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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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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DL, 여천NCC 구했지만 ‘갈등 진행형’…본질은 ‘50:50 운영구조 한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8.12 17:14

유동성 위기, 양측서 자금 수혈해 우선 급선무 해결 상태

국세청 추징 1006억 해석차, 에틸렌 등 가격 논란도 부각

‘5년 재협상 vs 20년 고정’ 기간·가격 공식 놓고 정면 대치

캐스팅 보트 없는 조인트 벤처, 중립 의결 장치 도입 필요성

한화솔루션·DL케미칼 CI

▲한화솔루션·DL케미칼 CI.

여천NCC가 한화그룹과 DL그룹 양측의 자금 수혈로 당장 유동성 위기는 넘겼지만 원료 공급 계약 재협상과 국세청 과세 해석을 둘러싼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또한 캐스팅 보트가 없는 '50 대 50 지분합작' 구조의 의사결정 교착이 갈등의 시작점이어서 이를 보완할 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최근 3개년 새 여천NCC의 누적 손실은 7758억6662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천NCC는 전남 여수 산업단지 소재 대규모 석화 기업들 중 하나로, 한화그룹과 DL그룹이 지분 50%씩 보유한 합작사다. 이 회사는 장기 공급 계약에 따라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 원료 생산분을 폴리머 등 다운 스트림 제품을 생산하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에 주로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석화업계 시황 부진과 원재료 가격 변동, 글로벌 수요 둔화 탓에 여천NCC는 2021년 4분기부터 현재까지 영업 적자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한화그룹과 DL그룹 등 주주사들 간 장기 공급 계약 관련 협상 지연과 일부 금융 기관의 여신 한도 축소 움직임으로 인해 최근 자금 조달 능력이 저하되고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에 올해 3월 중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대금이 납입됐지만 자본 확충이나 대여 등 주주사의 추가 지원이 적시에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차입 만기 대응이 불확실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때문에 여천 NCC는 대주주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에 각각 1500억원씩 총 3000억원을 증자하거나 대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한화솔루션은 이사회를 통해 여천NCC에 대해 1500억원을 지원하는 안건을 처리했지만 DL케미칼은 적극 지원을 피하고 의사 결정 지연이 발생했고, 구조조정이 우선 검토 등을 언급했다. 즉각 지원 의사를 밝힌 한화솔루션 측 불만이 촉발된 이유다.


이후 이달 11일 DL과 대림이 DL케미칼에 대해 각각 1778억원, 222억원씩 총 2000억원의 유상증자를 결정했고, 이 자금은 오는 18일 납입될 예정이다.


DL케미칼 이사회는 해당 금액 만큼 여천NCC에 대한 유상증자 안건을 가결했다. 이로써 한화그룹과 DL그룹 양측으로부터 운영 자금을 받게 된 여천NCC는 당장 숨통이 트이게 됐다.


오윤재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수석 애널리스트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간에 여천NCC 지원 방식과 규모에 대한 합의 도출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한화그룹과 DL그룹은 원료 공급 계약 재협상과 국세청 세무조사 해석을 둘러싸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한화커뮤니케이션위원회 관계자는 “올해 초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여천NCC에 총 1006억원의 법인세 등 추징이 통보됐고, 이 가운데 DL 측과의 거래 관련 비중이 96%"라고 전했다.


한화그룹 측은 공동 공급 품목인 에틸렌의 경우 자사 거래 가격은 시가로 인정됐지만 DL에는 저가 공급 판정이 내려져 489억원이 추징됐고, DL 전용 품목인 C4R1(361억원)과 이소부탄(97억원)도 과세 대상이 됐다고 발표했다.


계약 구조를 둘러싼 시각차도 뚜렷하다. 한화솔루션은 1999년 체결된 기존 원료 공급 계약이 2024년 12월 종료돼 2025년 1월부터 임시 가격으로 거래 중이고, 정식 계약 체결 후 소급 정산하기로 했다는 입장이다.


DL은 “한화가 지난해보다 저가에 공급받아 여천NCC 손실을 키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한화솔루션은 “현재 당사가 적용받는 가격은 DL이 거래하는 가격과 동일하고 당시 시장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물량 측면에서도 한화는 “에틸렌 연간 거래량이 한화 100만톤, DL 40만톤 수준이지만 물량 할인은 받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계약 기간과 가격 산정 방식에 대해서도 입장이 갈린다. 한화솔루션은 시황 변동성을 고려해 5년 단위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보고 시가 연동 원칙과 외부 전문가 검증 수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반면 DL은 시장가 대비 낮은 가격을 20년 장기 계약으로 고정하는 안을 선호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갈등의 밑바탕에 50대 50 합작 구조의 의사 결정 교착 리스크가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캐스팅 보트가 부재한 구조에서 대규모 자금 집행과 핵심 거래 조건 개정이 상호 거부권 행사에 걸리기 쉬운 데다, 두 주주사가 동시에 '주요 고객'이어서 이전 가격·정산 방식 등에서 이해 충돌이 상시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외부 벤치 마크를 활용한 가격 공식과 중립위원회·전문가 결정 등 기한형 의사 결정 장치, 정기 리셋 조항 도입 등이 해법으로 거론된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18일 DL케미칼 유상증자 납입 이후 여천NCC로의 자금 유입 경로·시점 △임시가격에 대한 소급 정산 결과와 정식 공급 계약의 가격 공식·기간 △국세청 과세액 1006억원 관련 이의절차 진행 여부와 재무 반영 폭 △여신 한도·차환 일정 재정비 등이다.


이번 분쟁이 단기 유동성 해소로 일단락될지, 50:50 구조 보완 논의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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