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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한미상호방위조약 격상을 생각함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6.10.17 20:01

안성규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안성규 연구위원

[EE칼럼] 한미상호방위조약 격상을 생각함

지난달 나카사키 원폭 피해 박물관을 들렀는데 설명을 읽다 한 문장에 먹먹해졌다. 그날 미군은 원래 나카사키 아닌 인근의 고쿠라를 폭격하기로 했는데 소이탄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서 방향을 바꿨다는 것이다. 어이없는 ‘우연’ 때문에 조선인 2만명을 포함해 8만명 정도가 몰살했다. 그런데 수십 년 지나 나카사키는 다시 북한 핵 때문에 사지로 끌려 들어갈 판이다. 가까이 있는 사세보 미 군항 때문이다.

사세보 항은 작지만 전략적 의미는 크다. 여기에 미 7함대의 주력과 항공모함이 기착한다. 미 군항 길 건너엔 일본해상자위대 사세보지방총감부가 있다는 것은 전략적 중요성의 증표다. 전쟁이 나면 주일 미군을 공격할 게 뻔한 북한의 전략, 사세보와 가까운 거리를 염두에 둔다면 나카사키가 다시 핵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무슨 운명의 장난으로 나카사키 옆에 미 군항이 생기게 된 걸까.

미일 안보조약이 원인이다. 미국은 이 조약으로 일본을 아시아 전진기지로 만들었다. 미군 기지는 사세보를 포함해 20여개 있다. 한국 같으면 이를 수모로 여기겠지만 일본은 미국과의 통합을 안보 보장의 축으로 삼고 있다. 북한의 위협, 중국의 팽창 앞에서 미국을 향한 구애만 있을 뿐이다. 2015년 방위협력지침도 그런 의지의 결정판이다. 일본은 왜 이렇게 미국과 붙으려 할까.

미국이 나토(1949), 필리핀(1950), 한국(1953), 대만(1954), 일본(1960)과 체결한 상호방위 관련 조약을 통해 살펴보자. 이런 조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한 체결국이 공격받을 때 다른 쪽이 어떻게 할지에 대한 규정이다. 필리핀(4조)이나 한국(3조) 대만(5조) 일본(5조) 할 것 없이 ‘헌법적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고 돼 있다. 반면 나토 조약 5조는 한 체결국에 대한 무력행사를 전체 체결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무력 지원을 포함해 상호 원조를 한다고 규정한다.

‘헌법적 절차에 따라’ 개입하는 것과 ‘공격으로 간주해서 개입하고 지원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하다. 혹자는 표현보다 미국의 의지가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용어 차이를 둔 데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나는 미국과 공유하는 가치의 차이가 반영됐다고 본다. 전문을 보면 확실하다. 나토 조약 전문에는 미국과 유럽이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며 이를 수호한다는 취지가 써 있지만 아시아의 경우는 태평양 지역의 방어가 목적이다.

공유 대상이 가치가 아닌 이익이며, ‘사실상 즉각’이 아니라 ‘헌법적 절차’에 따라 개입하는 것의 차이가 시사하는 바는 이후 전개된 사태에서 짐작할 수 있다. 나토 회원국은 늘어나는 가운데 필리핀은 미국을 찼고, 대만은 미국이 찼다. 이제 ‘헌법적 절차’에 따르는 나라로 한국과 일본이 남았다. 많은 이가 한미동맹은 굳건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약만으로 보면 위기 시 미국의 지원 강도가 말만큼 굳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걱정 때문에 한국에선 미국에 확장 억제를 강화하고 확장 억제 자산을 한국에 더 갖다 놓으라고 요구한다. B-1B와 F-22가 오고, 핵잠수함이 오는 게 그래서다. 그러나 잠깐 왔다 멀찌감치 오키나와나 괌으로 물러나도 어쩔 수 없다. 북핵 위협을 헤쳐 나가는데 한미 동맹 강화는 필수다. 처지나 조약의 조건이 비슷한 일본이 죽자 사자 미국에 매달리는 것은 그래서다.

우리가 일본처럼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나토 만큼 상호의무를 강화하는 형태의 동맹이 돼야 한다. 나토와 일본 모두 받아들이는 미국 MD망은 고사하고 미군 보호를 위해 들여오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조차 그렇게 반대하면서 B1-B포격기나 항공모함은 좋다는 식의 태도를 미국이 이해할까? 한국을 팽개치면 전세계 미국의 동맹구조에 악영향이 미칠 것이란 으름장이 통할까? 답은 어렵다. 쉽게 나올 게 아니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미국에서 하나라도 더 얻어내겠다고 주판알만 튕기면 북핵 위협에 공동 대응도 안 되고 말만의 동맹이 될 뿐이라는 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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