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13일 국민보고대회에서 100조원 이상의 국민성장펀드 조성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발표했다. 사진은 이재명 대통령.
은행권에 대한 정부의 자금 부담 압박이 커지면서 금융지주가 추진하는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나온다. 배드뱅크 재원 분담에 교육세 인상, 10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출자 등 다양한 재원 부담이 확대되면서, 밸류업 실행을 위한 자금 여력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지주사들은 아직 구체적으로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향후 정책 방향을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13일 국민보고대회에서 100조원 이상의 국민성장펀드 조성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발표했다. 이 펀드는 인공지능(AI), 바이오, 방위산업 등 미래전략산업에 투자하는 생산적 금융 차원에서 조성된다. 금융권은 해당 펀드 조성을 위해 5년간 20조~30조원을 출자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미 배드뱅크 재원 출연, 교육세 인상 등으로 자금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금융권의 추가 지출이 불가피한 셈이다. 정부는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채무를 탕감해주는 배드뱅크를 추진하고 있는데, 총 8000억원의 재원 중 4000억원을 금융권이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세도 강화된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금융권의 1조원 초과 수익에 부과되던 0.5%의 교육세율이 1%로 두 배로 높아진다. 은행권 자체 분석에서는 내년부터 5대 은행의 교육세 부담이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당 연간 부담액은 약 10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와 함께 금융당국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 은행에 대한 제재 절차에 들어가며 최대 조 단위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담합 의혹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도 예고돼 있다.
금융지주사들은 자기자본이익률(ROE)과 보통주자본(CET1) 비율 확대를 기반으로 한 밸류업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현재 환경은 밸류업 계획 실현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특히 각종 출자와 정부 사업 투자는 ROE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ROE는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눠 구하는데, 재원 출자나 투자는 수익성이 낮아 당기순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다양한 기업 투자로 위험가중자산(RWA)이 늘어나면 CET1 관리도 어려워진다.
은행의 비용이 늘어나면 금융지주가 활용할 수 있는 배당가능이익 등 주주환원 재원에도 부담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주주환원 여력을 떨어뜨려 금융지주사들이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펼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정부가 은행의 이자놀이를 비판하며 기업 투자를 확대하도록 압박하고 있고, 가산금리 산정 체제 변경도 추진하고 있어 은행들이 영업하기에도 녹록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비용 청구서가 도착하지 않아 은행권은 향후 정책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은행이 어느 정도의 추가 비용을 부담할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밸류업 계획에 영향이 없다고 판단한다"면서도 “막대한 추가 부담이 요구될 경우에는 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