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웨이항공 737-800(HL8324) 여객기가 공항 에어 사이드에 주기돼있는 모습. 사진=국토교통부 항공기술정보시스템 제공
법원이 기체 부품에 문제가 있어 운항 안전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비행을 거부한 조종사가 항공사측의 징계 조치에 반발해 제기한 처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조종사 단체는 환영의 입장을 보였지만 사내 고참 기장들은 당사자와 회사 모두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4일 에너지경제신문 취재와 대구지방법원 민사부 징계 효력 금지 결정문을 종합하면 김모 티웨이항공 기장은 올해 1월 2일 베트남 깜라인 국제공항에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는 TW158편(HL8324)을 운항할 예정이었다.
해당 항공기 브레이크 인디케이터 핀의 길이가 사측의 운항 기술 고시에 따른 기준치인 1㎜에 미달하는 것을 확인한 김 기장은 정비팀에 브레이크 교체를 요청했다. 그러나 정비팀은 정상 운항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브레이크를 교체하지 않았고, 운항본부로부터 비행 지시 등 다른 조치도 이뤄지지 않자 이에 김 기장은 운항 불가를 결정했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조언을 위해 고용돼 통제실에 상주하는 은퇴 기장인 '크루랩'을 비롯, 정비·항공운항관리사들이 안전에 문제가 없음을 김 기장에게 설명했는데 그는 운항본부가 게시한 공시를 근거로 운항 불가를 선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티웨이항공 사측은 한국에서 부품을 공수해 결국 베트남 현지에서 브레이크를 교체했지만 보항편 투입에 15시간 가량 운항이 지연됐다. 같은 달 19일, 사측은 중앙인사위원회를 개최하고 김 기장에 대해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의결했다. 독단적이고 무지한 판단으로 회사에 2억원대의 손실을 입혔고, 승객 169명에게 불편을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김 기장이 재심을 요구해 사측은 지난 2월 1일 정직 5개월로 징계 수위를 다소 낮췄다.
이후 김 기장은 대한민국조종사노동조합연맹의 법률 지원을 받아 대구지법에 징계 처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재판장 김태균 판사는 이를 인용했다.
티웨이항공 운항본부가 지난해 9월 27일 공지한 '카본 브레이크 장탈 기준 전파'에는 '웨어 인디케이터 핀의 길이가 1㎜ 또는 그 이하의 경우 브레이크 교환'이라고 명시돼 있고, 같은해 10월 11일자 운항 기술 공시(23-46)에도 이 사건 항공기와 동일한 기종의 카본 브레이크 장탈 기준에 관해 같은 내용이 기재돼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해당 문언 그 자체로는 해당 기준치 이하에 해당하는 경우 브레이크를 교체하라고 규정돼 있을 뿐, 정비 효율을 위한 참고 사항에 불과하다는 취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고 판단했다.
또 “브레이크 핀의 길이가 0.8㎜로 최종 확인된 당시 상황에서 채권자인 김 기장은 운항 일반 교범(FOM)에 따라 항공기 출발을 결정해야 하는 지위에 있어 운항 불가를 통보한 것이 징계 대상에 해당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다수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비행 안전과 관련해 채무자인 티웨이항공 사측이 징계를 포함한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원칙에 따라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부연했다.
사측은 당시 한국 시간 기준 자정에 가까워 업무 지시가 불가능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티웨이항공이 국제선을 운영하는 만큼 베트남 현지에 있던 김 기장에게 비행 지시를 내릴 수 없었다는 것으로 충분한 해명이 될 수 없다고 봐서다.
김 판사는 “김 기장에 대한 징계 사유가 존재하는지, 그렇다 하더라도 정직 5개월의 양정이 정당한지에 관해서는 본안 소송의 충분한 심리를 거쳐 최종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특히 김 기장은 징계 처분으로 인해 비행 자격 유지도 어려워져 직무 수행을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금전 배상만으로는 온전히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법원의 이 같은 결정에 조종사노조연맹은 당연하다면서 반기는 분위기다.
박상모 조종사노조연맹 위원장은 “항공안전법은 기장이 안전 운항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는데, 이에 충실하고자 했던 김 기장에 대해 티웨이항공은 부당 징계를 하려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측의 이 같은 행태는 안전 운항 문화를 발전시킬 수 없어 징계 자체를 납득할 수 없다"며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는 비 처벌을 근간으로 기체 이상을 자율 보고한다"고 했다.
한편 티웨이항공 사측은 보도자료에서 “인디케이터 핀의 길이가 1㎜ 이상 남은 상태에서 교환할 경우 동 부품 제작사가 페널티를 부과해 내부 기준치에 1㎜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이라며 “실제로는 핀의 길이가 0㎜ 이상인 경우에는 안전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당사 모든 조종사들은 핀의 길이가 0~1㎜인데도 무리 없이 운항 중이고, 김 기장도 과거 0.1~0.7㎜ 사이에서 수차례 아무런 지적 없이 항공기를 운항한 기록이 있어 당시 비운항 결정 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 고경력 기장들은 운항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고 보고 있다는 전언이다. 반면 티웨이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집행부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부기장들은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사측 관계자는 “같은 건의 타당성에 관해 법원과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본 심리를 진행 중에 있고, 향후 본안 소송에서 징계 처분의 정당성을 다툴 예정“이라며 "최상의 안전 운항을 위해 전 분야에서 철저한 점검과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경력이 상당한 티웨이항공 교관급 기장들과 심사관들 사이에서는 김 기장과 사측 모두 도를 지나쳤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종사 A씨는 “김 기장은 보수적으로 공시된 내용을 근거로 비행을 거부했는데, 당시 상황만 놓고 보면 안전에는 문제가 없어 정상 운항이 가능했다"면서도 “사측의 5개월 정직 처분은 과도했고, 일정 기간 비행 정지 정도의 경징계가 적절했다"고 평했다.
김 기장이 티웨이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위원장이라는 점에서 사측과 갈등을 빚은 것도 징계 수위가 높아졌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A씨는 “김 기장은 사측과의 교섭 과정에서 고소를 남발해온 측면이 있다"며 “미운털이 박히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