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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윤석열 정부에 폭탄 된 전기요금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5.29 14:56

에너지경제 구동본(에너지환경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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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폭탄은 여러 개다. 부동산, 물가, 재정, 가계부채 등등. 전기요금도 그 중 하나일 것 같다. 부동산 등 일부는 이미 폭탄이 터져 뒷수습이 한창이다. 반면 전기요금 폭탄의 뇌관은 아직 건드리지도 않았다. 아니 폭탄의 안전 핀을 겨우 붙잡고 쩔쩔매는 형국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이 폭탄이 터지면 서민생활에 직격탄이 된다. 폭발의 시기가 늦어지면 그 파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냉방기를 많이 쓰는 여름철 전력 성수기도 다가온다. 이런 악조건들 속에 대표 공공요금인 전기요금까지 오르면 서민 주름살이 깊어지는 건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정책에서 크게 두 가지 잘못을 했다. 하나는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이념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임기 말까지 정책 실패에 대한 후회나 반성은커녕 책임을 다음 정권에 떠넘긴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철부지나 광신도들이 과학보다는 미신에 사로잡혀 굿판을 벌이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정책의 골격은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였다. 이 정책 방향은 원전의 위험성, 재생에너지의 환경성을 고려하면 일견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위험성과 환경성에 대해 논란이 많았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외눈박이로 밀어붙였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중 탈원전에 대해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를 받은 것도 그래서 탈이 난 것 아닌가.

오죽했으면 정책 모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탈원전 궤도수정 없이 탄소중립 이슈를 던졌을까. 원전은 탄소배출 없어 탄소중립 목표를 이루는데 빠져서는 안 되는 전원으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는 한마디로 탈원전하면서 탄소중립도 이루겠다고 한 것이다.

설령 방향이 옳다고 현실을 무시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둔 것도 정책실패의 원인이다. 우리나라 발전비중은 지난해 기준 석탄(34.3%), LNG(액화천연가스·29.2%), 원자력(27.4%) 등 3개 전원이 각각 30% 안팎을 차지한다. 이 3개 전원이 전체 전력 생산의 90.9%를 담당하며 크게 3등분한다. 나머지 한 자릿수를 차지하는 게 신재생에너지(7.5%) 등이다. 신재생에너지도 연료전지 등 신에너지를 빼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은 겨우 5% 안팎에 그친다.

국내 최대 발전원인 석탄 발전은 이제 기후변화 대응 등을 위한 글로벌 탈석탄에 발 맞춰 불가피하게 줄일 수밖에 없다. 이런 마당에 문재인 정부는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탈원전 정책을 막무가내로 고집스럽게 추진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뭔가. 값비싼 LNG 발전과 신재생에너지 밖에 없다.

신재생에너지는 비용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매우 낮다. 재생에너지는 발전 설비 비중 대비 발전량으로 보면 원자력의 약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발전 설비의 단위당 면적을 봐도 신재생에너지는 원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이념 편향’, ‘현실 무시’ 에너지정책의 대가는 혹독했다. 우선 멀쩡한 국내 최대 공기업 한국전력공사가 멍들었다. 한전은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 4조95232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 뒤 2018년 탈원전 등이 본격화하면서 2020년을 제외하고 매년 영업손실을 나타냈다. 특히 영업손실 규모가 지난 한 해 5조8601억원을 보이더니 올해 들어 1분기에만 무려 7조7869억원으로 불어났다. 둘 다 한전 역대 최대치다. 한전은 코리아디스카운트를 막기 위해 미국 뉴욕 주식시장에 상장, 글로벌 대표 상품으로 내놓은 기업이다. 경제 한류의 대표작인 셈이다. 그런 기업을 권력이 사실상 불구로 망가뜨린 것이다.

한전 경영 부실의 책임은 국민 피해로 고스란히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이 비싸진다는 뜻이다.

전기요금체계의 문제는 이미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8년 이미 공개적으로 지적됐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한전 사장이 앞장섰다. 당시 김종갑 사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두부공장의 걱정거리’란 글을 올려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제기했다. 자신을 ‘두부장수’에 비유해 콩(원료)값이 두부(상품)값보다 더 비싸진 상황을 빗대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이를 애써 무시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더니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전기요금을 사실상 줄곧 동결했다.

심지어 임기 말인 지난해 1월부터 스스로 도입한 연료비연동제조차 곧바로 무력화했다. 연료비가 큰 폭으로 오르는데도 정부가 잇따라 전기요금 인상에 제동을 건 것이다. 대선이라는 정치적 변수 앞에 옹색한 물가안정론까지 들이대며 전기요금 인상을 막았다. 아마도 탈원전 부작용에 대한 비판이 두려웠을 것이다.

인상 요인이 없었다면 뭐가 문제였겠나.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값싼 석탄·원자력 발전기를 줄이고 비싼 LNG 발전과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이다. 이 정책에선 기본적으로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불행히도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에너지가격 급등까지 겹쳤다. 운이 좋았다면 가려졌을 수도 있는 국내 정책실패의 문제점이 도드라졌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결국 지난해 말 올해 4월과 10월 기본 전기요금을 KWh당 각각 4.9원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4월은 새 정부가 결정돼 권력을 인수하는 시점이고 10월은 새 정부가 국정을 운영하는 때다. 4월 인상 책임은 새 정부와 나눠지고 10월 인상 책임은 온전히 새 정부에 넘기는 것이다. 전형적인 책임 회피다. 야반도주 표현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말 같다.

그것도 전기요금 구성요소인 기본요금·조정요금·기후환경요금 중 기본요금과 기후환경요금 인상에 그쳤다. 정작 필요한 조정요금은 손도 안 댔다. 조정요금은 연료비 상승분을 반영하는 요금이다. 연료비 연동제 도입 이후 연료비 급등으로 조정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엔 귀를 막았다.

전기요금만 묶어둔 게 아니다. 탈원전에서 한 발 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원전이 값 싸고 탄소중립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한낱 쇠귀에 경 읽기였다.

전기요금을 올릴 수 없다면 인상 요인을 줄이는 조치를 하는 게 정부 역할이다.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값싼 발전기를 많이 돌려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원전 폐기 또는 건설 중단 등으로 지난 5년 간 허송세월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전기요금 폭탄의 뇌관 제거에 비상이 걸렸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대못을 뽑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에너지정책을 새롭게 설계해 ‘합리적인 전원믹스’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전도 벼랑 끝 위기를 맞아 ‘고강도 비상경영’을 펼치며 군살빼기에 나섰다. 보유자산 매각, 경상경비 감축 등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6조원 규모의 재무개선 효과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대책이 마땅찮다. 무엇보다도 주요 발전 연료인 석탄·LNG 가격이 올랐다. 석탄·LNG 발전의 경우 연료비 상승 외에 온실가스 감축 압박 등으로 가동이 여의치 않다. 그렇다고 값싼 원전 비중을 무작정 높일 수도 없다. 탈원전 대못이 곳곳에 박혀 당장 기존 원전을 더 많이 돌리기가 어렵고 새 원전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

한전의 허리 띠 졸라매기도 마른 수건 짜기요,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전기요금 정책 수립 때 이것저것 눈치 보지 말고 정면 돌파할 필요가 있다. 전기요금 정책을 그냥 시장 기능에 맡기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시장 상황에 따라 오르고 내리도록 하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한 경우 독립적인 기관을 통해 조정하라는 말이다. 그 작업의 첫 걸음은 다음달 중순 예정된 3분기 전기요금 조정 때 요금 현실화다.

다행히 윤석열 정부는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원칙을 꺼내 들었다. 이렇게 어렵게 돌려 말할 필요 없다. 문재인 정부 때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를 제대로 운영하기만 하면 된다.

현재 물가불안 속에 전기요금 현실화를 한꺼번에 이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의 충격파를 감안해 인상 속도는 경제상황을 봐가며 속도조절할 필요가 있다.

전기요금 원가를 낮추는 노력도 불가피하다. 전원 믹스 설계 때 안전과 환경 요소의 고려가 필요하다. 다만 이런 고려가 명확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한 경제성 원칙을 우선했으면 한다. 막연한 주장과 감성적 접근으로 국민에 피해를 안겨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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