하면 기업과 개인의 환전 욕구가 확대될 것이고, 금액 제한이 없고 빠른 구매가 가능한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환전 수요가 쏠린다면 환율 통제가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이 원화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면 과거 IMF보다 더한 외환위기가 초래될 것이다.




국내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이런 위험을 인지하고 있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 디지털 화폐와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현재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다. 디지털 통화의 국제적 확산은 단순한 금융 기술의 발전을 넘어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안보 이슈로 부상했다. 특히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한국의 통화 정책과 경제 주권을 위협한다. 보유, 증여, 송금 등의 제한을 받지 않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을 대안 없이 방치한다면 국내 금융 시장에 심각한 타격을 초래할 수 있다. 유사시 발생할 수 있는 빠른 대규모 자본 유출은 대한민국이 당면한 범국가적인 차원의 실존적 위협이다. 이는 금융, 기술, 안보가 융합된 복합 위기가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한국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위상과 위력에 대항하기 쉽지 않더라도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원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등 자체적인 디지털 통화 역량을 확보하여 급변하는 국제 자본과 금융시장의 도전에 대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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