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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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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산불] 한전, 적자로 개폐기 등 설비 관리 소홀?...보상 책임질수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4.07 15:31
-경찰, 최초 발화 지점으로 전신주의 개폐기 리드선 추정

-한전 적자로 인한 교체 지연 등 관리 부실이 원인이라는 지적

-한전 "자체 결함 아닌 외부요인"

-美 전력회사 PG&E, 2017년 캘리포니아주 역사상 최악의 대형 산불에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파산신청

-전문가 "산불확산, 강풍·건조함 등 자연적 요인이 커 한전 책임으로 단정 짓긴 어려워"

▲고성 산불의 발화지로 추정되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전신주 중성선에서 발생한 아크(불꽃) 흔적. (사진=연합)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강원산불’ 의 책임 논란의 중심에 섰다. 또 막대한 피해보상에 대한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조사단에 따르면 7일 현재 최초 발화지점으로 한전이 관리하는 전신주의 개폐기가 지목되고 있다. 경찰의 합동 감식에서는 산불의 최초 발화 지점으로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주유소 맞은편 전신주의 개폐기가 지목됐다. 최초의 발화 원인으로 지목된 개폐기는 한전에서 관리하고 있고 한전이 최근 경영수지 악화 등으로 개폐기 교체시기를 연장해 ‘관리부실로 인한 인재’로 결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비상경영’으로 설비 관리·교체 예산 감소 지적


일각에서는 전력설비를 관리하는 주체인 한전이 적자로 인한 ‘비상경영’으로 해당 물품 교체와 관리를 부실하게 해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있다. 한전은 지난해부터 탈원전 정책 추진에 따른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변압기 교체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매비와 유지보수 관리비를 줄이고 사용연한을 늘린 것이다. 사고가 난 개폐기와 리드선은 13년 전에 설치됐다. 전력기자재 업체 관계자는 "원래 12년마다 교체하던걸 기한연장을 15년 이상으로 늘려 최근 송변전 기자재들 구매량이 줄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전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의 신규 공사와 자재발주 물량은 적게는 5%에서 많게는 20% 이상 물량이 줄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한전의 고효율주상변압기는 1월에 1만 2030대, 2월에 9861대, 3월에 4334대가 발주됐다. 지난 3일에 나온 4월 1차 물량은 216대에 불과하다. 배전 유지보수 예산은 변압기, 개폐기, 스마트계량기(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 , 전선 등 배전설비의 교체·보강 등 유지보수를 위한 비용을 말한다. 예산 삭감으로 인한 영향은 당연히 협력업체에도 이어졌다. 한전의 배전단가 협력업체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적게는 7명에서 많게는 14명 정도의 배전전공기술자를 보유해야 한다. 이들은 단가공사에 등록돼 있기 때문에 다른 공사에 투입할 수 없다. 일거리가 없는 상황에서도 매달 총 1억원 내외의 인건비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력용 변압기를 제조하는 일부 업체들은 줄어든 물량으로 일부 파산하기도 했다. 특히 변압기는 일정 기간 지나면 교체해야 하는 구매주기가 있는 제품이다. 하지만 발주처인 한전의 관련 예산이 줄고 제품 교체계획을 변경해 협력업체들은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 '관리 소홀' 인정되면 배상 책임 물을 수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서 한 주민이 산불에 타버린 집 앞을 걷고 있다. (사진=연합)


변압기와 개폐기 관리 소홀이 이번 산불의 원인으로 최종 결론이 날 경우 한전은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한전은 자체적인 결함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개폐기는 기술적으로 폭발할 수 없다"며 "전력차단장치인 개폐기와 고압선을 연결하는 전선(리드선)에 강풍을 타고 이물질이 날아와 부딪히면서 순간적으로 다량의 이상전류가 흘러 스파크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상태의 개폐기라면 이물질에 의해 스파크가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관리부실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선 피복이나 노후된 리드선을 잘 관리하고 제때 교체를 했다면, 또한 리드선에 보호장치를 씌워줬다고 하면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전 측은 "해당 지역 안전점검은 최근 점검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며 "실제 사업소에서는 고장예방이 가장 큰 화두라 실제 점검은 점검주기보다 더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실이 인정되면 손배 배상금은 막대하다. 미국에선 산불 배상책임으로 대형 전력공급업체가 파산보호신청을 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캘리포니아주 역사상 최악의 대형 산불인 일명 ‘캠프파이어’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목된 퍼시픽가스앤드일렉트릭(PG&E)은 지난 1월 말 천문학적인 배상액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미국 수사당국은 PG&E의 고압전선이 강풍으로 끊어져 지난 2017년 최소 17건의 산불 발화 원인이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전문가들은 넓은 지역에 걸쳐 큰 손해가 발생한데다 통상적인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인 만큼 한전의 책임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박진표 변호사는 "손해배상책임의 법리상, 우선 설비의 결함이나 관리상 잘못이 있었는지 여부가 명확히 입증돼야 한다"며 "설비에서 불이 난 것이 맞더라도 불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이유는 날씨가 매우 건조한 상황에서 강풍이 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화재원인과 손해발생간 인과관계 또한 확실치 않은 것 같다"며 "법적으로 볼 때 현상황에서 한전의 손해배상책임을 단정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사고 개폐기를 수거해 정밀감식 중이며 이르면 2주 뒤쯤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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