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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시각] 진실을 왜곡하는 방법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10.11 13:34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인공지능기법 가운데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이라는 것이 있다. 컴퓨터에게 여러 가지 사례를 제공해 컴퓨터가 스스로 경험칙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살면서 경험칙을 얻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런데 사람의 경우에는 수십 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을 축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반되는 주장도 경험하고 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칙을 수립한다.

반면에 컴퓨터는 입력자가 제공하는 사례를 토대로만 경험칙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어떤 사람의 일과를 컴퓨터에 입력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날 우연히도 그가 출근하다가 넘어졌다면 다른 정보가 없는 한 컴퓨터는 그 사람은 매일 출근할 때마다 넘어지는 사람인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넘어지는 것이 예외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날 하루만을 배운 컴퓨터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칙을 형성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경험을 가지지 않는 부문에서는 우리도 머신러닝과 동일한 오류를 형성할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일반적인 사실을 먼저 입력하고 예외적인 사실은 나중에 따로 입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예외를 먼저 입력하게 되면 우리도 잘못 학습된 머신러닝모델과 동일한 오해를 하게 된다.

2017년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선언하고 밀어붙이던 상황에서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미국의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의 단가를 비교하면서 미국의 경우에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의 가격이 비슷하다는 주장을 했었다.

그런데 에너지의 상황은 나라마다 다르다. 석유가 생산되는 나라에서는 석유가 싸고 수입해다가 써야 하는 나라는 비쌀 수밖에 없다. 특히 액화천연가스와 마찬가지로 기체를 액화하는데 자원의 가격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면 생산국과 수입국의 가격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미국에서 천연가스 발전이 싸다고 해서 우리나라도 싸지는 않다.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이다. 햇볕이 좋은 캘리포니아와 그 절반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전력생산의 단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분산전원을 한답시고 햇볕도 잘 들지 않는 도심에, 아파트 벽면에, 태양광과 수직도 맞지 않게 설치한 태양광 패널이라면 결코 경제적인 전력생산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재생에너지를 모독하는 행위이다.

원자력발전단가도 마찬가지이다. 원전건설을 지속해서 공급망이 탄탄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원자력발전소를 절반 가격에 건설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원전을 UAE에 수출할 당시에 제공했던 가격이다. 그렇다고 국내업체가 손해를 감수했던 것도 아니다.

영국에서 그리드 패리티(신재생에너지와 화석연료 간의 발전단가가 같아지는 시기)에 도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원자력의 선도국가였지만 원전건설을 지속하지 않아서 공급망이 붕괴된 영국은 우리나라보다 두배, 세배의 가격으로 원전을 건설해야 한다. 특히 원자력발전은 연료값의 비중이 10% 미만이기 때문에 건설비가 높으면 발전단가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영국에서는 풍력발전이 경쟁력이 있다. 풍질(風質)이 우리나라의 2배 정도로 좋은 것이다. 그러니 풍력발전이 원자력발전과 비슷한 수준이 되어 그리드 패리티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영국의 사례를 들면서 마치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것 같은 인상을 준다면 예외를 사례로 입력한 경우가 된다.

유럽 국가의 경우에는 대부분 재생에너지가 20% 이상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유럽 국가의 재생에너지는 대부분이 수력이다. 수력은 알다시피 물을 가둘 수 있는 지형적 여건이 허락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 나라나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는 태양광과 풍력으로만 20%를 넘기겠다는 수작을 하는 셈이다. 예외도 사실은 사실이니 팩트체크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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