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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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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기후신호등] 글로벌 111개 기업의 기후 피해액 28조달러…기업 책임 묻는 시대 오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9.28 06:07

‘종단적 인과관계 분석’으로 기업 책임 따져
CO2배출량·재난기여도·피해액 연결해 산정
100년 전 배출한 온실가스까지 추적하기도
배출량 많은 국내기업도 책임 자유롭지 못해
국제사법재판소 판결도 배상 가능성 높여

굴뚝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와 함께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공장 굴뚝에서 내뿜는 온실가스는 사방으로 흩어지지만, 기업의 책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개별 기업이 수십 년 전에 배출한 온실가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과거부터 배출해온 온실가스가 기후 재난을 악화시키고 사회·경제적 피해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규명되면서, 개별 기업이 그 피해에 책임을 져야 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등장한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기업별 배출이 특정 기후 재난과 경제적 손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량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법적·재정적 책임 논의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기업 배출, 어떻게 기후 재난으로 연결되나


새로운 과학적 접근은 '종단적 인과관계 분석(end-to-end attribution)'이라 불린다. 이 방식은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에서 시작해 기후 변화와 기후 재난, 그리고 경제적 피해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연결한다.




첫째, 각 기업의 배출량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계산한다. 지난 4월 미국 다트머스대학 연구팀이 '네이처(Natur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방법이 소개됐다.


논문에서는 전 세계 111개 대기업을 선정해 100년 이상 축적된 배출량을 합산한 뒤, 기후모델을 통해 1850~2020년 사이 기후 요소에 미친 영향을 시뮬레이션했다. '만약 그 배출이 없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but for)'라는 기준으로 분석을 진행했다.


둘째, 이렇게 추산된 온난화 기여도를 폭염과 같은 특정 재난에 연결했다. '감소된 복잡성 기후 모델(RCM)'을 활용해 기업별 배출이 1991~2020년 폭염 발생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고, 특히 연중 가장 더운 5일(Tx5d)의 기온 상승에 대한 기업별 기여도를 정밀하게 계산했다.


셋째, 재난의 사회·경제적 피해를 수치로 계산했다. 계량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폭염이 초래한 소득 손실, 농업 수확량 감소, 사망률 증가, 국내총생산(GDP) 둔화 등을 추적했다.


유럽 폭염

▲2003년 여름 유럽에 닥친 극심한 폭염 상황. 2001년 7월 유럽 기온과 대비한 것이다. (자료= 미항공우주국(NASA))

다트머스대학 연구팀의 연구는 이런 과정을 거쳐 111개 화석연료 기업의 배출이 1991~2020년 전 세계 폭염과 국내총생산(GDP) 손실에 끼친 영향을 정량화했다.


연구팀은 “1850~2020년 사이 총 CO2 및 CH4 배출량에 기여도가 1%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1991~2020년 사이 극심한 더위로 인한 전 세계 경제 손실이 8340억달러(1169조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1990~2020년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의 1%당 폭염으로 인한 세계 GDP 손실액은 약 5000억달러(약 701조원)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온실가스 1톤당 약 29.07달러(약 4만2000원)의 손실 책임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셰브론의 온실가스 배출이 1998년 인도 폭염에서만 19억달러 손실을 초래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 결과 111개 기업 배출로 인한 피해액은 28조달러(약 3경8864조원)에 달했고, 상위 5개 기업이 발생한 전체 피해의 35%를 차지했다. 상위 5대 배출 기업으로 인해 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서 연간 GDP 감소가 1%를 넘어선 반면, 5개 기업의 본사가 있는 미국과 유럽은 극심한 더위로 인한 피해가 크지 않았다.


5개  기업

▲(자료=Nature, 2025)

한편, 이 방법론의 등장은 기업의 기후 책임을 추상적으로 비난하는 데 그쳤던 수준에서 법정에서 다툴 수 있는 실증적 증거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네이처 논문이 드러낸 '기업 책임의 무게'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 연구팀이 이달 초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연구팀은 180개의 '탄소 주요 기업(carbon majors)'을 대상으로 분석에 나섰다. 이 '탄소 주요 기업'에는 대형 화석 연료 및 시멘트 생산 기업뿐만 아니라 사우디 아람코, 가즈프롬과 같은 국영 기업, 중국의 석탄 생산 등과 같이 국가 단위의 생산 활동도 포함됐다.


온실가스

▲(자료=Nature, 2025)

연구진은 2000~2023년 발생한 213건 폭염을 분석한 결과, 약 25%는 '인간 배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사건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요 에너지 기업들의 배출은 53건의 폭염 발생 가능성을 1만 배 이상 높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이 연구는 '특정 기업의 배출이 특정 재난을 어떻게 심화시켰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폭염 가능성

▲(자료=Nature , 2025)

4월 논문이 개별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이 초래한 구체적인 경제적 피해액을 산정하는 데 집중했다면, 9월에 발표된 이 논문은 개별 기업의 배출량이 특정 폭염의 발생 가능성과 강도에 미친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정량화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피해 액수보다는 폭염 발생 가능성을 얼마나 증가시켰느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취리히연방공대 연구팀은 향후 호수 산성화, 해수면 상승, 산불, 가뭄 등 다른 물리적 위험에 대해서도 유사한 프레임워크를 적용해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폭염만 기준으로도 엄청난 피해를 낸 것으로 추산됐는데, 홍수·가뭄·산불 등까지 포함하면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로 초래한 피해 규모는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1980년대부터 이미 온난화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무시하거나 정보를 은폐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 기업도 계속 배출하다간 큰 코 다친다


한국 역시 이 논의에서 비켜갈 수 없다. 1990~2022년 한국의 누적 배출량은 약 203억톤으로 세계 12위를 차지했다. 기후솔루션은 4월 네이처 논문의 방법론을 한국에 적용했는데, 한국이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발생한 폭염 피해액은 모두 5800억달러(약 78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기후솔루션은 국내 상위 10대 온실가스 배출 기업에 초점을 맞췄다. 2011~2023년 국내 10대 기업은 41억톤의 온실가스를 배출, 전체 배출량의 43.5%를 차지했다. 누적 배출량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업별 피해 유발 규모를 산출한 결과, 이들 기업로 인해 발생한 폭염 피해액은 1196억달러(약 161조원)로 추산됐다.


기후솔루션이 꼽은 국내 10대 주요 배출기업은 △주식회사 포스코 △한국남동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현대제철 주식회사 △삼성전자 주식회사 △쌍용C&E △포스코인터내셔널이다. 기업별로는 포스코가 281억달러(38조원), 한국전력공사 산하 5개 발전사가 합계로 729억달러(98조원)의 피해를 유발한 것으로 계산됐다.


더 큰 문제는 미래 전망이다. 현행 정책을 유지하는 시나리오(CurPol)대로면 2025~2050년 배출량은 178억톤, 피해액 5189억달러(7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반면, 탄소중립(Net-zero) 시나리오를 따른다면 108억톤의 배출량을 줄일 수 있고, 피해액 가운데 3142억달러(424조원)을 줄일 수 있다.


기후솔루션 임소연 연구원은 “이번 분석은 단순히 경각심을 주는 것을 넘어, 정책과 소송, 투자 판단의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서 “이제는 배출량뿐 아니라 배출로 인해 발생한 피해도 기업의 책임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 기업 책임 논의에 불을 붙이다


국제법적 차원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2025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기후변화 대응을 모든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면서, “국가는 자국 기업과 개인의 배출을 감독할 주의 의무가 있다"는 권고적 의견을 내놨다.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 사법기구가 기후변화에 대해 처음 내놓은 공식 견해라는 점에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 권고는 각국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업 규제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국가가 감독 의무를 게을리하면 국제적 책임의 1차 피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과 투자자들은 이를 법적 리스크로 간주해, 감축 로드맵이 부실한 기업에는 자본 비용을 높이고 계약에서 명확한 감축 이행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소송 사례도 등장했다. 독일 RWE를 상대로 한 페루 농부의 배상 청구는 기각됐지만, 법원은 기업 배출이 피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네덜란드 항소법원은 쉘(Shell)에 대해 구체적 감축 명령은 취소했으나, 대기업이 기후위기를 억제할 '사회적 주의 의무'를 진다고 판결했다. 기업 책임이 법적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인도

▲인도 수도 뉴델리를 지나는 야무나강 고가도로 아래서 2024년 5월 31일(현지시간) 노숙자들이 폭염을 피해 쉬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


기후 재해가 누적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기후 관련 소송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이후 전 세계에서는 매년 100건 이상의 기후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오리건주의 한 카운티는 2021년 태평양 쪽 북서부 지역의 폭염과 그로 인한 경제 손실과 건강 비용을 증폭시켰다는 이유로 여러 화석 연료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뉴욕시와 로드아일랜드주도 유사한 소송을 제기했다.


지금까지 주요 탄소 배출 기업을 상대로 한 기후 책임 소송에서 승소한 사례는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의 연구가 계속되고, 기후 재난에 대한 책임 소재를 따지는 연구가 점점 더 정교하고 치밀해진다면, 온실가스를 배출한 기업도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보상금을 내놓아야 할 때가 언젠가는 올 수도 있다.


새로 개발된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기업 배출의 흔적을 정밀하게 추적하고, 피해를 수치로 환산해 '오염자 부담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는 기후 책임 논의에 새로운 법적 동력을 부여했다. 이제 기후 대응은 단순한 환경적 의무가 아닌 기업 생존의 조건이다. 배출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머지않아 그것이 법정에서 기업 책임을 묻는 증거로 쓰일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는 그런 날을 대비해서 기업은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들 역시 예외가 아니며, 감축 정책의 성패에 따라 수백조 원 규모의 손실을 피하거나 떠안을 갈림길에 서 있다.


기후솔루션 조정호 연구원은 “특정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이 폭염 등 기후 피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이러한 연구는 국가 차원을 넘어 기업에게도 배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처음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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