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 선선한 바람이 반갑기만 하다. 특히, 폭염과 열대야가 최장기간 이어진 역대급 더위와 한바탕 전쟁을 치른 후여서 더욱 반갑다. 올여름 기록적 더위의 원인이 기상이변인지 기후변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역대급 더위 신기록이 1년이 멀다 하고 깨지는 현상을 보면 기후변화 가설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지금까지 가장 더운 하루 기록은 전 지구 평균 기온 17.08℃를 찍은 2023년 7월 6일이었으나, 올해 7월 22일에 17.15℃를 기록하며 불과 1년여 만에 갈아치웠다.
기후변화의 주원인은 화석에너지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다. 따라서 기후변화를 방지하려면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화석에너지를 단기간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과 같은 무탄소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와 원전 중심의 에너지전환을 서두르는 이유다. 문제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이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안정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날씨에 따라 들쑥날쑥 거리는 발전량으로 말미암아 대량의 전기가 남아돌거나 부족한 수급 불균형이 수시로 반복되는 현상이다. 당연히 남을 때 저장하고 부족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전기저장 장치 즉 배터리가 해결책이다.
현재 사용되는 배터리는 리튬이온이 얇은 분리막으로 구분된 음극과 양극을 오가며 충방전을 반복하는 리튬배터리다. 휴대전화, 전기차, 대량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리튬배터리는 분리막 손상에 의한 열폭주 현상에 취약해 종종 대형 화재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올여름 23명의 생명을 앗아간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와 지하 주차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전기차 화재 모두 리튬배터리에서 시작된 사고다. 물론 리튬배터리 화재의 구체적 원인은 사안마다 다르겠지만, 기술의 실패도 분명 하나의 원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로이터통신 등은 화성시 공장 화재를 놓고 “리튬 화재는 오랫동안 업계에서 고심한 문제로, 배터리 보편화로 세계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며 기술 실패를 지적하기도 했다.
근본적 해결책으로 화재 위험을 대폭 낮춘 전고체배터리가 개발되고 있다. 열폭주 화재 발생 시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휘발성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하는 배터리다. 하지만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고체에서 이온 이동이 느려지는 자연 현상으로 말미암아 배터리 성능 자체가 현저히 떨어지는 기술적 장벽에 막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 보쉬와 다이슨은 각각 2015년 전고체배터리 스타트업기업을 인수했으나 3년 만에 매각 철수했고, 일본 도요타는 전고체배터리 상용화 시점을 2021년에서 2025년, 2028년으로 계속 늦추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태생적 약점인 간헐성을 보완하는 핵심 설비인 배터리의 현재 기술 수준은 여전히 미덥지 않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그렇다면, 불완전한 현재의 배터리 기술에 기댄 채 기후변화 방지를 위해 재생에너지를 무작정 확대하는 것은 미래의 위험을 현재의 위험으로 대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후변화 방지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실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현재 배터리 기술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함과 동시에 또 다른 무탄소에너지인 원전을 일정 수준 유지하여 기후변화 추이를 최대한 지연시키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적응력을 높여, 획기적인 탄소중립 기술개발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 인류는 역사적으로 재앙이 닥치면, 단기적으로는 재앙에 적응하며 시간을 벌어 재앙을 이겨낼 새로운 방안을 기어코 찾아내는 저력을 발휘해 왔다. 전염병이 창궐하면 일단 격리, 방역 강화와 같은 단기적 적응 조치를 통해 전염 속도를 늦추고, 장기적으로는 백신, 치료제 등을 개발하여 전염병을 퇴출하였다. 기후변화도 비슷한 경로를 따라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기술을 동원해 변화 속도를 최대한 늦추면서, 탈탄소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획기적 기술개발을 통해 근본적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감성에 치우친 구호가 아닌, 오직 냉철한 이성에 입각한 과학기술 개발로 막아낼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