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더 뉴 그랜저'. 사진=박지성 기자
국내 고급 세단의 대명사 '그랜저'가 인공지능(AI) 두뇌를 달고 한층 똑똑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현대자동차의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전략이 본격 반영된 '더 뉴 그랜저'는 세단 본연의 정숙성과 승차감, 고급감을 완성도 높게 유지하면서도 AI 기반 기능을 더해 이동 경험 자체를 새롭게 바꿔냈다.
지난 2022년 7세대 풀체인지(완전변경) 이후 약 4년 만에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로 돌아온 더 뉴 그랜저는 디자인 변화 폭 자체는 크지 않지만 디테일을 다듬고 디지털 경험을 강화하며 상품성을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다.
최근 출시된 더 뉴 그랜저를 직접 경험하며 서울 도심과 고속도로 구간을 거쳐 춘천의 한 카페까지 주행해봤다.
더 뉴 그랜저의 첫인상은 기존 모델의 웅장한 이미지와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간 모습이었다. 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서 세련미가 한층 강조됐다.
전면부는 15㎜ 길어진 프론트 오버행을 바탕으로 '샤크 노즈' 형상을 강조했다. 베젤리스 타입으로 얇고 길어진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와 슬림한 헤드램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안정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인상을 구현했다.
측면부는 방향지시등이 적용된 펜더 가니쉬를 통해 전면부터 후면까지 이어지는 심리스한 라이팅 이미지를 완성했다. 여기에 현대차 세단 최초로 돌출형 샤크핀 안테나 대신 히든 타입 안테나를 적용해 보다 깔끔하고 정제된 디자인을 구현했다.
▲현대자동차 '더 뉴 그랜저' 전·후·측면. 사진=박지성 기자
실내는 최근 출시되는 수입 전기차와 유사한 분위기로 변화했다. 물리 버튼을 최소화하고 디지털 중심 레이아웃을 강화하면서도 그랜저 특유의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감성은 유지했다.
특히 더 뉴 그랜저에는 현대차 최초로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플랫폼 '플레오스 커넥트'가 적용됐다. 차량 내부 경험 전반이 스마트폰처럼 진화한 느낌이다.
실내 중심에는 17인치 대형 중앙 디스플레이가 자리한다. 고해상도 화면은 시원한 개방감을 제공했고 내비게이션과 미디어, 차량 설정, 주행 정보 및 상태 등 다양한 기능을 직관적으로 조작·확인할 수 있었다. 화면 분할 기능을 활용하면 주행 중에도 여러 정보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어 편의성이 높았다.
또 기존 대형 계기판 대신 9.9인치 슬림 정보창(클러스터)이 적용된 점도 눈길을 끌었다. 속도와 기어, 미디어 정보 등 핵심 주행 정보를 중심으로 간결하게 구성해 운전 중 시선 분산을 최소화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생성형 AI 기반 음성 비서 '글레오 AI(Gleo AI)'였다. 더 뉴 그랜저에 탑재된 글레오 AI는 대형언어모델(LLM) 기반의 차세대 AI 에이전트다. 단순 음성 명령 수행 수준을 넘어 실제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자연스러운 반응이 특징이다.
실제로 “글레오, 오늘 프로야구 경기 분석해줘"라고 말하자 각 팀 전력과 선수 특징 등을 정리해 설명해줬고 이동 중 다양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어 장거리 주행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느낌이었다.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LLM 설계 단계에서 민감한 질문에 대한 가드레일을 적용해 적절히 회피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음성 호출 명령어가 '글레오'로 고정돼 있다는 점이었다. 사용자에 따라 발음이 다소 낯설거나 익숙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는 만큼 개인별 애칭이나 호출어를 설정할 수 있었다면 활용성이 더욱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현재는 글레오라는 AI 음성인식 시스템 자체를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가져가고 있기 때문에 해당 명칭을 유지할 예정"이라며 “타사 사례는 있지만 현재까지 적용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기술 자체는 지속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더 뉴 그랜저'에 탑재된 17인치 대형 중앙 디스플레이. 사진=박지성 기자
▲현대자동차 '더 뉴 그랜저' 1열·2열. 사진=박지성 기자
현대차는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기반 운영체제(AAOS)를 바탕으로 플레오스 커넥트를 개발해 확장성도 확보했다. 앞으로 플레오스 앱마켓을 통해 영상·음악 스트리밍이나 게임 등 다양한 차량용 서드파티 앱을 스마트폰처럼 다운로드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실내에는 '스마트 비전 루프'가 적용됐다. 기계식 블라인드 대신 고분자 분산형 액정(PDLC) 필름을 적용해 루프 투명도를 6개 영역으로 나눠 조절할 수 있어 개방감과 프라이버시를 동시에 확보했다.
주행 성능에서는 세단다운 안정감과 부드러운 승차감이 돋보였다. 차체가 길어진 영향에도 고속 주행에서 흔들림이 크지 않았고, 노면 충격도 부드럽게 걸러냈다. 장거리 이동에서도 피로감이 적은 전형적인 플래그십 세단의 성격을 보여줬다.
이날 시승한 모델은 2.5 가솔린 캘리그래피 트림이었다. 가속 초반에는 가솔린 엔진 특유의 소음이 다소 유입됐지만 적정 속도에 도달한 이후에는 실내가 상당히 조용했다. 풍절음과 노면 소음 억제 수준도 만족스러웠다.
주행 성능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차체가 부드럽게 치고 나가는 감각이 인상적이었고 고속 구간에서도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 없이 안정적으로 속도를 끌어올렸다. 부드러운 승차감 속에서도 충분한 동력 성능을 확보하며 대형 세단다운 여유로운 주행 감각을 완성했다.
연비도 준수했다. 약 67.8㎞를 주행한 뒤 계기판 기준 연비는 약 14㎞/L를 기록했다. 이후 약 40분간 공회전을 유지했음에도 평균 연비는 12.4㎞/L 수준을 유지했다.
▲서울~춘천 구간 약 67.8㎞를 주행한 뒤 기록한 연비. 사진=박지성 기자
더 뉴 그랜저는 단순한 부분변경 모델을 넘어 현대차의 SDV 전략과 AI 기술 방향성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모델에 가까웠다. 전통적인 세단의 품격 위에 AI 기반 디지털 경험을 더하며 '국민 세단' 그 이상의 존재감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더 뉴 그랜저는 △가솔린 2.5 △가솔린 3.5 △LPG 3.5 △가솔린 1.6 터보 하이브리드 등 총 4가지 엔진 라인업으로 운영된다. 다만 하이브리드 모델은 친환경차 인증 절차로 인해 오는 7월 초 양산이 시작되며 고객 인도는 7월 중순 이후 이뤄질 전망이다.
가격은 △가솔린 2.5 4185만원 △가솔린 3.5 4429만원 △하이브리드 4864만원 △LPG 4331만원부터 시작된다.
AI 기술과 고급감을 동시에 갖춘 더 뉴 그랜저는 세단 시장에서 여전히 강력한 존재감을 이어가며 소비자들의 유력한 선택지로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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