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포토

전지성 기자

jjs@ekn.kr

전지성 기자기자 기사모음




에너지산업도 중국 눈치보기?…발전·원전·태양광 '잠식' 우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03.03 15:27

한전, 지난해 1조3000억원 적자 논란 속 중국 업체 사업 참여 추진

해외에서 중국 업체들과 원전 수주 경쟁...국내에선 탈원전, 중국 해안가 원전엔 '무방비'

태양광 확대 정책의 이면, 중국 태양광 업체 ‘범람’ 국내 업체 ‘고사’

일본 무역분쟁 때는 "국내 산업 육성" 외친 정부, 중국엔 코로나19·미세먼지 당해도 무대응

▲지난해 3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장젠화 국가에너지국장과 면담하고 에너지분야 협력을 논의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는 가운데 국내 에너지업계마저 중국에 잠식될 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한국전력공사가 역대 최악 수준의 적자를 기록한 배경에도, 최근 불거진 중국업체의 한전 공사 입찰 논란은 물론 국내 태양광 산업 생태계 붕괴, 탈원전, 미세먼지 대책, 한-중 전력망 연계사업 추진 등 국가에너지정책이 중국과 깊게 연계돼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중국의 눈치를 본다는 지적이 많은 가운데 에너지정책도 비슷한 맥락으로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 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중국과 에너지협력 강조, 미세먼지 문제엔 '침묵' 

실제 정부는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에는 제대로 대응을 촉구하지도 못하고 있는데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정작 중국산 태양광패널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지만 특별한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최근 CNN, BBC 등 외신은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공장 가동 중단(Shutdown)이 중국의 대기 질을 개선했다는 분석을 지난 1일 일제히 보도했다. 나사의 대기질 연구원인 페이 리우(Fai Liu)는 위성 사진 분석 결과를 홈페이지에 밝히며 "특정 사건으로 이렇게 넓은 지역에 대해 이산화질소가 극적으로 감소한 것은 처음"이라며 "올해 감소율이 지난 몇 년 동안 감소했던 것보다 더 많이 오래 지속됐다"고 했다. 

서해에서 중국 유입 미세먼지의 직격탄을 맞는 인천의 2월 미세먼지도 덩달아 개선됐다. 환경부 에어코리아를 보면 올해 2월 초미세먼지(PM 2.5) ‘나쁨’을 보인 날은(36㎍ 이상) 6일이다. 지난해 2월 한 달간 10일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특히 ‘매우 좋음’을 보인 날은 지난해 2월엔 단 하루도 없었지만, 올해 2월은 11일이나 기록했다. 중국의 산업 활동이 우리나라 대기 질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한 방송에서 ‘국내 대기질 개선이 중국 춘제와 코로나19 여파’라는 여론에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 에너지정책에서도 '중국 우선주의'...한전 사업에 중국업체 입찰 검토

정부는 에너지정책에 있어 중국을 향한 구애를 멈추지 않고 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해 3월 장마오(張茅)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장과 장젠화(章建華) 국가에너지국장을 만나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에 필요한 한중 전력망 연계, 천연가스, 재생에너지, 에너지 신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잠재력을 확인하고 구체적 성과사업을 진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성 장관은 "두 나라가 석탄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에너지 전환을 추진중에 있는데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한·중의 국제공조가 더욱 필요하다"며 "그동안 두 나라 사이 발전기업 간 개별적으로 진행해 왔던 인력·정보·기술교류를 ‘한-중 발전기술 공동포럼’을 통해 체계화·정례화 시켜 나가자"고 제안했다. 또 "우리나라와 중국은 동북아 슈퍼그리드와 중국 일대일로는 동북아 지역내 전력망 연계를 통해 에너지 공동체 창출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인식을 같이한다"며 "두 나라 에너지 협력의 상징적 프로젝트인 한-중 전력망 연계 사업의 성공을 위해 한국전력공사과 중국 국가전망 간 공동개발협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국장은 "2017년 정상회담 이후로 양국의 에너지 협력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실질적 성과 도출을 위해 정부를 비롯한 기업·연구기관 등 민간영역까지 교류가 확대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국전력.


정확히 1년 후 한전은 완도∼제주 구간 제3 초고압직류(#3HVDC) 해저케이블 건설사업 입찰 공고에 중국 업체의 참여를 검토했다. 이 사업은 제주지역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전남 남부지역 계통보강을 위한 사업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전 사업에 중국 기업의 참여를 허락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일단 중국은 GPA에 가입돼 있지 않고 국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저가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가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공기업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가입국이 아니다.

시민단체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원자력국민연대를 비롯한 7개 시민단체는 "전력 안보를 위협하는 정부와 한전의 ‘꼼수’ 국제 입찰 시도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중국이 GPA에 가입돼 있지 않아 우리 기업들은 중국에 전력 케이블을 아예 수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예외적으로’ 중국 업체의 입찰을 허용하려는 것"이라며 "‘예외’가 반복되면 ‘일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태양광 확대 정책의 이면, 중국 태양광 업체 '범람' 국내 업체 '고사'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에너지전환, 태양광 발전 확대에서도 중국 우선주의가 감지된다. 지난해 4월 열린 ‘대구 그린에너지 엑스포’에는 90개 해외 출품기업 중 68개가 중국 기업이었다. 이는 지난해 행사에 참여한 해외기업 중 75%, 전체 출품기업 중에선 23%를 차지하는 높은 수치다. 실제 전시회장에는 한국에서 하는 행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중국 업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올해도 이 행사에 중국 업체가 대규모로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7월로 연기됐다.

▲태양광발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세계 10대 태양광 기업은 진코솔라(중국), 캐나디안솔라(중국), 트리나솔라(중국), 선파워(미국), 한화큐셀(한국), JA솔라(중국), 룽지솔라(중국), 리센에너지(중국), GCL(중국), 테일선(중국) 순이다. 태양광 셀·모듈 출하량을 기준으로 한 건데, 8곳이 중국 기업이다.

이들 중국 태양광 기업이 세계 태양광 셀·패널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도 매우 높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세계 태양광 패널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71%에 달한다. 이는 2위인 한국(7%)과 10배 이상 차이 나는 수치다. 사실상 중국 업체들이 세계 태양광 시장을 점령한 셈이다.

국내에서도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가 몇 년간 지속되면서 태양광 발전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다. 그동안 OCI(연간 7만9000t)와 한화솔루션(1만5000t)이 태양광 발전의 원재료인 폴리실리콘을 생산했다. OCI는 국내 폴리실리콘 생산 중단을 선언했고 한화솔루션(구.한화큐셀)도 이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한국실리콘은 2018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폴리실리콘 등 기초소재와 완성품을 연결하는 국내 유일 잉곳·웨이퍼 생산기업이던 웅진에너지는 지난해 5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지만 아직까지 인수 희망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태양광 산업 생태계는 원료인 ‘폴리실리콘’을 가공한 ‘잉곳’과 ‘웨이퍼’로 태양전지인 ‘셀’을 만들고, 이를 모아놓은 패널인 ‘모듈’, 발전소 개발의 6개 공정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 공정 중 절반인 3개 공정의 제품 생산이 중국에 밀려 사라진 것이다.


◇ 해외에서 중국 업체들과 원전 수주 경쟁...국내에선 탈원전, 중국 해안가 원전엔 '무방비'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우리나라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원전 확대 정책에 힘입어 지난해에만 원전 발전량이 18%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원전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는 사이 중국은 원자력을 ‘발전의 근육과 뼈’라고 선언하며 원전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국가에너지관리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원자력 발전량은 전년보다 18.1% 증가한 348.13 TWh를 기록했다. 중국은 해외로도 부가가치가 높은 원전 수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신흥국에서 2030년까지 약 200기의 원전 건설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원전 확대 정책에 힘입어 해외 시장에서도 중국의 사업 수주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한국이 건설한 UAE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우리나라도 체코나 사우디, 폴란드에서 수주를 노리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프랑스 등은 막대한 자본과 정치력을 앞세우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부분에서는 밀리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앞세워 원전 건설과 기자재 공급부터 운영·서비스, 해체 등까지 전주기 수출전략을 수립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추가 수주가 없어 원전 주기기 제작업체인 두산중공업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중국 정부는 현재 47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영 중인데 이중 한국 서해안과 직접적으로 마주보고 있는 중국 동북부 해안가 원전이 12기로, 전체 중국 원전의 25.5%에 이른다. 국내에서 원전의 위험성을 이유로 탈원전을 추진중이지만 중국 동북부 해안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미세먼지와 황사처럼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게된다. 정부는 이에 대해서는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 일본 무역분쟁 때는 '지지 않겠다'...중국엔 왜?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지만 경제의존도를 감안해 중국인 입국을 차단 않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 위협을 감수하겠다는 논리에 일반 국민들은 물론 산업계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에너지시장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전력공급을 책임지는 한전의 지속적인 대규모 적자, 원전 기업 두산중공업의 붕괴, 태양광 생태계 붕괴 등에 중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는 업계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반도체·소재·부품 수출규제로 싸울 때 문 대통령은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국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왜 중국에는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신문=전지성 기자]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