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사진=AFP/연합)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후보 사퇴를 선언함에 따라 오는 11월 본선에서 민주당 소속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 소속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턴 매치'가 펼쳐지게 됐다. 이런 가운데 헤일리 전 대사에게 몰려갔던 지지층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 쏠린다. 대선 본선이 박빙으로 흐를 경우 헤일리 지지층이 승부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헤일리 전 대사는 '슈퍼화요일' 다음날인 6일(현지시간) 자신의 고향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 경선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붉은 원피스 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헤일리 전 대사는 사퇴 연설에서 “그간 보내준 열렬한 지지와 성원에 감사하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경선을 중단해야 할 때"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후회는 없다"며 “비록 나는 더 이상 경선 후보가 아니지만, 우리 나라가 궁극적으로 가야할 방향에 대한 목소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 정치적 재기를 다짐했다.
앞서 경선을 포기한 공화당 주자들과 달리 헤이리 전 대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지 않았다. 그는 “트럼프는 7월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라며 “축하하고, 그가 잘되기를 바란다"고만 밝혔다. 통상적이라면 헤일리 전 대사가 소속된 공화당 후보에게 흡수되겠지만 이번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고학력층, 도심 출신, 중도 성향인 이들은 대체로 '트럼프도, 바이든도 싫어서' 헤일리 전 대사에게 몰려갔기 때문에 이들의 향후 표심이 더욱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떠오른 셈이다.
이와 관련,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보도에서 헤일리 전 대사의 표심을 크게 '그나마 트럼프', '차라리 바이든', '부동층' 등 세가지로 구분했다. 영국 BBC 방송은 헤일리 지지 기반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바이든 대통령만큼 두텁지는 않지만 올해 대선 판도의 향방을 가를 '경고장'이 될 수는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 대세론'에 떠밀려 헤일리 전 대사가 고전을 면치 못하긴 했지만 그의 지지층은 경선지 2곳에서 헤일리에게 승리를 안겨주면서 '상당한 힘'을 증명했다. 헤일리 전 대사는 또 당내 경선 때 대부분 주에서 20~40%에 이르는 지지를 받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FP/연합)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기다렸다는듯, 헤일리 전 대사가 사퇴를 표명한 직후 성명을 발표해 “도널드 트럼프는 니키 헤일리의 지지자들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며 “나는 내 캠페인에 그들을 위한 자리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법치를 옹호하고 서로를 품위와 존엄으로 대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보존해 미국의 적에 맞서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나는 우리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그러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당과 헤일리 전 대사의 '유착 의혹'을 부각해 헤일리 전 대사를 맹비난하며 지지자들에게 이제는 자신의 지지대열에 합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헤일리 지지자들 모두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운동에 합류하도록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지난밤 헤일리가 기록적인 방식으로 완패했다"며 “그녀(헤일리)의 돈 중 많은 부분은 그녀에게 투표한 이들 다수와 마찬가지로 급진 좌파 민주당원들에게서 왔는데, 조사에 따르면 거의 50%"라고 조롱과 비난을 쏟아부었다.
공화당 전략가이자 전 공화당 전국위원회 언론 담당자였던 더그 헤이는 최근 미 ABC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헤일리 지지자들을 오는 11월 본선 투표에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트럼프가 헤일리 지지자 중 일부를 얻을 수 있겠지만, 많은 수를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놓쳐버린 표심이 오히려 바이든 대통령에게 '뜻밖의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CNN 방송의 노스캐롤라이나주 공화당 경선 출구 조사를 인용해 헤일리 지지층의 81%가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는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 81%는 대략 25만표에 해당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에서 이보다 훨씬 적은 74만표 차이로 노스캐롤라이나주 승리를 따냈다.
한편, 미국 정치 평론가들과 언론은 정치인 기준으로는 젊은 52세의 헤일리가 이번 경선을 통해 쌓아 올린 인지도와 중도층에 대한 흡입력을 바탕으로 4년 뒤 대선에 다시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는 다른 공화당 주자들이 일찌감치 포기한 상황에서도 홀로 남아 싸움을 이어가며 존재감을 과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끌어들이지 못한 중도층과 도시 여성을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