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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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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스타트업, 투자 냉각기 견딜 수 있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5.03 09:54

이지환 KAIST 경영대학 교수/ KAIST-SK 임팩트비즈니스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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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환 KAIST 경영대학 교수/ KAIST-SK 임팩트비즈니스센터장


문재인 정부는 출범 두 달 만인 2017년 7월 대한민국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했고, 2019년 3월에는 ‘제2의 벤처 붐 확산 전략’을 발표했다. 2020년 들어 공포의 팬데믹이 전세계를 위협했지만, 한편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식사·교제·쇼핑·오락·금융 등 삶의 전반에 걸쳐 온라인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산업과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고 정보기술(IT) 산업을 중심으로 한 스타트업창업과 투자 열풍을 몰고 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해 벤처투자는 역대 최고인 7조7000억원에 육박, 한 해 동안 80%나 증가했고, 2020년 13개이던 유니콘 기업 수는 18개로 늘었다. 저금리로 인한 대체투자 수단으로서의 매력 증대, 소득공제 혜택 대폭 확대, 여기에 증여세 회피를 위한 사모펀드 붐까지 겹쳐 벤처기업에 자금이 유입되고, 자연스레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반복적으로 경험해온 추세로 볼 때 스타트업 열기 또한 언제까지나 고조되기만 할 리는 만무해 보인다. 물론 최근에는 많은 스타트업이 빠르게 매출과 수익을 실현하며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 붕괴와는 양적,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스타트업 열풍에 핵심적인 작용을 한 자본시장에서는 올들어 이미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리서치회사 CB인사이츠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동안 가파르게 증가해 지난해 4분기 1800억 달러(약 220조 원)에까지 이르렀던 전세계 스타트업 투자유치 금액이 올 1분기에는 1400억 달러(약 168 조 원)선으로 급감했다. 벤처캐피털은 물론 헤지펀드·기업·개인들까지 가세했던 스타트업 투자 붐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속화시킨 금리인상과 공급망 균열 및 물류 대란 속에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한때 최고 성장주였던 넷플릭스는 지난 연말부터 일상 회복이 이뤄지고 디즈니플러스 등과의 경쟁이 격화되어 지난 1분기에 처음으로 가입자가 감소했다는 실적이 발표된 직후 하루에만 주가가 35% 폭락해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물론 몇 가지 단편적인 변화 조짐 때문에, 그 동안 공들여 정책을 시행하고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지펴온 불에 굳이 찬물을 끼얹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진정한 생존과 성장은 온실이 제공하는 조건 덕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기업가적 정신과 조직 역량에 기반한 경쟁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청년사관학교를 비롯한 다양하고 참신한 지원 정책이 있다는 것은 분명 우리나라 창업가들이 누릴 수 있는 우호적 여건이지만, 자칫하면 치밀한 사업 전략의 수립 및 실행보다 지원금 수혜를 위한 보여주기식 설계와 소통에 특화된 스타트업들을 양산할 수 있는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과 각종 세제 혜택에 힘입어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많은 자금이 투자됨으로써 출중한 인재들이 모이고 데스밸리를 뛰어넘을 수 있지만, 자본시장이 냉각되어 성공적인 IPO(기업공개)가 어려워지거나 투자유치 시 밸류에이션이 하락하면 스타트업 구성원들의 실망·좌절·분노를 유발하게 된다.

나아가 그동안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들 가운데 결국 상당 수가 좌초하게 되면, 앞서 누린 세제 혜택 등은 이미 잊고 극소수 대박 신화만 머리 속에 있는 투자자들과의 마찰 또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이다.

스타트업 육성 정책의 목표가 창업 건수나 고용 창출 등에 맞춰지다 보면 언젠가 겨울 한파가 불어왔을 때 수 많은 스타트업의 부실과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각박하고 냉혹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벤처 육성을 하나의 게임에 비유한다면 숫자는 적더라도 남달리 지속가능한 성장을 시현하는 스타트업들을 배출해야 이기는 것이지 온실에 최적화된 새싹들을 꾸준히 심고 가꾸어 조금씩 점수를 따는 데 몰두해서는 안된다.

비전과 전략, 그리고 역량이 우수한 미래의 유니콘, 데카콘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해볼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 제도 등을 적극 검토하고, M&A(기업인수·합병) 시장을 통한 투자자금 회수나 경영권 이전이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 스타트업, 대기업, 자본시장이 윈-윈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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