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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세탁기 전쟁 ③] 파나소닉·히타치 등 ‘각양각색’ 마케팅···자리 못잡는 K-가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9.22 08:09

■ 일본 도쿄 대형매장 현장 취재 (2)

日 브랜드도 中 공세에 밀려···TV시장은 이미 ‘중국판’

프리미엄 제품 개발·마케팅 집중, LG전자 재진출 선언

일본 도쿄에 있는 LABI 이케부쿠로 본점 세탁기 코너 전경. 다양한 종류의 제품이 있는데 드럼세탁기 라인업을 가장 많이 운영하는 브랜드는 파나소닉

▲일본 도쿄에 있는 LABI 이케부쿠로 본점 세탁기 코너 전경. 다양한 종류의 제품이 있는데 드럼세탁기 라인업을 가장 많이 운영하는 브랜드는 파나소닉이다. 사진=여헌우 기자.

파나소닉, 히타치 등 일본 세탁기 업체들은 사회공헌활동을 비롯한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위한 노력을 다양하게 기울이고 있었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 대응 차원에서 프리미엄 제품을 개발·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잡았다. 삼성·LG전자 등 한국 기업들은 아직까지 일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최근 일본에서 '순환경제'에 초점을 맞춘 홍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가전제품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며 자신들이 '가전제품 명가'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파나소닉은 순환 경제 지향 제조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세탁기 등 가전 제품을 대상으로 '파나소닉 팩토리 리프레시' 캠페인을 시작했다. 반품된 가전을 '인증 중고품' 형태로 판매하는 게 골자지만 공장 직원들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등 회사는 이 과정을 홍보 활동의 일환으로 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리미엄 제품 수요를 늘리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파나소닉 세탁기 및 건조기 'ALPHA 세트'가 최근 '2025년 레드닷 어워드' 제품 디자인 부문에서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Best of the Best)를 수상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리며 드럼세탁기 마케팅을 전개 중이다. 일본 도쿄 내 요도바시카메라(Yodobashi Camera), 빅카메라(Bic Camera) 등 대형 전자제품 매장에서도 파나소닉의 프리미엄 드럼 세탁기 라인업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요도바시카메라 매장에 파나소닉 드럼세탁기가 전시돼 있다. 일본 브랜드들은 아직 중국산 공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프리미엄 드럼

▲일본 도쿄에 있는 요도바시카메라 매장에 파나소닉 드럼세탁기가 전시돼 있다. 일본 브랜드들은 아직 중국산 공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프리미엄 드럼세탁기 시장 방어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여헌우 기자.

히타치 역시 제품보다 기업 이미지 차원의 활동을 주로 펼치고 있다. 고객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라이프 솔루션 기업'이 되겠다는 기치 아래 각종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양사 모두 세탁기 기업이라고 하기엔 사업 포트폴리오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꼼꼼한 내수 방어 전략을 펼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일부 국가 세탁기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B2B 역량 강화를 위해 조직을 재정비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현재 코트라(KOTRA) 도쿄무역관은 보고서를 통해 “최근 일본 가전업체들은 중국 기업의 시장 공략에 대응하기 위해 고기능 시장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이에 따라 일본 가전 시장의 경쟁 구도가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중국 세탁기 굴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가전업체들은 신규 진입 단계에서 저가 제품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쌓은 후 프리미엄 제품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하이센스와 하이얼은 드럼형 세탁·건조기를 일본에 투입하되 가격 인상폭은 최소화한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인터넷 접속 기능이 탑재된 에어컨 등 첨단 제품에서도 중국산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전언이다. 중국 기업들은 일본 프로야구팀을 후원하는 등 현지 시장 침투력을 강화하는 전략도 병행 중이다.


김 무역관은 “일본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중국 브랜드 성장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본은 지난 30년간 저물가·저금리 기조가 유지됐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격한 물가 상승이 발생하면서 소비자들의 절약 의식이 강해졌다"며 “이에 따라 저렴한 가격의 중국 제품이 인기를 끌었고 이는 젊은 소비층을 중심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일본 가전 시장에서 철수했고 LG전자는 올해 초 12년만에 세탁기 분야 재진출을 선언한 상태다. 인공지능(AI) 기능을 넣는 등 '프리미엄 전략'을 짜고 있지만 이는 파나소닉, 히타치 등 현지 업체들과 겹치는 부분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자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시장으로 알려졌다. 가전제품 뿐 아니라 자동차 등 다른 분야에서도 외국 대기업 제품 진입이 쉽지 않다.


시장조사기관 Spherical Insights에 따르면 일본은 소형 아파트와 주택 비중이 높아 공간 절약형 세탁기가 주로 소비되며, 전체 판매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가정 내 세탁기 보급률은 95% 이상으로 매우 높으며 세탁기의 사이클 역시 짧고 사용이 간편한 모델을 선호하는 편이다.


업계에서는 일본 TV 시장을 중국 업체들이 점령했던 과정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일본 매체들은 TV 시장을 중국이 장악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세탁기 분야와 마찬가지로 저가 제품을 출시하는 동시에 현지 업체를 인수합병(M&A)하는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이 눈길을 잡는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하이얼 일본 법인은 올해를 '제3의 창업' 시기로 규정해 판매 체제를 강화하고 있고 하이센스는 TV 인지도를 바탕으로 생활 가전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려 하는 등 중국 업체가 일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요도바시카메라 매장에 TCL TV가 전시돼 있다. 일본 전자제품 매장 TV 코너 '명당' 자리는 대부분 TCL이나 하이센스 제품이 차지하고

▲일본 도쿄에 있는 요도바시카메라 매장에 TCL TV가 전시돼 있다. 일본 전자제품 매장 TV 코너 '명당' 자리는 대부분 TCL이나 하이센스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이 외에 소니, 샤프, 레그자 제품이 주로 보이는데 소니를 제외하면 모두 중국 회사에 인수된 브랜드들이다. 사진=여헌우 기자.

일본 도쿄에 있는 빅카메라 매장에 하이센스 TV가 전시돼 있다. 일본 전자제품 매장 TV 코너 '명당' 자리는 대부분 TCL이나 하이센스 제품이 차지하고

▲일본 도쿄에 있는 빅카메라 매장에 하이센스 TV가 전시돼 있다. 일본 전자제품 매장 TV 코너 '명당' 자리는 대부분 TCL이나 하이센스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이 외에 소니, 샤프, 레그자 제품이 주로 보이는데 소니를 제외하면 모두 중국 회사에 인수된 브랜드들이다. 사진=여헌우 기자.

시장분석업체 BCN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TV 시장 업체별 점유율은 중국 하이센스 41.1%, TCL 9.7%로 조사됐다. 대만 폭스콘이 인수한 샤프 점유율도 20.6%에 달했다. 4대 중 3개는 중국·대만 제품이 팔리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 업체인 소니와 파나소닉 점유율은 각각 9.6%, 8.8%에 불과했다.


하이센스 점유율을 브랜드별로 보면 도시바로부터 인수한 레그자가 25.4%, 자체 브랜드는 15.7%였다. 하이얼, 메이디 등이 일본 가전 회사를 적극 인수하고 있는 만큼 세탁기 시장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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