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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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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우크라 전쟁이 초래한 원전 산업의 기회와 위협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5.05 09:00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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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며 피해가 늘고 있다.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무고한 민간인 희생이 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사회에 큰 여파와 과제를 남기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어 이번 사태의 파장을 모두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원자력 분야에서도 이미 상당한 교훈과 과제를 국제 사회에 일깨우고 있다.

첫째, 기존의 국제 핵질서를 흔들었다. 핵보유국인 러시아가 핵비보유국인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핵위협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 핵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핵위협으로 받아들일 만한 언급을 하였다. 사흘 뒤 핵 운용부대에 ‘특수경계 태세’ 돌입을 지시해 위협 수위를 높였다.

이처럼 핵비보유국을 상대로 한 핵보유국의 핵위협은 그간 핵비확산체제를 지탱해 온 기본 정신에 배치되는 행위이다. 러시아가 핵보유국과 핵비보유국간 암묵적으로 지켜오던 핵질서를 깨뜨림으로써, 향후 국제사회는 핵보유국에 대해 핵비확산체제 의무 준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우고, 일부 핵비보유국은 핵보유국의 핵위협에 대비한 집단안보체제 수립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새로운 핵안보 위협을 등장시켰다. 그간 원전을 포함해 원자력시설의 물리적 방호체계는 주로 비국가 행위자(Non-state actor)의 테러나 사보타주 등에 대해 대비해 왔다. 그런데 지난 3월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 와중에 화재도 발생했다. 다만, 러시아군은 비국가 행위자처럼 원자로 파괴 등 최악의 상황을 만들지는 않아, 비국가 행위자의 위협과는 양상이 다소 다르다. 하지만 비국가 행위자뿐만 아니라 적성국의 정규군도 원자력시설을 공격해 위해를 가할 수 있음이 드러남으로써, 앞으로 원자력시설은 새로운 핵위협에도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방사성폐기물 등의 안전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을 점령했던 기간 중 폐기물 저장고에 있던 코발트-60을 맨손으로 집어들고, 일명 ‘붉은 숲’으로 알려진 체르노빌 원전 인근 방사성 오염 지역에 참호를 설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행위는 러시아 군인의 방사선 피폭은 물론 방사성 오염을 다른 지역까지 확산시킨다. 방사성폐기물이나 방사성 오염 지역을 방치했을 때, 이번과 유사한 사건이 언제 어디서든 재발할 수 있다. 따라서 방사성폐기물 저장·처분 장소나 방사성 오염 지역에 대해서는 인간이 침투하여 금지된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관리 대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경우, 폐쇄 후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후 관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넷째, 북한 비핵화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영국·러시아와 체결한 ‘부다페스트 협정’에 따라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고 그 대가로 안전보장을 약속받았다. 그런데 이 안전보장 약속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유명무실해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다자간 안전보장’의 유명무실함이 확인되면서, 북한이 ‘체제보장’을 전제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 그간 북한의 체제보장을 강력한 보상책으로 상정해 진행해 오던 북한의 비핵화 협상 구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도 커졌다. 향후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해, 기존 전략을 대폭 수정하거나 새롭게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원전 공급자로서 러시아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것이다. 현재 러시아는 세계 원전시장에서 원전 공급자로서 지배적 지위에 있다. 러시아 국영기업인 로사톰은 현재 방글라데시, 벨라루스, 중국, 이집트 등에서 35개 해외 원전 건설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자포리자 원전 점령을 감행할 수 있었던 데는 자포리자 원전에 자국 운영요원을 보내 통제할 수 있는 자국산 VVER 원자로가 설치돼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국제질서를 무시하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러시아의 행태를 보면, 자국과 갈등 관계인 나라에 자국산 원자로가 있을 때 물리적 공격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격으로 위해를 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러한 러시아의 예측불허 행태는 원전 공급자로서의 신뢰를 떨어뜨려, 세계 원전시장에서의 지위도 약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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