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덕도 신공항 홍보영상 관련 이미지 사진=연합뉴스
현대건설이 부산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 사업에서 전격 철수를 선언했다. 표면적으로는 공사 기간(공기) 단축 요구에 따른 기술적 이견이 원인이지만, 복수의 관계자 취재를 종합하면 지역 여론과 정치적 압박, 이미지 훼손 우려까지 겹치면서 철수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지난 30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공사의 품질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무리한 공기 단축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며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 공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공기 단축 문제에 이어 “지역과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반복된 오해와 비난이 있었으며, 불필요한 오명을 사기 싫었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말 그대로 직접적인 문제는 공사 기간에 대한 의견 불일치였다. 국토교통부는 84개월만에 공사를 끝내자고 요청했지만 현대건설은 최소 108개월이 필요하다고 봤다. 연약 지반 안정화, 방파제 시공, 부지 매립 등을 고려해 24개월 정도 더 공사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기본설계에만 250여 명의 전문가와 600억원의 비용을 투입해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국토부 측은 84개월을 고집했다. 현대건설 측에 공기 보완을 요구했고, 결국 협상이 결렬되며 이달 초 수의계약 절차가 중단됐다. 현대건설은 사업 참여를 철회했고, 후속 사업자 선정을 위해 기본설계 비용 600억원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공기 문제만이 아니라, 지역 언론과 정치권의 반복된 비난, 시민단체의 배제 요구 등으로 억울한 상황이 반복됐다"며 “사익을 위해 국책사업을 방해한다는 프레임을 감내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기술검토 비용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회사 관계자는 “600억 원 전체가 현대건설 부담은 아니며, 자사 지분에 해당하는 금액만 투입한 것으로 안다"며 “정확한 규모는 내부 확인이 필요하지만, 타사 몫까지 포함된 전체 금액을 언급하긴 어렵다"고 했다. 이어 “현대건설이 부담한 비용은 사실상 포기하게 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컨소시엄 구성사인 포스코이앤씨와 대우건설도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는 “현대건설 철수를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며 “사내 검토를 거쳐 사업 참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우건설 관계자도 “공기 문제나 사업성에 대한 부담은 공유하고 있다"며 “철수 여부는 내부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국토부는 사업 정상화를 위한 재편에 들어갔다. 국토부 가덕도신공항팀 관계자는 “84개월은 국토부 단독이 아닌 전문가 자문과 용역을 거친 결과"라며 “재입찰 또는 컨소시엄 재구성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기술 논란이 아닌 국책사업 구조의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권 말기 정치적 사업 추진과 지역 이익의 충돌 속에서, 기업이 명확하지 않은 계획에 발만 담갔다간 모든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며 “현대건설 입장에선 위험 분산 차원의 결단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 회장은 “결국 공사비 현실화 문제"라고 짚었다. “과거처럼 국책이라서 무조건 참여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정책 신뢰와 수익성 확보 없이는 대형사들도 이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단순한 철수 선언을 넘어 향후 공공 인프라 사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국책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민간 시공사의 기술 검토와 공기 판단이 무시되는 구조가 반복될 경우, 유사 사례가 재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가덕도신공항은 총 13조 원 규모의 영남권 거점 공항 프로젝트다. 국토부는 지난해 4차례 유찰 끝에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수의계약 대상자로 선정했으나, 우선협상대상자의 이탈로 사업 정상화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