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LA에 있는 가전제품 매장 '베스트바이' 세탁기 코너에 월풀, LG전자 등 다양한 브랜드 제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여헌우 기자.
한국과 중국이 글로벌 세탁기 시장에서 격돌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방법으로 '프리미엄화'를 공통적으로 꼽았다.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신흥 시장에서 중국 공세를 버티기 쉽지 않으니 선진국에서 '기술 장벽'을 쌓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中 신흥시장 중심 공급망 확장에 맞서 친환경·AI 스마트로 차별화 필요"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 하이얼, 하이센스, TCL 등은 저가 이미지에서 벗어나 품질 개선과 글로벌 브랜드 전략을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특히 동남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에서 삼성·LG전자를 위협할 정도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데 글로벌 공급망과 현지화 전략을 강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의 공세에 단순 대응하기보다는 프리미엄시장 강화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을 해야 할 것"이라며 “삼성·LG가 앞서고 있는 스마트가전, 인공지능(AI) 기술 기반 제품 등 기술·서비스를 더욱 차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시장별로 소비자 트렌드가 다르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특정 국가는) 소비자 트렌드가 에너지 절감, 친환경, 사물인터넷(IoT) 연동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ESG경영과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 등을 통한 차별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중국기업들의 '규모의 경제'와 가격 경쟁력에 맞서는 한국 기업의 해법은 △혁신 △브랜드 가치 △서비스 차별화"라며 “정부도 기술 표준화, 무역협정, 연구개발 세제 지원 등을 통해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봇청소기·전기차의 '中 가성비' 차단하려면 K-가전 고부가·브랜드 장벽 높여야"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로봇청소기 분야에서 세탁기시장의 미래를 엿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 소장은 “우리가 그냥 청소기 만들고 팔 때 중국은 데이터를 다 모아 이를 조합하면서 AI 분야에서 강점을 나타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발전시킨 로봇청소기 기술력이 이제는 한국산 가전도 뛰어넘는 수준이 됐다"며 “심지어 거대한 내수시장까지 갖춰 중국 내에서 테스트까지 거친 가전이 세계로 나오니 (로봇청소기 시장을) 석권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LG전자가 프로그래밍된 AI를 반도체 칩에 넣어 가전을 만들 때 중국 기업들은 개인정보나 비밀보호 등에 대한 허들(장애물) 없이 스마트 제품을 만들고 있다"며 “로봇청소기도 그랬고, 전기차도 그랬듯이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가성비'가 좋으면 중국제품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아직 우리 기업들이 '브랜드 가치' 측면에서 우월하다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전 소장은 말했다. “100평짜리 집을 사는데 싸구려 가전을 들이고 싶지 않은 것은 대부분 나라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제조업 기반 사업 중심지가 일본→한국→중국으로 넘어가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기 힘든 만큼 우리는 더 부가가치가 높고, 더 진입장벽이 높은 첨단산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 경쟁 이기기 힘들다…프리미엄 시장 확장만이 살 길"
김현철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원장은 가전뿐 아니라 경제 전반 큰 맥락으로 중국과 경쟁 구도를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현대자동차가 중국에서 잘 나가다 주춤한 데 여러 이유가 있지만 베이징에서 택시를 공급하며 몸집을 키운 것을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며 “중국인들 소득 수준이 올라왔을 때 택시로 쓰이는 아반떼를 개인이 구매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사례를 설명했다.
특히, “자전거부터 스마트폰까지 중국산의 '저가 공세'를 우리가 이겨내는 것은 구조적으로 힘들다. 중국에서 완제품을 주문자제작생산(OEM)을 한다거나 하는 흐름을 부인할 필요가 없다"고 언급한 뒤 과거 일본이 우세했던 제조업을 한국이 차지했을 때 일본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프리미엄 전략을 짜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이밖에 한국무역협회의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중국 저가수출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도원빈 수석연구원은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중국 기업의 수출단가 인하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아직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는 프리미엄·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수출 포트폴리오를 전환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AI 기반 고객 편의 다양화 추세…K-가전 경쟁 우위 구축에 시사점"
국내 가전업계는 중국산 세탁기 공세를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앞으로 시장을 넘겨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AI 기능은 고장을 미리 인지해 안내하는 등 고객 편의를 크게 높여주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분명 프리미엄 시장에서 큰 강점"이라며 “컨슈머리포트 등 공신력 있는 기관 자료를 봐도 삼성·LG전자 제품이 중국산을 압도하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미 국내 유통사 자체브랜드(PB) 등을 중국 가전이 장악한 상황이고 시장을 선도하는 한국 기업도 일부 제품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중국에서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더욱이 무게가 무거운 세탁기는 운송비나 관세 등에 민감한 편이라 수출로 이익을 많이 확보하기 힘든 제품이란 점에서 결국 보급형 제품 분야와 신흥시장에서는 중국이 한국 기업을 누르게 될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우려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