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계 주요 기업들이 미국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한미간 통상 협상에 힘을 보태기 위한 행보다. 이미 현지에 수십조원을 쓰기로 결정한 기업이 추가 투자를 검토하는가 하면 대기업 총수들도 현장으로 향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은 한미 통상 협상이 본격화하기 이전부터 미국에 수차례 '러브콜'을 보내왔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370억달러(약 52조원)를 투자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이 곳에 최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만들고 연구개발(R&D) 시설도 운영할 계획이다. 최근 테슬라와 체결한 23조원 규모 '빅딜'도 테일러 공장 가동을 앞두고 이뤄졌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우리나라 기업인 최초로 미국 백악관에 입성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지난 3월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210억달러(약 31조원) 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에 '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를 준공해 친환경차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밖에 한화그룹은 미국 필리조선소에 투자를 감행했다. 대한항공은 보잉 항공기 50대와 엔진 등을 구매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 효성, HD현대 등은 반도체·변전기 등 공장에 투자를 약속했다. LG전자 역시 현지 가전공장 증설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재계 총수들은 미국 출장길에 올라 한미 협상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9일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워싱턴으로 출국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통큰 투자' 약속에도 미국 측이 요지부동이라는 점이다. 한국 대표단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상호 관세 발효(8월1일) 시기를 앞두고 미국 측과 긴밀한 협상을 펼치고 있다.
한국 정부가 '1000억 달러+α(알파)' 대미 투자계획을 준비했지만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4000억달러 이상'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상황이다. 앞서 협상을 타결한 일본은 5500억달러, 유럽연합(EU)은 600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우리 정부가 정책금융기관 등을 활용한다 해도 미국 측 요구를 들어주기 힘든 셈이다.
재계는 결국 정부와 발을 맞추는 차원에서 추가 투자나 에너지 구입 등을 결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테슬라와 '빅딜'을 체결하며 파운드리 능력을 입증한 삼성전자가 우선 거론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계약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추가 계약 가능성을 시사한 만큼 삼성전자 역시 공장을 더 키울 여지가 남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나라가 내민 '한미 조선 협력' 카드에 한화·HD현대 등이 역할을 더해줄지도 관심사다. 김 부회장은 현재 워싱턴D.C.에서 미국 측 주요 인사들을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가 필리조선소 추가 투자 결단을 내려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조성된다. 기술 이전, 인력 양성 등 '당근'을 더 꺼낼 수도 있다.
우리 기업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 참여할 여지도 아직 남아있다. 현실화할 경우 대미 협상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 SK E&S, GS에너지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막판 변수는 정부·여당이 재계에 손을 벌리면서 '채찍'까지 들고 있다는 점이다. 여당은 최근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상법 개정 추가 논의, 법인세 인상 등을 줄줄이 결정하며 재계 반발을 사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미 협상 과정에서 현지에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기업들 도움이 필요한데 정치권은 오히려 발목을 잡는 듯하다"고 일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