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지역에 에너지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챗GPT 이미지.
수도권 전력 수급의 핵심 인프라로 꼽히는 분당발전본부 현대화사업과 동서울변전소 건설 사업이 각각 성남시와 하남시에서 주민 민원과 정치권의 반대로 표류 중이다. 양 사업은 모두 국가 에너지전환 계획의 일환으로, 탄소중립과 친환경 전환을 위한 필수 기반시설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눈치보기식 행정과 과도한 민원 수용이 맞물리며 사업 추진이 지연되면서, 향후 전력공급 안정성 저해, 탄소중립 계획 차질 등의 심각한 여파가 우려된다.
지자체·주민 반대에 동서울변전소 건설·분당발전본부 현대화사업 막혀
한전이 추진 중인 동서울변전소는 수도권 동부지역 전력공급을 위한 핵심 변전시설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국가 전력망 확충계획에 포함되어 설계 및 부지 조성에 착수했지만, 하남시와 지역구 정치인의 반대로 인허가가 보류되며 수년째 지연 중이다.

한전 동서울 변전소 갈등 일지
동서울변전소는 경북 울진에 위치한 한울원전 등 동해안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연결하는 핵심 설비이다. 이에 한전은 하남시 감일동에 위치한 동서울변전소의 지중화와 증설을 추진해왔다. 야외에 있는 345㎸의 시설을 지중화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여유 용지에 초고압직류(HVDC) 전압 500㎸ 변환소를 건설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지역 주민들은 전자파 유해성 등을 이유로 한전에서 추진하던 사업설명회를 취소하고 강력한 반대 투쟁을 벌였다. 하남시까지 지역주민 반대를 이유로 한전이 신청한 지중화 등 건축허가 4건에 대해 불가 통보를 하면서 결국 건설사업이 멈췄다.
이후 한전이 행정심판을 제기했고, 지난해 12월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가 한전의 손을 들어줬다. 한전은 중앙정부 계획과 법적 허가까지 다 받았지만, 여전히 지역주민 반대가 심해 지자체의 협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행정심판은 2024년 12월에 한전이 승소했고 하남시가 변전소 증설건을 승인하지 않아 현재도 지연상태"라며 “주민수용성을 위해서 건물디자인 선호도 조사, 전자파측정지원 등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남동발전의 분당발전본부 현대화사업도 지자체 허가 지연에 막혀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분당발전본부는 총 922MW 복합화력을 통해 전기와 열을 생산해 전기는 한전에 판매하고 열은 한국지역난방공사를 통해 성남지역 아파트 약 18만세대와 수도권 약 9만세대에 공급하고 있다.
남동발전은 분당발전본부가 설계수명 30년이 도래해 2033년까지 1조2219억원을 들여 노후 설비를 1014㎿/h급 고효율·친환경 설비로 교체하는 현대화사업에 착수했다. 남동발전에 따르면 현대화사업을 통해 대기배출물질(NOx)은 기존 30ppm에서 4ppm으로 약 86% 저감되고, 온실가스는 MWh당 기존 0.487톤에서 0.331톤으로 약 32% 저감되는 효과가 있다.
남동발전은 이 사업에 대해 2023년 11월 산업통상자원부 인허가 승인을 받고, 2024년 2월 성남시에 도시계획시설 실시계획 변경 신청을 했지만 지금까지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남동발전 분당발전본부 현대화사업 갈등 일지 및 쟁점
성남시는 인근 지역주민들의 반대를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역주민들은 불법 증축에 따른 과태료를 남동발전에 대납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공공기관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것까지 요구사안에 포함하고 있다.
남동발전 측은 “민간 불법행위 처리 요구는 부당하다"며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역주민이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분당동 주민자치위원회 등 지역 내 찬성 여론도 적지 않아 주민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국가 에너지 안보 무너져…에너지자립별 요금차등제 도입 필요
에너지업계는 에너지시설에 대한 님비(NIMBY)현상이 심각해지면서 국가 탄소중립·에너지전환 정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하며 정부의 조속한 대책마련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님비현상은 시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내 땅에는 안된다(Not In My Backyard)는 주민들의 이기적인 습성을 꼬집는 말이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이대로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에너지 인프라가 개인의 불법 민원과 정치적 계산에 좌우되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에너지 안보와 전력 공급 안정성은 국가의 기초 인프라 문제다. 지자체의 권한도 중요하지만, 법적 원칙과 공익적 판단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도 “지역 반발이 두려워 필요한 전력망 투자가 미뤄지면 결국 대규모 정전, 전력요금 인상, 산업경쟁력 약화로 국민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 정부는 갈등조정기구 등을 통해 조기에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줄곧 “친환경 발전소와 주민복지시설을 함께 추진하는 이번 사업은 주민 수용성과 공익을 동시에 고려한 좋은 모델이다. 일부 불법 건축을 이유로 국가사업을 발목잡아선 안 된다"고 말해왔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성남시 관계자는 “주민 민원이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지만,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선 시도 조속히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익명으로 “분당발전 현대화와 동서울변전소는 중장기 에너지전환 로드맵에 포함된 필수시설"이라며 “인허가 지연이 장기화되면 수도권 전체 전력공급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지자체와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행정절차는 지자체 권한"이라며 정부의 직접 개입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에너지시설에 대한 님비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시설 설치율, 즉 에너지자립도에 따라 요금을 달리 적용하는 요금차등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에너지시설 님비현상은) 임시방편적인 해결책보다는 결국 에너지 공급에 소요되는 비용에 따라 가격을 정상화해 해소해야 하는 문제"라며 “에너지 자립율이 높은 지역에게는 혜택을, 낮은 지역에게는 더 높은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로 진행돼야 님비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탄소중립이나 에너지 효율 투자도 촉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자립에 따른 요금 차등제는 이재명 대통령도 동의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전 5월 16일 군산 유세에서 “서울과 영광의 전기요금이 같다. (에너지 자립률이 높은) 지방은 싸게, 소비지는 송전비를 붙여서 더 비싸게 해야 한다"며 “앞으로 전기요금은 올려야 한다. 지금도 비싸다고 느낄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올릴 때 지방은 덜 올리던지 그냥 유지하던지 해서 (자립률이 낮은 지역과) 에너지요금 차이, 규제 차이, 세금 차이 만들면 지방에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