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이달 말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이 포함된 상법 2차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비슷한 시기 '자사주 소각 의무화' 안건을 두고 재계와 공개 토론회를 연다고 밝혔다. 상법 3차 개정 작업에 시동을 걸겠다는 취지다.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이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관 배제 막는 집중투표제·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지난 7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1차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대원칙을 세웠다. 이달 말 민주당이 처리하려는 상법 2차 개정안은 1차 개정안에서 세운 원칙이 이사회에서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 기존에도 소액주주를 위한 제도가 있었지만, 많은 기업이 정관을 통해 실효성을 무효화시켰다는 비판이 많았다.
가령, 2차 개정안에 포함된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이미 상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강행규정은 아니라서 회사가 정관을 통해 적용을 배제할 수 있다. 대부분 상장사는 집중투표제를 정관에서 배제하고 있다. 2차 상법 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정관으로도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없게 만드는 내용이다. 일반 상장회사는 기존대로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보유한 주식 수에 선임할 이사 수를 곱한 만큼 의결권을 갖고, 이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서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선임할 때 1주를 가진 주주는 3표를 행사해 한 후보에게 집중 투표할 수 있다.
윤태준 주주행동플랫폼 액트 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은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만 적용되는 구조라서 소액주주가 모여서 주주 제안에 필요한 3% 이상을 모아 자력으로 이사를 추천하긴 쉽지 않다"며 “기관 투자자나 행동주의 펀드 등에서 제안하는 후보가 소액주주의 지지를 발판으로 좀 더 수월하게 이사회에 진입하는 경향이 나타날 것 같다"고 말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이사와 분리하여 선임하는 제도다. 현행 상법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의무적으로 1인의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2차 개정안에는 의무 분리선출 대상 감사위원을 2인 이상으로 확대했다.
일반적인 이사 선임과 달리 처음부터 '감사위원이 될 이사'로 특정하여 별도 선발하는 방식으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 룰'이 적용된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는 기업 경영의 핵심인 이사회에 많은 변화를 줄 전망이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로 소액주주가 대주주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사를 선임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분리선출된 감사위원이 2명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감사위원회가 대주주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감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용우 전 민주당 의원(전 한국카카오뱅크 공동대표)은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되면 일반 주주가 제안하는 이사가 더 많이 들어갈 것"이라며 “감사위원이나 사외이사는 애초 지배주주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인데 실질적으로 독립이사로서 견제하려면 지배주주의 영향권 밖에 있어야 독립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윤 소장은 “많은 기업이 회사가 추천하는 위원을 감사위원 분리 선출로 먼저 선임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2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감사위원 분리선출로 뽑을 수 있는 이사의 숫자가 더 늘어나는 것이라 내년부터 소액주주 입장에서 더 중요한 이슈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취득 즉시·1년 이내 소각 등 의원마다 내용 차이
민주당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도 같이 준비하고 있다. 이미 민주당 의원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관련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오기형 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이달 말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과 관련한 공개 토론을 하고 필요하면 추가 간담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관련 상법 개정안
지난달 김남근·민병덕·김현정·이강일 의원 등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자사주를 소각하는 기본 틀은 같지만, 소각 시기나 예외 조항 등이 다르다.
소각 시기가 가장 빠른 김현정 의원안은 '자사주를 취득 즉시 소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 시행 전 보유한 자사주는 6개월 이내 소각하도록 했다. 임직원 보상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자사주 보유가 허용되는데 이때도 반드시 정기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남근 의원안은 자사주 취득 후 1년 이내에 소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조합과 사내근로복지기금, 전환사채 및 신주인수권부사채 권리행사 등 필요한 경우 예외적으로 자사주 보유가 허용되는데 매년 정기주주총회 때 승인을 받도록 하고 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남근 민주당 의원은 “상법 개정에 이어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코스피 5000시대'를 향한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이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며 “자사주의 과도한 보유와 우호 세력에 대한 헐값 매각을 통해 주가가 하락하고 그 피해는 일반 주주가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용우 전 의원은 “자사주 의무 소각은 2011년 이명박 정부 상법 개정 전에 원래 있던 원칙"이라며 “의무 소각하는 게 원칙이지만, 이사의 충실 의무가 주주로 확대된 상황에서 자사주를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면 충실 의무에 위배될 것이라 아주 급한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